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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크루거 교수의 유산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의 앨런 크루거(Alan Krueger) 교수가 지난 주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던 크루거 교수는 여러 가지 분야와 사안을 경제학 분석틀로 바라보고 활발한 연구를 진행했고, 연구 결과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고 접목하며 많은 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였습니다.

“앨런은 경제학자가 구현해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것을 모두 구현해냈다. 특히 그는 경제학이라는 이론과 지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하버드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교수가 크루거 교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서머스 교수는 1980년대 중반 당시 젊은 앨런이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 그의 멘토이기도 했습니다.

크루거 교수를 일약 학계의 스타덤에 올려놓은 논문은 어느덧 최저임금 관련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고전이 됐습니다.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베니아 접경 지역의 패스트푸드점 사례 연구”)

논문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최저임금에 관한 통념을 뒤집는 결론으로 유명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의 비용이 상승하는 만큼 기업이 일자리를 줄여 고용률이 낮아진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오랜 통념이었습니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하면 고용주로서는 당연히 노동자를 덜 뽑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크루거 교수는 동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 교수와 함께 실제로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줄이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올리기로 한 뉴저지주에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두 교수는 과학실에서 실험을 하듯 실험군과 대조군을 설정했습니다. 마침 뉴저지주와 인접한 펜실베니아주의 최저임금은 그대로 유지되므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 오른 뉴저지주 패스트푸드 식당(실험군)과 최저임금이 그대로인 만큼 임금도 변하지 않는 펜실베니아주 패스트푸드 식당(대조군)을 비교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실험 설계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의 효과를 비교해 연구하는 방법은 대단히 참신하고 혁신적이다, “자연과학 실험 같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구 결과 최저임금을 서서히, 조금씩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신뢰 회복 혁명(credibility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시기와 그 시기를 빛낸 유명한 논문들이 있습니다. 신뢰 회복 혁명이란 기존의 오래된 경제학 이론을 현실에서 검증하려 했던 학자들이 무작위 실험처럼 자연과학에서나 할 법한 연구 방법론을 과감히 도입하고 실험을 설계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시작한 주로 1990년대를 일컫는데, 이 시기 경제학은 잃었던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게 됐습니다. 이 신뢰 회복 혁명 시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가 앨런 크루거였고, 그의 대표 논문이 카드 교수와 함께 쓴 최저임금에 관한 논문이었습니다. 크루거 교수와 함께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 자문위원으로 일했던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제이슨 퍼만 교수는 “앨런은 세상에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새로운 연구 방법을 앞장서 도입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크루거 교수의 연구 주제를 살펴보면 이밖에도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들을 모두 고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고, 기술 발전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또 교육, 환경, 테러리즘의 경제적 요인 등에 관한 주제도 연구했습니다. 제이슨 퍼만 교수가 “노동경제학에서 크루거 교수의 업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크루거 교수는 1994년 처음으로 잠시 학교를 떠나 정책 자문 역할을 맡으며 현장을 경험합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의 수석 경제학자로 일한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자 다시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중책을 맡는데, 2009년부터 2년 동안은 재무부의 경제정책 보좌관을 역임했고, 2011~2013년에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루거 교수에 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대통령의 경제학 선생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크루거 교수에게 부탁했을 때 이미 크루거 교수는 정부 안팎에서 훌륭한 이력을 쌓은 뒤였습니다. 집권 첫 2년간 크루거 교수는 정부 경제팀의 일원으로서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받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돌파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섣불리 정책을 폈다가는 2차, 3차 경제위기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지만, 크루거 교수를 비롯한 경제팀이 잘 헤쳐나간 덕분에 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2013년 오바마 집권 2기가 시작되자 크루거 교수는 다시 프린스턴 대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크루거 교수에 이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은 퍼만 교수는 많은 학자들이 백악관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가 학교로 돌아가고 난 뒤에는 새로운 연구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크루거 교수는 달랐다고 말합니다.

“크루거 교수가 백악관에서 학교로 돌아온 뒤 지난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룩한 연구 성과를 보면, 백악관에서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다 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왕성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크루거 교수의 빈자리가 아마 가장 크게 느껴질 곳은 그가 30년간 교수로 몸담았던 프린스턴대학교일 겁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의 세실리아 루즈 학장은 크루거 교수가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경제학의 묘미를 일깨워주는 데 탁월한 소질을 지닌 학자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잘 알려진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던 크루거 교수는 음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 <록코노믹스(Rocknomics)>을 펴낼 예정이었습니다. 퍼만 교수는 크루거 교수의 음악 사랑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수 밥 딜런과 한 동네에서 자랐거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크루거 교수가 만날 때마다 계속 그 얘기만 하면서 제게 온갖 걸 다 물어보곤 했습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시절 크루거 교수가 한 마지막 연설은 록 음악 산업에 미국과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을 비유해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연설을 한 장소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었습니다. 서머스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 연설을 특히 인상깊게 듣고 새겼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체 경제를 록음악 산업에 비유해 설명하고 풀어낸 앨런의 연설에 크게 감명을 받아서 연설문을 정부 인사 모두에게 읽게 했다고 들었어요.”

미시건대학교 경제학과의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 교수는 크루거 교수가 “정말 세심하면서도 본받을 게 많은 훌륭한 멘토”였다고 말합니다. 스티븐슨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노동부 수석 경제학자를 거쳐 백악관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크루거 교수가 앞서 맡았던 직함을 이어 맡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크루거 교수에게 가르침과 영감을 받은 사람이 정말 많을 거예요.”

스티븐슨 교수는 크루거 교수가 경제 정책에 관한 다양한 주제에 관해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인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업적이 단지 사회과학자로서 학계에서 인정받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앨런 크루거 교수가 연구에 손을 놓지 않던 관심과 열정의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이 되려는 목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NPR 플래닛머니, Greg Rosal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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