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사람을 너무 믿어서 고통받는 이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기 피해를 입은 고객,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 등 다양하죠. 당신도 누군가를 믿었다가 상처받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런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타인을 너무 믿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인상은 사실과 다릅니다.
미국에서 수집된 신뢰 관련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타인을 믿을만한 존재로 여기는지를 말해주는 대인 신뢰도는 5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실제로 범죄율은 지난 수십 년 간 크게 떨어졌으니까요. 주류 미디어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언론에 대한 신뢰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기후 변화나 백신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하죠.
사회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를 하는지, 얼마나 신뢰할만한 존재인지를 연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익명의 두 사람이 참여하는 신뢰게임(trust game)입니다. 참여자 1에게는 소액의 돈이 주어지고, 참여자 2에게 얼마나 돈을 떼어 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참여자 2는 그 액수의 세 배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 다시 얼마를 돌려줄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최소한 서구 국가에서, 신뢰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참여자 1이 더 많은 돈을 건넬수록 참여자 2는 더 많은 돈을 돌려줄 수 있고, 따라서 참여자 1이 갖는 돈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참여자 1은 평균적으로 처음 주어진 액수의 절반 정도만을 상대에게 건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여자들에게 상대의 인종을 알려주는 등의 변수를 도입한 연구도 있었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은 불신으로 이어져, 이들이 다른 집단과 견주어 믿을만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돈이 넘어가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과 제도가 우리 생각보다 더 믿을만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신뢰를 조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더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일까요?
2017년, 일본 마치다 시에 위치한 사회학자 도시오 야마기시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암투병으로 쇠약해진 상태였음에도 연구에 대한 열정과 날카로움은 그대로였죠. 당시 우리는 신뢰와 불신 사이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때 우리는 그 신뢰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파악하게 됩니다. 지인이 집에 며칠 머물다 가도 되겠냐고 물어올 때, 이를 수락하면 그가 좋은 손님이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겠죠. 동료가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써보라고 조언할 때, 그 조언을 따라야 그 프로그램이 기존 프로그램보다 나은지를 알게 됩니다.
반면, 누군가를 불신한다면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인을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면 그가 좋은 손님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고, 동료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프로그램이 좋은지 나쁜지, 그 동료가 이 분야에서 믿을만한 조언자인지 아닌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됩니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우리가 불신보다 신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신뢰를 통해 특정 개인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더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더 신뢰함으로서 더 나아지는 것이죠.
야마기시와 그 동료들은 신뢰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이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들의 실험은 신뢰게임과 비슷하지만 돈을 건넬지 말지, 얼마나 건넬지를 결정하기 전에 참여자들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죠. 가장 잘 믿는 참여자가 믿을만한 사람을 골라내고, 누구에게 돈을 보내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같은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미디어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치와 뉴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죠.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과학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습니다. 이 증거가 상관관계로 남는다 해도, 더 잘 믿는 사람이 누구를 믿을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됩니다. 신뢰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을 통해 완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야마기시의 통찰은 우리에게 타인을 신뢰해야 할 이유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퍼즐은 더욱 복잡해지죠. 만일 신뢰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믿음을 아낄 일이 아니라 믿음이 지나칠 정도로 믿어야 하겠죠. 아이러닉하게도 우리가 신뢰해야 하는 이유, 즉 우리가 불신보다 신뢰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신하게끔 만듭니다.
우리의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 즉 믿지 말아야 할 이를 믿었을 때 그 대가는 눈에 두드러집니다. 우리의 반응도 짜증에서부터 분노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죠.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이점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믿었어야 할 누군가를 믿지 않았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인을 집에 머무르게 해주었다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애초에 맺어지지 않은 우정에 대해서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추천 받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써보지 않는다면,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죠.
우리가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 믿었다가 치르게 되는 대가가 눈에 보이는 반면 믿음으로서 얻게 되는 것과 믿지 않아서 치르게 된 대가는 그만큼 두드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숨겨진 비용과 이점, 즉 신뢰함으로서 배우게 되는 것, 얻게 되는 사람, 습득하게 되는 지식 등을 잘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어 보는 것은 도덕적인 일일 뿐 아니라 스마트한 선택이기도 한 것입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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