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 Nylah Burton)
지난주 월요일 오전 8시 경, 에이미 쿠퍼라는 이름의 백인 여성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개를 산책시키다가 ‘램블’이라고 불리는 구역에서 목줄을 풀었습니다. 센트럴파크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반려견 목줄이 필수지만, ‘램블’을 포함한 특정 구역에서는 목줄이 24시간 의무입니다. 당시 이 곳에서 취미인 새 관찰을 하던 흑인 남성 크리스천 쿠퍼 씨는 이를 보고, 개가 새들에게 겁을 주거나 이 구역의 생태계에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하여 개 주인에게 목줄을 채워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에이미 쿠퍼는 이에 불쾌함을 느낀 듯, 경찰을 부르겠다고 대응했죠. 크리스천 쿠퍼가 이 상황을 비디오로 찍어 온라인에 올렸고, 이 영상은 삽시간에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비디오를 본 많은 이들은 에이미 쿠퍼가 트럼프 지지자,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운동 지지자일 거라는 추측을 내놓았죠.
그러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에이미 쿠퍼는 버락 오바마, 피트 부티지지, 존 케리 등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낸 기록이 있었습니다. 사실이라면, 미국이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백인에 의한 폭력은 당적과 정치적 이념을 넘나든다는 사실을요.
크리스천 쿠퍼가 촬영한 영상에서 에이미 쿠퍼는 “나는 사진을 찍고 있고 경찰을 부를 것”이라고 말하면서 개의 목에 감긴 목줄걸이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이어 “경찰에게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이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하죠.
에이미 쿠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크리스천 쿠퍼의 인종이 이 상황에서, 특히 그가 경찰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흑인들에 경찰 폭력은 드물지 않고, 에이미 쿠퍼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는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무릎 아래 목이 깔린 채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고 하소연하다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영상이 공개되면서 살인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백인의 폭력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공개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백인의 폭력은 만연하고, 어디에나 퍼져있으며, 모든 것을 오염시킵니다. 우리가 진보적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간과하는 것은, 실질적인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도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흑인들과 가까이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미 쿠퍼의 정치 기부금 정보가 동명이인의 것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뉴욕 시민들의 정치 이념 분포도를 고려했을 때 그녀는 민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진보적인 백인들의 인종주의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몰아내고 진보 또는 중도 성향의 백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극단화된 폭력이 이 나라에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도”, “진보” 정치인들 역시 이런 폭력이 규범이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도 이런 종류의 인종주의에 대해 특별히 경고한 바 있죠. 그 유명한 “버밍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킹은 “미지근한 수용은 노골적인 거부보다 훨씬 더 당황스럽다”고 썼죠.
그리고 이 “미지근한 수용”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이나 공간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금세 위협이나 폭력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우스벤드의 전 시장 피트 부티지지는 민주당원이고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여기겠지만, 그가 시장으로서 경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에릭 로건 사건을 다룬 방식은 흑인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에이미 쿠퍼가 보수주의자에 트럼프 지지자라고 넘겨짚으면, “진보적인” 백인들이 자신의 공간을 흑인들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뎌지게 할 뿐입니다. 리버럴, 진보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흑인들은 백인의 여림(fragility)과 우월주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우월하다 여겨온 오랜 전통은 누군가가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실만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적인 동네에서 에이미 쿠퍼 같은 사람은 “서류상” 이상적인 리버럴일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경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이 “내 목숨을 위협한다”고 허위 신고를 하겠다고 위협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죄 없는 흑인들이 경찰의 폭력 앞에 죽어간 역사로 잘 알려진 나라에서요.
하지만 에이미 쿠퍼는 이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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