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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처드 세이무어의 “트위터링 머신(Twittering Machine)”

지난 40년 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은 크게 악명을 떨치다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90년대의 문화 비평에서 이 단어는 단골로 등장했지만, 21세기 첫 10년 사이에 그 빈도는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브렉시트와 도날드 트럼프, 정체성 정치의 부흥,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있는 온갖 혼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을 끄집어 내어, 이들이 서구 사회를 병들게 만든 요소의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와 온라인 잡지 퀼레를 지지하는 일군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포스트모던 좌파”들이 진보 진영에 주입한 상대주의와 자기연민이 오늘날의 이 모든 사태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리처드 세이무어는 그들을 이렇게 비난합니다. “그들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득권 백인이 만들어낸 허수아비이자 가짜 희생양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원래 언어와 관련된 개념입니다. 곧, 우리의 세상에 대한 경험이 우리가 절대 피할 수 없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우리가 보고, 행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기호와 상징의 시스템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현실은 마치 텍스트처럼 읽힐 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즐거움(playfulness)과 패스티쉬(pastiche)를 가능하게 하지만, 급진적인 새로움이나 진보가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의심을 가지게 만들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특징이 됩니다.

리처듣 세이무어의 “트위터링 머신(Twittering Machine)”은 파울 클레의 으시시한 그림 제목입니다. 이 작품은 먹이를 함정으로 유도하는 노래를 부르는 기계 새를 그린 그림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 책은 사용자를 중독시키고, 서로 증오를 유발하게 만들며,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 스크린, 알고리듬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독창적이고 빛나는 통찰력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디지털화 되면서, 우리는 늘 쓰고, 또 쓰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스크린 앞에서 보냅니다. (미국인의 경우 그 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에 달합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총체적 쓰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검색을 하며, 트윗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문자를 보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직접 쓰지 않는 동안에도 화면을 스크롤하고, 클릭하고, 마우스를 움직이며 이 모든 것은 기록되고 있습니다. 읽기 또한 “정신적 고양 보다는 생산성 향상의 관점에서, 곧 지나가는 메시지와 알림을 빠르게 흩고 챙기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쉽게 쓰기로 이어집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간 관계와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세이무어는 우리에게 겁을 주려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컴퓨터는 1950년대의 핵폭탄이나 오늘날의 온실가스처럼, 인간의 창조물임에도 그 파급력을 인간이 이해하기도, 대처하기도 힘든 그런 대상입니다. 이미 시중에는 인터넷이 자유 민주주의에 어떤 위협을 끼치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이 소셜 미디어를 너무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체주의를 지적하기 보다는 주로 소셜 미디어 자체를 어떤 사악한, 물리쳐야할 외부의 힘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강화하거나 디지털 해독이 필요하다는 식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반면 세이무어는 보다 암울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줍니다. 이 책의 각 장은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여러 병리적 현상을 하나씩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중독자이다”, “우리는 모두 유명인이다”, “우리는 모두 트롤이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장이다” 등의 장들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각 장의 내용들은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도덕적 공포나 타자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종 세이무어의 맑시즘이 눈에 띄긴 하지만, 단순히 이런 악몽과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비난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곧, 그는 맑시즘을 계급의 분석 보다는 정신 분석에 가까운 목표로 사용합니다.

이 책을 다른 “기술역풍” 서적보다 한 차원 높은 책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정신분석적 접근입니다. 세이무어는 잠시 옆으로 빠져, 우리가 스마트폰 중독과 “인터넷 군중 심리”로 이해하는 익숙한 개념에 대해, 이러한 사회적 질병이 어떻게 거대한 “쓰기 경험” 때문인지, 그리고 그 근원에 존재하는 정신적,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지 탐색합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언제나 충전된 상태로 바로 옆에 두고 있다. 마치 우리가 계속 기다려온 메시지가 어느날 도착이라도 할 것처럼.”

세이무어는 인터넷 트롤링에 대해서도 훌륭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인터넷은 가면과 쓰기 도구를 결합함으로써 우리를 모든 종류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사디즘의 원초적 형태가 결합함으로써 트롤링이 일어나며, 인간을 그저 즐거움을 위한 장난감으로 전락시키는 이 트롤링은 우리가 처한 이 무서운 세상의 핵심입니다. 그는 이 행위가 어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트롤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낼 때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아이러니의 핵심은 거의 항상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열정적인 헌신을 여기에 쏟는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희망은 끝없는, 무의미한, 아무 소득없는 쓰기의 벽에 막힙니다. 우리가 그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는 어떤 예측도 없이, 그저 경고만을 할 뿐입니다. 폭력은 기계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며, 우리 모두는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쓰기 기계가 특정한 종류의 미화된 폭력, 곧 파시즘을 쉽게 만들어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에는 온라인 상의 혐오가 오프라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뒤엉킨 상황에서 텍스트가 “쏟아질 떄” 개인의 책임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아직 진짜는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 세계의 트롤과 인터넷의 모든 정보가 물질화되어 나타날 무장한 똥폭풍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 인터넷 파시즘의 형태로 그 초기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이런 현실을 만든 인터넷 대기업들이 이를 막기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를, 그리고 항상 인터넷을 주시하기만을 바랍니다.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환상과 달리, 이 프랑스 철학은 진실을 제대로 말하고 있으며, 세이무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가 모두 포획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이 책을 통해 보여줍니다. 바로 인터넷은 은유적으로도 그물(net)이며, 우리를 텍스트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쓰기, 읽기, 데이터 습득의 숨막히는 시대로 완전히 포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보들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될 정도로 작은 정보 하나하나에 까지 신경을 쓰도록 유도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트위터링 머신은 의미의 용광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러한 암울한 이야기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방법 뿐입니다. 적어도 세이무어는 그런 희망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은 충격적인 내용에 걸맞게, 보통 책의 마지막에 흔히 등장하는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와 같은 내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는 이 숨막히는 디스토피아에 저항하기 위해, 쓰기가 가진 해방적 요소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이, 이 시대 가장 명료하고 직설적인 문명 비판 중 하나로 쓰여 졌으며 그러한 저항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가디언, William Da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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