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밤, 웨스트 헐리우드의 한 가정 집에서 호주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클레어 레만은 피티 틸의 투자회사 대표인 에릭 와인슈타인과 뇌과학자 샘 해리스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코미디 클럽으로 이동했을 때 팟캐스트 진행자인 조 로건이 합류했지요.
당신이 이 사람들을 안다면, 이들이 그날 “지성의 암흑망(intellectual dark web)”의 이사회 모임을 가진건 아닐까 생각할겁니다. 지성의 암흑망, 곧 IDW는 오늘날 학계와 언론계가 무비판적으로 진보의 의견만을 수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자, 언론인, 기업인들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충분히 말할 수 있을만한 의견을 말한 이들에게도 좌파들이 극단적으로 편협한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계몽적 가치”를 존중하는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IDW는 주로 성별과 인종 차이의 유전학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논하는 이들로 자신을 규정합니다. 물론 #MeToo 와 트럼프로 특정되는 오늘날, 이 주제들은 더 민감한 내용이 되었지요. 하지만 IDW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자신이 IDW라고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 원칙에 동의하는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만은 그날 밤 저녁을 대접한 집주인 또한 이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은 유명인이라 말합니다.
그날 스테이크를 썰며 나눈 대화 중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당시 일으켰던 작은 소동이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그들이 “불만 연구(grievance studies)”라 부른 일곱 편의 장난 연구를 실제 논문지에 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 한 편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한 단락을 페미니즘과 상호교차성의 맥락에 맞게 바꿔 쓴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다른 논문은 애견 공원의 강간 문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논문은 모두 어이없는 내용이었지만,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과했고 진지한 연구로 논문지에 실렸습니다. 그들은 이를 통해 학계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바뀌었으며 유행하는 주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논문에 너그러운 지를 보였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IDW의 비공식 기관지인 퀼레에도 실렸습니다. 퀼레의 운영자인 레만은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소식을 터뜨리기 전에 이미 이 사건을 알고 있었고, 이 사건을 크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학계 내에도 이 불만 연구 학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레만은 학자 다섯 명의 이 사건에 대한 평가를 실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이 사건을 “뒷마당에서 일어난 문화혁명”이라 불렀습니다.
자신이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학계와 좌파의 배타적 태도 때문에 의견을 밝히지 못하던 이들에게 퀼레는 다른 곳에서는 금기시되는 주제를 말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때로 퀼레의 저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광대”나 “사기꾼(cryptofascists)”으로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기 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 하버드의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와 뉴욕대의 심리학 교수인 조나단 하이트, 그리고 데이비드 브룩스와 메건 다움, 앤드류 설리번과 같은 칼럼니스트들이 퀼레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나는 퀼레가 학계와 지적 담론의 영역에서 거의 금기가 된, 이단적이지만 충분히 지적이며 선동적이지 않은 글들을 싣는 다는 사실에 계속 감동하고 있습니다.” 핑커가 이메일을 통해 내게 한 말입니다. “유전, 성과 성차, 인종, 문화, 이슬람, 표현의 자유와 폭력 등의 주제가 있지요.” 최근 “과보호되고 있는 미국인”을 펴낸 조나단 하이트 또한 이메일을 통해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며 세상에는 가지고 놀아서는 안되는 아이디어들이 있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곳입니다.”
