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씨는 거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는 다시 한번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사진 속 백인 여성은 물론 첼시 클린턴이 아니었습니다. 백악관 참모로 일했던 호프 힉스였습니다. 흑인 여성도 미셸 오바마가 아니라 트럼프 보좌관을 역임한 오마로사 뉴먼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 속 행사에 오바마도, 클린턴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모욕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진이나 글이나 터무니없는 것들을 억지로 엮어서 마구잡이로 뒤섞어놓은 것에 불과한 겁니다. 블레어 씨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멍청이들이 정부를 꿰차고 있는 시대.”
블레어 씨가 책상 한편에 붙인 메모지에 써놓은 말입니다. 실제로 블레어 씨는 이런 상황을 십분, 백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레어 씨 페이지의 광고 수입은 사정이 좋을 때는 한 달에 1만5천 달러 가까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또 블레어 씨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주로 진보적인 성향의 독자들인데, 이들은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에 올라온 가짜뉴스를 사실인 줄 알고 퍼 나르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재미에 블레어 씨의 페이지를 즐겨 찾습니다. 블레어 씨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쏟아지는 메시지들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하나같이 어딘가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 답 없는 트럼프빠, 얼간이 따위로 깎아내립니다.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사실이라고 믿을까요?”
블레어 씨는 조롱 섞인 탄식을 내뱉으며 발행 버튼을 누릅니다. 오늘도 이렇게 블레어 씨가 만든 가짜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갑니다.
***
네바다주 파럼프(Pahrump)라는 작은 마을.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셜리 채피안(76) 씨는 이미 일어나 페이스북 삼매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페이스북에서 할 수 있는 탐정 게임을 하는 거죠. 벌써 은퇴한 지 10년도 더 된 채피안 씨는 하루를 뇌를 적절히 자극해주는 사고 훈련이나 게임으로 시작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고 깨어있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은퇴 후 한동안은 신문에 있는 낱말풀이 게임을 했는데, 지역신문이 폐간하면서 배달이 끊겼습니다.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6,500만 명이나 했다는 크리미널 케이스(Criminal Case)라는 탐정 게임을 소개해줬습니다. 1930년대 탐정이 되어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거짓말을 가려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고 범인을 잡는 게임입니다. 오늘은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48번째 사건을 해결한 채피안 씨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뉴스를 훑기 시작합니다. 타임라인 위에는 자동완성된 메시지가 채피안 씨를 반깁니다.
“어서 오세요 셜리! 밤새 잘 주무셨나요?”
타임라인 가장 위에 있는 글이 채피안 씨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미국에 적용하지 못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더 늦기 전에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채피안 씨는 망설임 없이 좋아요를 누릅니다.
“이민자가 계속해서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면 이민자들의 침공을 막을 수 있습니다!”
채피안 씨는 이번에도 공유 버튼을 누릅니다.
적막한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채피안 씨가 마우스를 움직이고 클릭하는 소리뿐입니다. 혼자 사는 채피안 씨에게 페이스북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창구입니다. 아침에 채피안 씨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장식한 것은 300명 가까운 페친들과 채피안 씨가 팔로우하는 정치 성향이 짙은 단체들이 올린 글들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의 모임”, “미국을 되찾자”, “이슬람 금지”, “트럼프 재선 추진위원회”, “반란군” 등 이름만으로도 성향을 짐작할 만한 페이스북 그룹들은 하루에도 몇 편씩 글을 올리고, 대부분 “속보(BREAKING NEWS)” 머리말을 단 뉴스들은 채피안 씨의 타임라인에 그대로 올라갑니다.
침공, 정복 같은 단어가 난무하는 채피안 씨의 타임라인만 보고 있으면 미국이 곧 몰려드는 무슬림 난민들로 몸살을 앓을 것만 같습니다. 아니, 이미 무슬림들이 미국을 정복해버린 것만 같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세상 물정 모르는 진보주의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죠. 이민자들이 국경을 넘어와 불법 체류 상태로 선거에까지 참여해 투표 결과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오로지 개인의 총기를 압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죠. 채피안 씨는 답답한 마음과 몰려드는 위기감에 한 번은 페이스북에 직접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관심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 소중한 우리 조국이 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채피안 씨는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뉴스들을 꼼꼼히 훑습니다.
“속보: 대표적인 민주당 후원자 성폭행 혐의로 기소!”
“미셸 오바마,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그렇고 그런 사이?”
“아이오와 농장 충격 르포: 빌 클린턴은 마약에 취해 가축들과 무엇을 했나?”
