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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졸업 30주년 동문회에 다녀와서

* <애틀란틱>에 글을 기고하는 데보라 코파켄이 지난해 10월 쓴 글입니다.


총동문회가 열린 건 언론에서 ‘하버드 입학차별 소송’이라고 이름 붙은 소송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주말이었습니다. 1988년에 학부를 졸업한 (우리 식으로는 84학번) 동문 597명이 선·후배들과 함께 대형 강의실에 앉아 로렌스 바카우 신임 총장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바카우 총장은 하버드가 학생을 뽑는 데 있어 다양성의 가치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설을 녹음해서 다시 듣고 쓰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아니 전 세계 모든 학교의 최우수 학생이나 SAT 만점자들로만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하버드답지 않다. 앞으로도 하버드는 그렇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사실 나는 하버드가 인종이나 계급 말고도 지역, 정치 성향, 관심사, 전공 분야, 가치관 등에서 실로 다양한 학생들을 성공적으로 뽑아 잠재력을 꽃피우는 장을 성공적으로 제공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학부 시절 4년의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던 친구들이 누구 하나 똑같지 않고 다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가 돈이 많아서 학교에 건물을 지어주면 그 자녀가 입학 과정에서 가산점을 받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부받은 돈으로 연간 가계소득이 6만5천 달러(우리돈 7500만 원)에 못 미치는 집안의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또 그런 식으로 기부 입학과 가계 소득을 바탕으로 장학금을 운용하는 것이 많은 명문 대학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필요한 제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전체 학생 가운데 여학생이 절반인데도 하버드를 대표하는 응원가가 아직 “Ten Thousand Men of Harvard”라는 것도 당연히 탐탁지 않습니다. 그래도 노래의 첫 음만 들어도 30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소위 명문가 아니면 부잣집 출신의 남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던 동아리인 하버드 파이널 클럽(final clubs)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사실 하버드 응원가가 아직 불리는 것보다 몇십 배는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소송에 대비해 몇 가지 제약을 엄격히 적용하는 조건으로 클럽을 해산하지 않았습니다. 30년 전에는 파이널 클럽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운영됐는데, 어쨌든 열심히 클럽 활동을 한 친구 중에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흔히 서로 대립하는 생각을 동시에 아우르며 목표에 이르는 길을 찾는 능력을 지능(intelligence)이라고 합니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교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학생들이 바로 그 지능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하버드도 그 목표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와 분열의 언어가 횡행하는 지금은 하나의 사안을 정반대 관점에서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절입니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가장 먼저 (지능을 갖춘) 지식인 집단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나는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혜택과 효과를 믿습니다. 이민자 출신 학생이 하버드 전체 평균에 못 미치는 SAT 점수를 받고 지원했더라도 예를 들어 15학번인 탕큐디엡(Thang Q. Diep) 같은 학생이라면 뽑는 것이 하버드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또한, 다양성에 가산점을 주는 학생 선발 기준 때문에 나와 같은 유대인 학생들의 숫자가 제한됐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역차별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내가 하버드에서 배운 ‘지능’을 동원해 다양성이라는 가치와 나와 비슷한 이들이 겪을 수도 있는 난처한 상황을 지혜롭게 병치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의 다양성을 피부색과 인종의 다양성으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대단히 편협한 접근입니다. 하버드가 추구하는 다양성이란 모든 정치적 성향을 아우르는 다양한 교육법과 사고방식, 가치관을 통해 우리 모두 각자 개성이 있고 다르지만, 동시에 대단히 비슷한 점도 많고 통하는 것도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1988년에 하버드를 졸업한 우리들은 같은 시기에 함께 수학했고, 하버드를 거치며 수많은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그런데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 동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출신 배경, 현재 수익, 피부색, 종교, 건강, 직업, 가족,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우리를 서로 구분 짓게 해주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공통으로 겪는 ‘당면 과제’들은 인간으로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아니 대학을 다녔는지 자체도 결국,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 서게 되면 실제로 그게 뭐 대수일까요? 어쨌든 하버드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 다시 만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느낀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하버드 졸업생이라서 특별한 점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이만큼 인생을 산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교훈이었습니다.

