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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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블랙 월스트리트”로 불렸던오클라호마 털사의 부유한 흑인 동네 그린우드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1921년 구두닦이였던 흑인 딕 롤랜드 씨는 도심의 사무실 빌딩의 엘리베이터걸이었던 백인 여성을 강간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백인들이 폭도가 되어 롤랜드 씨를 린치하러 법원 건물에 모여들었고, 이후 그린우드로 진격해 이틀 간 폭동과 약탈, 살인을 벌입니다. 시 당국은 오히려 폭력을 부추기고 도왔죠. 폭동의 끝에 35블록에 달하는 지역이 파괴되고 만 명의 흑인 주민들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으며 3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리며 날아갔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남북 전쟁 이래 최악의 인종 폭력 사태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흑인들이 일군 부가 수천만 달러 단위로 하루 아침에 파괴되거나 약탈당했습니다. 피해자는 물론 후손에게 어떠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미국 역사는 수 세기 간 흑인들이 부를 축적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노예제가 있었고, 이후에는 짐 크로우 법 아래 부당한 하인계약제도와 분리 주거 및 교육, 자산 압수와 인종 차별이 있었죠. 그 결과 역사적인 민권법이 제정되기 2년 전인 1962년 시점에는 백인 평균 가정의 부가 흑인 평균 가정의 부의 7배에 달하는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이후 수 십 년에 걸쳐 차별이 줄어들고 현대 복지 국가로의 이행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흑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13만8200달러인데 반해, 백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93만3700달러죠.
자산의 중간값은 더 작지만 차이는 더 큽니다. 전형적인 흑인 가구가 1만7100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백인 가구 자산의 중간값은 17만1000달러입니다. 이런 차이는 낮은 소득과 부채에 의해 발생합니다. 흑인 가구의 부채가 백인 가구에 비해 더 높은 것이죠. 순 자산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인 흑인 가구는 전체의 19.4%인데 반해, 백인 가구 가운데서는 이 비율이 9.2%에 그칩니다. 수 십 년에 걸쳐 아주 느린 변화가 있었지만, 2007-08년 금융 위기는 순식간의 퇴보를 가져왔습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도 흑인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의 전통적인 자산 축적 도구인 주택 보유 여부를 살펴보면, 자가 주택을 보유한 백인은 73%에 달하는데 반해, 주택을 보유한 흑인은 42%에 불과하며 이 수치는 1968년에 비해 단 1%p 높아진 것입니다.
이처럼 끈질긴 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좌파 쪽에서는 현재의 차별과 인종차별적인 공공 정책(흑인들이 담보대출을 쉽게 받지 못하도록 한 레드라이닝 정책 등) 의 긴 역사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타개책은 노예제와 차별의 지속적인 피해를 보상하는 정부의 배상금 지급입니다. 이는 정치의 주변부에서 오랫동안 인기있는 아이디어였고, 이번 대선의 민주당 경선에서는 주자들 간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주택부 장관을 지냈던 훌리안 카스트로는 정부 배상금 지급에 찬성하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버니 샌더스를 비판하기도 했죠. 엘리자베스 워런은 배상금 아이디어에 동의한다면서, 미국 원주민들도 논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보다 일상적인 힘들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라는 것은 결국 오랜 기간에 걸친 저축액이 축적된 것입니다. 따라서 낮은 임금과 낮은 저축율이 부의 증진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죠. 클리브랜드 연방정부은행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속적인 인종 간 부의 격차는 거의 전적으로 인종 간 소득 격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흑인 가구의 중위 소득은 연 4만258달러인데 반해, 백인 가구의 중위 소득은 6만8145달러였습니다. 뉴욕대 경제학자 에드워드 울프의 계싼에 따르면 인종간 부의 격차에서 약 23%는 상속에 기인합니다.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상속을 받게 되면 격차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끈질긴 부의 격차가 장기적인 소득 격차 때문이라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은 달라야 합니다. 차별이 줄어들고, 대학 입시와 일부 고용 과정에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백 간 소득 격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흑인 같은 이름”을 가진 지원자에게는 면접 기회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죠. 하지만 미국 흑인들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데는 다른 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흑인들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는 탈산업화, 증가하는 수감율, 그리고 양부모가 있는 안정적인 가정의 감소 등 입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두 역사적인 인종차별의 전통과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일시에 지급하는 배상금 정도로는 그 액수가 아무리 커도 부의 격차를 뒤집을 수 없습니다.
또한 배상금의 정치는 너무 위험합니다. 복지금이나 식권 지급과 같은 인종중립적 빈곤 퇴치 정책조차 격렬한 반대를 불러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백인 유권자들이 이러한 정책을 소수인종과 이민자에 대한 지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상금까지 지급한다면 이는 인종 간 분열을 더욱 악화시켜 오히려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결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상속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보다 희망적인 안은 데릭 해밀턴과 윌리엄 대리티가 제안한 이른바 “아기 채권”이라는 것인데, 미국 내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성인이 될 때까지는 쓸 수 없는 신탁 계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에는 더 지급하는 방식으로 매년 이 계좌를 채우는 것이죠. 뉴저지 주 상원의원으로 대선에 도전했던 코리 부커가 이 같은 법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 연구진의 추정에 따르면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연간 820억 달러 가량입니다. (비교를 위해 덧붙이자면 연방 주택부 연간 예산이 530억 달러입니다.) 보편적인 지급 조항이 반대 의견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흑인이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연방 정부의 주택자금이나 제대군인원호법과 같은 형태의 지원입니다. 또한 사회가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불안해져서는 안 된다는 합의 하에 도입한 연급법처럼, 젊은이들이 극심한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안의 약점은 디자인 자체로 도입 후 18년이 지나야만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 또 지금은 투표도, 로비스트 고용도 할 수 없는 세대가 이득을 보는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정책이 도입되었다가 6년 만에 취소된 바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보장하는 “상속”이 역사적인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현존하는 흑백 소득 격차를 없앨 수는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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