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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의식은 없다(“The Mind Is Flat”) (1/2)

오늘날 하루가 멀다하고 뇌에 관한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다 읽다가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될 정도지요. 영국의 행동과학자 닉 채터의 “무의식은 없다(The Mind Is Flat)” 또한 그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집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목은 흥미롭기는 했지요. 하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나는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서두에 소개된, 안나카레니나의 마지막 부분과 그녀가 왜 자살했는지 묻는 질문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만약 열차가 급 브레이크를 밟아서 안나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그녀는 스위스의 휴앙지에서 회복하는 동안 심리학자에게 자신이 왜 열차 앞으로 뛰어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안나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누군가에 대해서도 같은 사고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사람들은 정신과의사에게 자신이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채터는 왜 그들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지를 자신의 과감한 주장을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바로, 인간에게 어떤 행동의 동기가 되는 숨은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신과 치료를 받고 꿈을 분석하고 언어 연상 실험과 뇌 스캐닝 기술을 사용해도 누군가의 ‘진정한 동기’는 밝힐 수 없습니다. 이는 그 동기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동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인간의 믿음, 동기,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지는 내면의 정신 세계는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입니다.”

음, 이 책이 이런 대담한 주장을 계속 펼친다면, 절대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채터는 최신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뇌 깊숙한 곳에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공격합니다. 채터는 감정이란 터지기를 기다리는 준비된 내면이 아니라 신체의 반응에 의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즉흥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의 뇌는 그 순간에 가장 알맞은 생각과 행동을 지어내는 재즈 연주자라는 것입니다. 채터는 상위 의식(higher consciousness)이라는 생각은 그럴듯 하게 들리지만 실은 모래 위에 지은 성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마음의 내면을 탐험한 결과가 아니냐구요? 채터는 “정확히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은 바로 “연속된 사고(thoughts)”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어쨌든 나는 “무의식은 없다”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뇌과학자인 리사 펠드만 바렛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도 “감정은 신체의 감각에 의해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뇌의 속임수에 당한 피해자일 뿐이다”라는, 채터의 과감한 표현이 더 마음에 듭니다. 나는 채터와 만나, 그가 말하는 무의식에 대해 내가 아직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융의 무의식을 “심리학의 점성술”이라 불렀던 그런 재치를 가지고 내 질문에 답해 주었습니다. 나는 먼저 정신과 치료(psychotherapy)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치료의 핵심인, 무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채터가 가장 크게 반대하는 생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Q: 당신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동기를 겉으로 표출시킴으로써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정신과 치료에 대해…

A: 아무런 효과가 없다구요?

Q: 그렇죠. 왜 그런가요?

A: 그건 우리 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숨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어떤 이야기의 초안이나 서로 일관적이지 않은 여러 메모들이 있을 뿐입니다. 머리 속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두 이야기가 충돌하게 되면 그때는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아주 하고 싶은 일이지만 동시에 공포를 느끼거나, 아니면 단지 거미에 대한 공포감 같이 특정한 문제에 의해서도 우리의 생각과 반응 사이에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Q: 정신과 치료는 가치가 있을까요?

A: 물론입니다. 정신과 치료는 환자가 이 세상을 보다 일관되고, 조화롭고, 통합된 형태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위해 엄청난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Q: 그게 말처럼 쉽다면 말이지요.

A: 그렇죠,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건 상담사가 말하듯 “당신 마음 속에 꼬인 부분이 보여요. 이 부분을 풀고 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겁니다”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창조적인 도약을 필요로 합니다. 소설을 쓰는 것이 어려운 만큼, 이 일도 어렵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일관되게 만들고, 등장인물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들면 그만이니 쉬운일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이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우리 각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일관되게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적어도 소설만큼이나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과거 경험의 확장과 변형, 선례를 기준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도 당시의 마음에 기초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생각의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과거는 종종 우리가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없도록, 미래를 대비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상태로 만듭니다. 우리는 행동과 생각의 습관에 의해 지배되며, 이를 빠져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정도를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내면이라는게 없다면, 정신과 치료는 매우 쉬운 일이겠군.” 하지만 바로 내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가 어려운 것입니다. 단순히 일관적인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 다시 일관성을 만들어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새로이 만드는 커다란 작업이 필요하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Q: 흠,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흥적인 방법을 쓰면 된다는 말로 들립니다. 예를 들어, 슬픔이 완전히 마음을 장악하고 있다면, 어떻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나는 인생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슬픔의 경우, 보통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해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입니다. 아이나 배우자의 사망 같은 끔찍한 일을 극복하기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내 인생의 대본에 없는 일이야. 인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안돼. 내 아내, 아이가 살아야 했을 삶은 따로 있어. 하지만 이미 사건이 벌어진 이상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결혼이 파경에 이른 내 친구 한 명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의 대본을 가져가 찢어버린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미래가 공허해진 것이지요.

하지만 일단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합니다. 나는 이 슬픔에 압도된 순간이 바로 창조적인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기지요. 떠나간 이의 삶이 괜찮은 삶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 삶은 내가 바라던 것보다는 더 짧게 끝났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좋은인 일들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Q: 만약 당신이 심리치료사라면 뭐라고 말할건가요?

A: 나는 우리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를 먼저 이야기할 겁니다. 그리고 행동과 정신의 습관이 어떻게 우리 자신을 만드는지, 또 자신의 삶에 대해 가지는 느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해야 여기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를 말할 겁니다. 즉, 치료의 한 가지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생각과 행동의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무의식적 동기나 믿음을 찾아서 이를 고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마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이 단순하고 즉흥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내면을 찾다가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만들어 내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이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경우, 우리는 그 깊은 곳에 들어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 정도로 슬퍼했으면 충분할까? 이렇게 빨리 괜찮아져도 괜찮은걸까? 혹시 나는 아내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렇게 자신의 무의식 속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오류 때문에 서로 헤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인에 대해 자신이 마땅히 느껴야 할 사랑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사랑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부족하거나, 아니면 너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사람을 병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바로 자신의 내면에 진짜 자신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은 사실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즉, 진짜 감정이라는 개념의 문제는 감정 중에 진짜와 가짜가 있으며 진정한 감정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 중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왜 그런가요?

A: 왜냐하면 저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 우리 뇌는 그때 그때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답을 지어내기 때문입니다. 원래 존재하던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 동기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답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같은 내용의 질문을 미묘하게 다르게 물을때 뇌가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내면의 보고자가 아니라 완전히 비일관적인 이야기를 상습적으로 만들어내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뇌는 동시에 그만큼 그럴듯한 이야기를 썩 잘 지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하는 사실을 보고하는 존재라고 쉽게 믿는 것입니다.

2부로

(노틸러스, Kevin 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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