 

  1. 인생을 정확히 계획한 대로 살아낸 친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사람이라도 ‘예정에 없이 찾아오는’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2. 직업에서는 선생님이나 의사가 된 친구들이 대체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3. 변호사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거나 다른 직업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로스쿨 교수가 된 친구들은 대체로 직업에 만족해했습니다. (2번에서 언급했듯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무언가 비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은행이나 펀드매니저 등 금융권에서 일한 친구들은 그동안 모은 재산을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친구도 있었고,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직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하루빨리 직종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분야는 예술 쪽이었습니다.
  5. 넓게 잡아 예술 분야에서 일한 친구들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6.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총동문회 직전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산이 많을수록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7. 같은 설문조사 결과 하버드 84학번 동문이 가장 채우고 싶은 욕구는 수면욕이었습니다. 잘 자는 일은 섹스나 돈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8.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애창곡인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Burning Down the House”가 1학년 기숙사에 울려 퍼졌는데, 다들 35년 전을 생각하며 즐거워했습니다.
  9. 신입생 때는 가장 많이 부끄러움을 타며 잘 나서지 않던 친구들이 신기하게도 동창회 간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번 동문회를 조직하고 성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10. 이혼한 친구들은 대체로 이혼한 뒤의 삶에 만족했습니다.
  11. 그러나 원치 않은 이혼을 한 친구들은 이혼한 뒤 삶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12.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친구들은 결혼 후 어느 시점에 부부 관계가 성숙한 관계로 접어드는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친구는 내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상담을 받던 중에 답답한 마음을 담아 “나도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아내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건 남편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며, 그 부족한 점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는 부부는 종종 이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13. 거의 모든 친구들이 자기가 젊었을 때 특히 얼마나 많은 것을 사사건건 비판했는지 생각하면 놀랍도록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14. 어느덧 쉰을 넘은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자주, 많이 썼습니다. 동창회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가깝고 친한 이에게만 아껴서 쓸 수 있게 쟁여놓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낌없이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며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5. 84학번 동문 가운데는 하원의원(Jim Himes)도 있고, 토니어워드를 받은 뮤지컬 감독이자 연출가(Diane Paulus)도 있으며, 우주에 다녀온 동문(Stephanie Wilson)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이나 성취와 관계없이 파티나 강연, 토론에서 하게 되는 말, 찾게 되는 가치는 대체로 보편적인 가치로 수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 안식, 지적 자극, 훌륭한 리더십, 지속가능한 환경, 우정, 안정 같은 것들 말입니다.
  16.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이들은 그 결정을 잘한 일이라며 만족해했습니다. 일부러 자녀를 낳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지 않을 것을 후회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17. 첫 신입생 기숙사 룸메이트와 술집에 가서 같이 한잔하는 일은 졸업하고 30년이 지나서 하니 훨씬 더 재밌었습니다.
  18. 가능하다면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오랜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훨씬 낫습니다. 물론 새로 결혼하거나 같이 살 사람을 찾는 경우, 아니면 하룻밤 섹스를 즐길 파트너를 찾을 때는 집보다 호텔이 낫습니다.
  19. 배우자가 있는 친구들도 대부분 동문회에 혼자 왔습니다.
  20. 무릎, 엉덩이, 어깨가 성한 친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21. 얼굴에 나타난 혈색만 봐도 지난 30년 동안 누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2. 외모 면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대체로 준수했습니다.
  23. 소득이나 직장에서의 직책, 승진 면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대체로 성과가 좋았습니다. (믿기 어렵지만요!)
  24.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우리의 삶에 꽤 큰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특히나 제대로 된 보육 시설이 없고,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사실상 전무하던 시절,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쪽은 대부분 엄마였습니다.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25. 하버드 메모리얼 교회의 종이 27번 울렸습니다. 1988년 졸업생 가운데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27명을 기리는 의미였습니다. 모두 숙연해진 우리는 앞으로 30년 동안 타종해야 할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리라는 숙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26. 학부 시절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친구들이 추도식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는 졸업한 뒤 한 번도 모여 연습한 적이 없어도 마치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던 것처럼 합이 척척 맞았습니다. 심지어 그사이 곡이 편곡돼 예전에 부르던 노래와 달랐는데도 말이죠.
  27. 쉰이 넘으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무 늦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기숙사 방짝 한 명은 1984년에 내가 했다는,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어떤 일을 이야기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한 친구는 5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하버드 동문 인명록에서 내가 한 번은 병원 응급실에 갈 때 우버 합승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며, 다음번에는 구급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려는 친구를 향해 나는 웃으면서 당분간 응급실 갈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말만이라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28. 자식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해준 말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나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하버드 15학번으로 입학했다가 지난해 여름 숨진 딸의 장례식에 상주로 선 엄마가 나와 동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미처 꽃피우지 못하고 살지 못한 나날들에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도 눈부시고 찬란하게 살아낸 21년을 기억하고 감사할 겁니다.”
  29.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두려워한 적이 있는 이도 있고, 여전히 그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동문회에서 30년 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 한 명은 건강 관련 회사를 경영하다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며 얼굴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치료가 잘 돼 동문회에 온 친구를 본 나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 이렇게 만났네!”라고 격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우리는 계속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들썩이며 서로를 향한 반가움을 계속되는 포옹과 따뜻한 웃음으로 표현했습니다. 곧 더 많은 것이 스러지고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함께 있기에 그 또한 치러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30. 사랑만으로 모든 걸 치유하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Atlantic, Deborah Cop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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