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2일, 영국 옥스포드에서 열린 TED글로벌 행사에서 뇌과학자 헨리 마크람은 청중들에게 엄청나게 복잡한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목표를 정했습니다. “어쩌면 이를 통해 우리는 인식을 이해하고, 실재를 이해할 뿐 아니라, 물리적 실재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정한 기한 또한 대담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10년 안에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이 인공 뇌를 TED에 등장시켜 여러분과 이야기하게 만들겠습니다.”
이제 그가 말한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선각자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멀리 보고 과감하게 말하는 것이며, 과학은 그 특성상 수많은 예측과 실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예측이 틀렸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합니다. (사실 과학 저자들은 혁신적인 의약품이나 신기술이 항상 지금부터 5년이나 10년 뒤를 약속한다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마크람의 경우는 두 가지 면에서 이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기에 너무나 큰 연구비가 지원되었다는 것입니다. 2013년, 유럽연합은 그의 인간뇌 프로젝트(HBP)에 10억 유로(지금 가치로 14.2억 유로, 한화로는 1조 8천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두번째는 이 HBP 프로젝트와 이에 대해 반발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뇌과학자들 사이에 뇌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마크람의 목표는 인간 뇌를 단순화시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 하나하나와 그 뉴런이 일으키는 전기 신호, 그리고 이들 뉴런을 활성화하는 유전자를 포함한 완전한 형태의 인간 뇌를 만드는 것입니다. 프로젝트의 시작 당시부터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있었으며, 특히 많은 뇌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향식 전략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식으로 서로 연관되는지,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판단은 어디서 이루어지는지와 같은 뇌가 가진 엄청난 복잡한 문제들이 상당 부분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10년 뒤라 하더라도 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C. 엘레강스의 302개 뉴런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860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를 모델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썼던 뇌과학자 그레이스 린제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목표가 비현실적일뿐 아니라 적절한 목표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HBP는 무엇을 목표로 했던 것일가요? 이들은 특정한 연구 주제를 풀려고 하지도 않았고, 뇌의 작동에 대한 특별한 가설을 검증하려 한 것도 아닙니다. 시뮬레이션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 과도한 공학적접근을 사용해 답을 미리 만든 것이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도구를 일단 만들어 본 것과 같습니다. 마크람이 세운 벤처기업인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는 2015년 쥐의 뉴런 3만개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이는, 실제 쥐가 가진 뉴런 수의 0.15%에 해당합니다. 비판자들은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이 들어갔음에도 어떤 새로운 사실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이 방법으로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되었을때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두개골 속에 이미 가지고 있던 뇌를 컴퓨터 속에 또 가지게 된 것이죠. 그걸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린제이의 말입니다.
마크람은 자신이 TED에서 한 이야기와 달리, 자신은 시뮬레이션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인공지능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며, 튜링 테스트를 이기겠다고 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시뮬레이션이 과학자들이 뇌에 대한 가설을 확인할 때 실제 동물의 뇌를 열어볼 필요 없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실험용 뇌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매우 가치있는 일입니다.” 린제이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순환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뇌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면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확인해 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에서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아이디어 자체가 상당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뇌과학이 ‘완성’될 경우 그런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로 생각됩니다.”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앤 처치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거대 규모의 시뮬레이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뉴런의 네트웍을 통해 뇌가 어떻게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결합시키는지를 연구합니다. “수십만 개의 뉴런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700억개의 뉴런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최근 발표된 “과학적인 뇌 시뮬레이션” 논문에서 몇 몇 HBP 과학자들은 거대 규모의 시뮬레이션이 “개별 뉴런과 전체 시스템으로써의 뇌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를 연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곧 뉴런 하나 하나의 작동 방식을 통해 전체 생명체의 행동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자가 어떻게 후자를 만드는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야 합니다. 저자들은 각 지역 대기 상태의 물리와 화학을 이해함으로써 기온을 예측하고 비와 풍속을 예측할 수 있게된 기상예보의 예를 듭니다.
하지만 워싱턴 대학의 물리학 전공 뇌과학자인 아드리엔 페어홀은 그 비유는 옳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기후나 은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데는 대규모 시뮬레이션이 유용하지만, 그것은 “은하는 별들의 상호작용만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뇌는 외부의 영향을 받습니다.” 곧, 외부 세계의 정보를 취득하고 다시 외부 세계에 영향을 주기 위해 신체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지와 감각기관이 없는 유리 병 속 뇌가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일부를 가지고 모든 물리학을 적용해본다고 해서 그 조직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물학은 의미에 관한 학문입니다. 조직을 시뮬레이션해볼 수는 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한편 HBP는 특이하게도, 너무 커다란 목표를 잡았다는 비난과 너무 좁은 목표를 잡았다는 비난을 동시에 듣습니다. 내가 의견을 구한 비판자들 중 뇌의 일부를 시뮬레이션 하는 일의 가치를 부정한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그 시뮬레이션이 실제적인 연구 목적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뉴욕대의 샤오-징 왕은 뉴런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었을 때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기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는 작업기억이, 혹은 어떤 생각을 유지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워털루 대학의 트리스 엘리아스미스 또한 스폰(Spaun)이라는 이름의, 단순한 산수와 추론 문제를 해결하는 250만개의 가상 뉴런으로 구성된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HBP에 분노하는 이들은 HBP에 지원된 연구자금 수준이면 이 정도의 연구를 수도 없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14년, 거의 800명의 뇌과학자들은 유럽연합에 보내는 공개질의를 통해 “HBP 는 바람직한 프로젝트가 아니며 유럽의 뇌과학 연구에 있어 핵심 프로젝트가 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1년 뒤, 중재위원회는 비판자들의 의견에 동의했고, HBP 에게 “적절하게 우선순위를 배분해” 목표를 재조정할 것과, 이 프로젝트의 특이한 조직구성을 개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HBP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기존의 뇌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뇌 관련 데이터의 검색 도구를 제공하며, 다른 이들이 자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사실상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만료될 이 대규모의 연구프로젝트가 최근 발표한 논문은 여기에 더 큰 투자가 필요하다는 요청처럼 보입니다. “고품질의 뇌 시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의 연구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접촉한 이들이 HBP가 지난 10년간 어떤 커다란 업적을 이루었는지를 잘 말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어떠한 기여도 하지못했다는 말은 아닐겁니다. 단지 그들이 사용한 예산에 비할 수 있는 정도의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목표를 과장하는 바람에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다시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크람은 이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듯 보입니다.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그와 그의 동료인 쑤 판은 뇌 시뮬레이션이 단순히 뇌과학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철학과 인간 문명 전체를 잇는 거대한 문제라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내게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과학적인 정치적 반대 때문에 우리 프로젝트는 크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도 우리를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에서 140 명의 연구자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다섯 명의 외부 평가자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더 큰 뇌 영역에 대한 생물학적으로 정확한 모델을 만드는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이번에는 언제까지 인간 뇌를 시뮬레이션 하겠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사실 뇌과학의 미래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끝없이 나타납니다. 2014년 밴쿠버에서 열린, 내가 참가했던 TED 메인 행사의 개막 강연을 맡은 이는 MIT 미디어랩을 만든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였습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30년 안에 “우리는 정보를 섭취하게 될겁니다. 알약 하나를 먹으면,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될겁니다. 다른 알약은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게 만들겁니다. 알약은 혈액을 통해 뇌로 들어가며, 자신이 뇌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부분들에 들어가 정확한 위치에 정보를 집어넣게 될 겁니다.”
내 왼쪽 뒤에 앉은 사람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와우”
(애틀랜틱, Ed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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