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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언어 케추아어로 발표된 첫 박사 논문

페루의 대표적인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는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입니다. 마추픽추로 가려면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 꾸스꼬를 통해야 합니다. 꾸스꼬는 ‘배꼽’이라는 뜻이죠. 꾸스꼬에 있는 잉카 시대의 요새 삭싸이와망은 ‘날개를 활짝 편 콘도르’라는 뜻입니다.

마추픽추, 꾸스꼬, 삭싸이와망 모두 잉카 문명권에서 쓰이던 케추아어입니다. 안데스산맥 일대에 사는 사람들 800만 명이 여전히 쓰는 언어지만, 말을 적을 문자가 따로 없어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쓰는 언어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교에서 페루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연구하는 학생 록사나 키스페 콜란테스(Roxana Quispe Collantes) 씨는 최근 케추아어로 쓰인 시를 주제로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논문 자체를 케추아어로 써서 더 화제가 됐습니다.

개교한 지 468년 된 산마르코스 대학교에서도 아메리카 대륙에 원래 살던 이들이 쓰던 언어로 논문을 작성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케추아어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원래 쓰이던 언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여전히 쓰는 언어입니다. 사용자 8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페루에 삽니다.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논문 발표에 앞서 잉카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에 하던 것처럼 코카 잎과 옥수숫가루를 끓여 만든 음료수 치차 모라다를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발표를 시작한 키스페 콜란테스 씨의 논문 제목은 야와르 빠라, 붉은빛의 비라는 뜻입니다.

험준한 안데스산맥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케추아어에는 유독 방언이 많습니다.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꾸스코의 꼴라오 지역 방언이 실제로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안데스산맥에서도 고산지대에 속하는 까나스 지대의 주민들을 직접 찾았습니다.

“정말 가기 쉽지 않은 곳을 여러 번 찾아다녔어요. 그래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죠. 케추아어는 제 모국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추아어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건 늘 제 꿈이었죠.”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꾸스꼬의 아코마요 지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페루의 많은 가정이 그렇듯 키스페 콜란테스 씨 가족도 대가족을 이뤄 살았고, 집안에서는 케추아어를 썼습니다.

박사 과정을 밟는 7년 동안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케추아어로 시를 쓴 시인 안드레스 알렌카스트레 구티에레즈(Andrés Alencastre Gutiérrez)의 작품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꾸스꼬의 지주였던 구티에레즈는 킬꾸 와라깍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썼습니다.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구티에레즈의 작품과 안데스 지방의 전통, 그리고 스페인 침략자들이 심어놓은 가톨릭의 상호작용을 연구했습니다.

“케추아어로도 학술적인 용어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논문에 어울리는 문장을 쓸 수 있어요. 요즘엔 사람들이 갈수록 케추아어에 스페인어를 섞어 쓰지만 말이죠. 제 이번 연구가 케추아어의 역량을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젊은 연구자, 특히 여성 연구자들이 제가 낸 길을 따라 더 많은 연구를 하게 되면 좋겠어요. 우리의 고유한 언어를 지켜내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니까요.”

키스페 콜란테스 씨의 지도교수인 곤잘로 에스피노 교수는 이번 논문이 상징하는 바가 무척 크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높은 지대에 살지만, 스스로 높이는 법이 없는 가장 겸허한 사람들인 안데스 사람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문화를 대변한 논문이라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인디오’라고 뭉뚱그려 부르던 사람들이죠. 이들의 문화와 언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논문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라져가는 토착 언어를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UN이 토착 언어 보존의 해를 지정해 발굴한 토착 언어의 가짓수만 무려 2,680개에 이릅니다. 페루도 정부 차원에서 UN의 토착 언어 보존 노력에 가입했습니다. 2,680개 언어 가운데 21개가 페루에 있는 언어입니다.

올해 초 페루 정부는 페루 안에서 쓰이는 48개 토착 언어로 쓰는 이름을 등록하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2016년에는 공영 방송에서 처음으로 케추아어로 뉴스를 진행했죠. 이어 페루의 아마존 지역 언어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아이마라어와 아샤닌카어로도 뉴스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과 소설 돈키호테도 토착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돈키호테를 옮긴 번역가 데메트리오 투빡 유빤키는 지난해 작고했습니다. 키스페 콜란테스 씨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언젠가는 케추아어를 꼭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더 많이 이 언어를 사용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디언, Dan Colly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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