올해 34세인 레만이 2015년 퀼레를 창간할 당시 이런 유명세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임신한 상태였고, 범죄심리학 석사 학위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생각을 자유롭게 주고 받는 곳”이라는 모토를 가진 퀼레는 심리학자, 특히 진화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주제를 기고할 수 있는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레만은 당시 인간이 본성 보다는 양육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고 주장하는 “빈 서판” 주장을 반박하는데 관심이 있었고, 이와 관련된 글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레만은 퀼레가 금방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게 되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빈 서판 신앙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였지만 자연스럽게 좌파 신앙의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퀼레는 이제 매주 일곱 개에서 열 개의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실재하는 성차(sex difference), 포스트 식민주의 관계에 대한 재검토 등과 같은, 레만은 좌파의 “순수한 정치(purity politics)”에 속하는 굵직한 주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판합니다. 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읽힌 10개의 글에는 “진보적 적대감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Progressive Hostility)”, “인터넷 폭도에게 공격받기 전까지는 나도 인터넷 폭도였다”, “왜 여성은 개발자가 되지 않는가” (이 질문의 짧은 답은 여성이 개발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등의 글이 있습니다. 구글의 여성과 소수자 우대 정책을 비판한 메모를 쓴 제임스 다모어를 지지한 퀼레의 글은 접속량이 폭발해 사이트가 멈추기도 했습니다. (퀼레의 기술팀은 이 사건이 DoS 공격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가을, 많은 이가 공유한 “쓰레기 언론인(Shitty Media Men)” 목록에 이름이 올라간 스티븐 엘리엇은 퀼레에 “어떻게 익명의 주장이 내 삶을 망쳤나”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 이후, 엘리엇은 목록을 처음 작성한 모이라 도네간을 상대로 150만불의 소송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퀼레에 항상 이런 글만 올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감사 편지 문화를 없애자는 글이 꽤 오래 인기글에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퀼레의 월간 페이지 뷰는 2백만을 넘겼고 이는 레만이 보여준 웹분석 서비스 알렉사에 의하면 뉴욕리뷰오브북스(NYRB)보다, 그리고 하퍼스(Harpers)와 타블렛(Tablet)을 더한 것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세상의 반항아들이 모여있는 트위터는 퀼레의 트래픽을 가장 크게 담당하는 매체입니다. 레만은 1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으며, 조던 피터슨과 스티븐 핑커와 같은 거물들이 종종 퀼레의 기사를 링크합니다. 작년 6월, 피터슨은 자신의 팔로워에게 퀼레에 기부하라고 말하며 “퀼레는 저널리즘의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레만은 자신이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그녀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녀는 사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이 미국인이고 남성인 이 세계에서 호주인이자 여성인 그녀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녀도 이 세계의 다수인 백인입니다.) “나는 이 논쟁에서 외부인이고, 그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퀼레가 레만이 말하는 것처럼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억압적인 사회적 발언 규정에 고통스러워했던 학계와 외부인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든, 디 아웃라인(The Outline)이 말하는 것처럼 “반동적 사고의 중심”이건 간에 퀼레는 계속 표현의 자유와 정체성 문제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으며, 오늘날 문화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진화심리학자의 얼마 남지 않은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퀼레가 인기를 얻어갈수록 여기에 실린 논쟁적인 생각에 대한 비판 또한 커지고 있으며, 무미건조한 학자들의 토론이 극단주의자들의 전장으로 비화될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퀼레는 학계의 우상을 부수겠다는 자세로 얼마나 멀리까지 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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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은 퀼레를 만들기 훨씬 전 부터 자신이 학계의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레이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영문학에서 강조하는 후기구조주의 이론이 “오류가 많고 나쁘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나는 푸코를 읽고 엉터리라고 생각했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2010년 심리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로가 보건부에서 1년 간 일했습니다. “첫 주에 나는 이메일을 쓰는 일을 받았는데, 그렇게 일을 빨리 끝내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같았죠.” 예술가와 보육교사의 딸로 자란 그녀는 아들레이드 교외의 진보적 동네에서 안전하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은 자신이 성장한 정치적 진영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말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레만은 자신을 “중도”라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퀼레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처럼 그녀가 정치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부르지만 – 그녀는 육아 휴가와 “여성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여러 정책들”을 지지합니다 – 사실 그녀가 쓴 첫 칼럼이 보여준 것처럼, 페미니스트 주류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 인사들은 결혼이 여자와 아이들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행복한 결혼 생활이 삶의 만족도와 장수, 건강한 삶과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13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린 레만의 첫번째 칼럼 중 한 문장입니다. 그녀는 또한 여성과 아이에게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있는 것은 인생을 상당히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썼습니다. 레만은 당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 캔버라를 떠나 시드니에 가 있었고, 자신의 부동산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헤럴드에서 오랬동안 칼럼을 써 온 폴 쉬한이 그녀의 트위터를 보고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폴은 내게, 젊은이 중에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지 않는 이를 처음으로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녀는 자신의 첫 칼럼에 대해 “믿을 수 없을만큼 수준 낮은” 비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레만은 글을 쓰는 것이 좋았습니다. 헤럴드에서 30년 동안 글을 써 온, 다문화주의나 무슬림 문화, 성추행 사건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종종 비난을 받았던 보수주의자 쉬한은 내게 이메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트위터가 가진 고상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 그녀는 다수가 하는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폴리티코, Amelia Lester)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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