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는 18~38세 미국인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꼽아달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것(work ethic)’을 꼽았습니다. 이어 애국심과 종교, 그리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21년이 지난 2019년, 같은 연령대 미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답변은 21년 전과 아주 달랐습니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10%P 낮아졌고, 애국심이나 종교가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무려 20%P나 낮아졌습니다.
가족, 신, 국가 이 세 가지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관을 든든하게 받치던 다리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자녀와 부모로 구성된) 핵가족, 신앙,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모두 젊은 세대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는 것은 미국인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뚜렷하게 변했다는 뜻입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미국뿐 아니라 서구 사회를 떠받쳐 온 전통적인 가치관이 와해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 가운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30세 이하의 종교인이 전체 종교인의 1/3을 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입니다. 1970년대부터 유럽이 아닌,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문화권에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비중이 자연히 희석된 겁니다. 그러나 무신론자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Z세대까지 갈 것도 없이 밀레니얼 세대만 해도 이미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16%로 베이비붐 세대(6%)보다 세 배 가까이 높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로 이어지는 종교적 가치가 서구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윤리적 가치라면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젊은 세대의 종교적 가치관의 변화는 서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수준의 변화입니다.
특히 가치관이 변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의견을 지닌 세대가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젊은 세대가 급격히 관심을 잃은 애국심, 가족, 종교는 모두 전통적인 보수주의를 지탱하던 가치입니다. 이 세 가지는 또한,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핵)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종교,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패권 국가 미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작은 정부로 상징되는 레이건주의(Reaganism)가 대표적이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위의 세 가지 가치를 배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치관이 다릅니다. (현직 대통령도 가족이나 작은 정부의 가치를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행동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앞선 세대와 의견이 다른 건 물론이고, 그 세대가 젊었을 때 보였던 의견과 비교해봐도 현재 젊은 세대의 의견은 뚜렷하게 차이가 납니다. 2012년 선거 때 공화당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유권자들에게서 받은 득표율은 지난 50년 사이 해당 연령대 득표율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몇몇 후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화당이 대변하는 가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장래가 밝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도 않아 보입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단지 기독교적 가치나 애국심만 진부하다고 여기며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양당제 자체를 거부합니다. 스스로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죠. 어디에 소속되지 않는 쪽을 더 편하게 여기거나, 어디에 소속되는 걸 분명히 거부하기도 합니다. 환경보호주의자(environmentalist) 같은 타이틀도 거부하는 비율이 이전 세대보다 높은 걸 보면 당위적인 가치도 자신을 규정하는 분류표가 되는 걸 반기지 않습니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도 낮고, 정부나 기업, 기관에 대한 신뢰도 낮습니다. 노조나 실리콘밸리, 연방정부, 언론,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은 1/3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은행이나 금융기관은 말할 것도 없겠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불신하는 권력 기관은 대부분 상류층이 장악하고 있는 곳입니다. 젊은 세대의 불신은 사실 10년 전 불어닥친 경제 위기와 더딘 회복세를 고려하면 꼭 계급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일리 있는 반응이며, 아주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들의 걱정이나 치기 어린 분노’ 정도로 취급하는 전문가라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대가 느낀 경제적 무기력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생각해보면 이런 반응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현재 젊은 세대의 범죄율은 그 연령대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반대로 대학 진학률은 가장 높죠. 한 마디로 “하지 말라는 건 다 안 하고, 시키는 건 누구보다 열심히 하면서” 체제에 순응하며 자란 세대인 겁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놓인 미래는 어떻습니까? 빚만 잔뜩 쌓은 채 사회에 나와보니 임금은 적고 아예 이 세대에 허락된 자신이 거의 없습니다. 존재의 위기를 겪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시대의 격랑 속에 보호막 없이 내쳐졌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고 나면 이 세상을 떠받치던 기둥이 하나씩 송두리째 뿌리뽑혀버리는 걸 보며 자랐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 세상을 휩쓸어버리곤 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지만, 반대로 그런 무기력한 개인이 무기력함을 표현하고 퍼 나르기는 너무 쉽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촘촘하게 우리 모두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며 신이며 국가가 과연 개인에게 얼마나 위안을 줄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은 #BurnItAllDown이라는 해시태그로 답했습니다. “다 때려치워”라는 뜻이죠.
(애틀란틱, Derek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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