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낸시 프레스코는 알래스카대학교 페어뱅크스의 연구교수로 알래스카 북극권 기후변화 시나리오 네트워크(SNAP, Scenarios Network for Alaska and Arctic Planning)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북극에 가까운 고위도 지방이 불타고 있습니다.
올여름 알래스카에서만 벌써 600건 넘는 들불이 나 1만km² 가까운 숲을 태웠습니다. 캐나다 북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베리아에서는 계속된 들불로 발생한 연기가 약 5만 2천km² 상공을 뒤덮었습니다. (역자: 5만 2천km²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면적)
이 지역에서 들불 자체는 원래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래스카대학교 극지방연구센터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올여름을 비롯한 최근의 추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는 기후변화와 늘어나는 들불, 그로 인한 초목과 식생의 변화 양상을 연구합니다. 알래스카 북극권 기후변화 시나리오 네트워크(SNAP, Scenarios Network for Alaska and Arctic Planning)가 지역별로 세분화한 기후 데이터와 모델을 활용해 저와 동료 연구진은 잦아진 들불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전망해봤습니다. 그 결과 알래스카 등 고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들불은 기존에 일어나던 양상과 달라졌습니다. 너무 자주, 너무 강하게 퍼져 훨씬 심각한 피해를 남겼죠. 들불이 오래된 숲을 태우고 나면 그 자리에는 어린 초목이 다시 자라납니다. 숲이 불타면서 가뜩이나 이산화탄소가 적정량보다 많아 문제인 지구의 대기에 더 많은 탄소가 쌓입니다.
북극권 바로 아래의 북반구 침엽수림 지역 혹은 타이가 생태계는 지구 육지 면적의 17%를 차지하는 광활한 땅입니다. 원래 이 지역에는 들불이 자주 납니다. 사람이 만든 도로나 철도, 전력선, 도시가 매우 드문 지역이다 보니 불이 나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불이 번지고, 더는 태울 것이 없거나 비가 내려야 자연 진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수천 년간 불이 나면 오래된 숲이 타고 다시 어린 초목이 자라 숲을 이루는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제가 있는 알래스카 중부의 가문비나무를 보면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가문비나무는 시들거나 불이 나 숲이 뜨거워지면 곧바로 솔방울을 열어 씨를 퍼뜨립니다. 숲이 불에 탄 자리에는 먼저 잡목이나 꽃들이 자랍니다. 이어 야생산딸기나무, 버드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등이 아직 죽지 않은 나무 그루터기나 뿌리들 사이에서 자라나죠. 그러다 결국에는 이 지역에 가장 잘 자라는 침엽수가 다시 숲을 뒤덮습니다. 다시 들불이 나 타버릴 때까지 이 지역은 침엽수림 지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죠.
위에서 설명한 이 과정을 한 번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0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계속 그 주기가 무려 25%나 빨라졌습니다. 이는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들불이 더 잦아졌다는 명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관찰한 자료가 있어야 하고, 그 가운데 원래 자연에서 매년 혹은 주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경향을 고려해 걸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여름 알래스카에는 때 이른 혹서(heat wave)가 찾아왔고, 그래서 들불이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이 났습니다. 덥고 건조한 날씨에서 들불이 많이 나며, 기후변화로 인해 봄이 더 일찍 시작되고, 더운 여름이 더 길게 이어지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후변화 때문에 들불이 잦아졌다고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알래스카의 최근 여름 기후를 살펴보면 예년보다 선선하고 습도도 높아 불이 덜 난 해도 있었습니다. 원래 계절이 매년 똑같이 반복되고 기후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 가운데 무엇이 자연적인 차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불길한 조짐은 무엇인지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분석하다 보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19년 7월은 알래스카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습니다. 분명 지금의 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전례가 없는 현상입니다.
저 같은 기후변화 연구자를 비롯해 토지 관리인, 생태학자, 기상학자, 알래스카 원주민, 들불 전문가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이 현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후 자료부터 위성사진까지 모을 수 있는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최대한 정교하게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습니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미국 정부 기관도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당장 삼림소방대원이 출동한 횟수만 봐도 지난 7월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서는 훨씬 더 크게, 뜨겁게, 자주 들불이 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결론을 종합하면 그렇습니다. 오래된 침엽수림이 타고 어린 잡목이 많아지는 것 자체는 원래 주기대로 일어나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속도가 워낙 빨라진 탓에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타버린 나무에서는 계속해서 대기로 탄소를 방출하고, 죽은 나무가 쌓인 토양은 불이 한 번 나면 더 깊이 타게 됩니다. 이는 결국, 온난화를 더 부추깁니다. 기후변화의 결과 기후변화가 더 빨라지는 가속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지난 6월 제가 사는 페어뱅크스에서 훨씬 더 열악해진 상황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들불이 났습니다. 시작은 페어뱅크스 서쪽 외곽의 쇼벨크릭파이어 지역의 숲에 번개가 쳐 난 들불이었습니다. 예년보다 더운 날이 이어지면서 비도 내리지 않아 들불은 거세게 번졌고, 연기가 온 지역을 뒤덮어 대기의 질이 금세 위험한 단계로 나빠졌습니다. 대피령이 내려진 마을 두 곳의 주민들이 친척이나 친구 집에 묵는 동안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피난소로 지정됐습니다. 급하게 몸을 피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썰매개들을 보호하는 시설이 지역 공터에 급히 마련됐습니다.
페어뱅크스 전역의 공기에 매캐한 연기가 스며들어 숨쉬기 불편한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천식을 앓는 이웃 한 명은 인공호흡기를 쓰고 다녔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또 다른 이웃은 아예 특수 공기 청정 시설을 갖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물론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불이 나지 않았을 거라거나 불이 나더라도 이렇게 피해가 크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들불이 날 때마다 신속하게 끄는 것이 능사도 아닐뿐더러 광활한 침엽수림 지역을 생각하면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은 불을 끄더라도 그 나무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한 언제든지 날 수 있는 다음번 불에 잘 타는 장작을 그대로 쌓아두는 셈이기도 합니다. 불에 잘 타는 침엽수가 한 번 전소하고 나면 그 지역은 한동안 자연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알래스카 소방 당국은 토지 소유주들과 함께 불을 끄고 관리하는 데 기준으로 삼을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알래스카의 땅을 중요도에 따라 제한(limited), 준제한(modified), 중요(full), 핵심(critical) 구역으로 나누고 들불이 났을 때 대응 원칙을 다르게 세운 겁니다. 알래스카의 대부분 땅이 제한 구역에 속하는데, 제한 구역이란 들불이 났을 때 상황을 주시하되 중요한 지역으로 불이 번지지 않는 한 자연히 꺼질 때까지 타도록 놔두는 곳을 의미합니다.
물론 들불이 주민의 생명이나 주거지를 위협하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막아 세웁니다. 지난 6월에 난 들불만 해도 소방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부 지역에 내려진 대피령은 7월 10일부로 모두 해제됐고,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주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알래스카는 8월이 되면 메마른 여름이 끝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습도가 다시 높아졌고, 지역의 공터도 주인 잃은 썰매개들 대신 다시 지역 축제가 열리는 장으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사람들도 큰 불만 없이 다시 선선해지는 날씨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 외의 다른 침엽수림 지역은 여전히 불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문제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더컨버세이션, Nancy Fr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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