읽어내려가기 민망할 만큼 섬뜩한 제목의 뉴스가 쏟아지는 화면 위에는 한때 채피안 씨가 취미 삼아 하던 십자수용 바늘 침이 걸려 있습니다. 수백 시간은 붙들고 있어야 완성할 수 있는 복잡한 예술 작품과 같은 십자수를 한때는 즐겨 하던 채피안 씨에게 이제는 그만한 참을성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그녀의 집 근처에는 비슷한 집들이 몇 채 더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이라고 해도 채피안 씨가 알고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집이 아니라 트레일러 차량의 간이 주택이죠. 그렇게 모여 있는 트레일러들 너머로는 선인장들만 듬성듬성 서 있는 뜨거운 사막이 이내 펼쳐집니다. 이토록 황량한 곳에 어쩌다 오게 되어 10년 가까이 살게 됐는지 채피안 씨 자신도 이유를 잘 모릅니다. 사막의 더위는 견디기 힘들 정도고, 채피안 씨는 파럼프는 물론 네바다주에도 아무런 연고가 없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걸 좋아하던 채피안 씨지만,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파럼프에는 영화관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곳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덫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을에 있는 시설이라고는 에어컨 잘 나오는 카지노와 그 구석에 있는 합법적인 사창가 정도가 전부입니다.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다 보니 계약금 한 푼 없어도 들어와 살 수 있는 값싼 트레일러들을 늘어놓았는데, 채피안 씨도 어쩌다 보니 그런 집 중 한 곳에 들어와 살게 된 겁니다.
채피안 씨는 은퇴하기 전에는 샌프란시스코, 뉴욕, 마이애미 같은 대도시에 주로 살았습니다. 유럽에서도 살았고요. 대학교도 다녔고, 보험 청구 사정인(insurance adjuster)로 일했습니다. 1980~90년대에 그 바닥에 여성은 정말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전국 여성협회에 참여해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는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된 탓에 로드아일랜드주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서 부모님을 돌봤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일을 그만하고 친구와 함께 라스베가스에서 살기로 했죠. 라스베가스 집값은 계속 올랐습니다. 비싼 집값에 난처해하던 채피안 씨에게 부동산 중개업자가 파럼프를 추천해줬습니다.
파럼프에서 채피안 씨는 1억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방 세 개 딸린 널찍한 간이 주택을 샀습니다. 동네 복지관에서 친구도 몇 명 새로 사귀었고, 근처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종종 밥을 먹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러다 컴퓨터 모니터를 새로 사고는 2009년에 처음 페이스북에 가입합니다. 프로필 사진으로 쓴 자신의 고양이 옆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채피안 씨는 부모님이 그랬듯 대부분 선거에서 공화당을 찍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극단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건 페이스북을 하고 난 뒤였습니다. 페이스북에 가입했을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오바마는 처음부터 미덥지 못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어딘가 거만해 보였고, 경험도 부족한 것 같았죠. 그런데 페이스북에 떠도는 오바마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는 그녀가 정말 두려워 마지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채피안 씨는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그 이야기들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맙니다. 오바마는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에 가깝다, 정치적인 경력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일부는 허위로 지어낸 것이다, 대학교 학사 증명서도 그렇고 심지어 출생신고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채피안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에서 읽는 ‘뉴스’와 평생 봐온 공중파 TV ‘뉴스’가 왜 이렇게 다른지, 그 차이가 왜 갈수록 커지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한 번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저들이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여기서 채피안 씨가 지칭한 저들은 공중파 TV였습니다. 이미 그들은 채피안 씨의 눈에 대중을 우롱하는 기득권이자 고인 물로 비친 지 오래였죠. 그녀는 언론이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려 할수록 자신이 직접 진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보수 성향 페이지를 열 개 정도 구독하기 시작했지만, 이내 극우파 음모론의 산지인 알렉스 존스의 인포워스(Infowars) 시청자가 되었습니다. 이어 페이스북의 맞춤형 광고 알고리듬은 채피안 씨를 거대한 극우 가짜뉴스의 메아리 속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채피안 씨는 현재 2,500여 개의 보수 성향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온갖 회의론과 음모론이 얼마나 확고한 사실로 굳어져 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채피안 씨의 머릿속에서 기후변화는 희대의 사기극이고, 주류 언론은 이미 진보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 철저히 검열당하고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언론뿐 아니라 워싱턴 정가를 이미 오래전에 장악해 막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채피안 씨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모든 콘텐츠를 덮어놓고 다 믿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류 언론의 기사나 심층 취재도 다 믿지 않던 채피안 씨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채피안 씨는 완전한 진실이라는 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뉴스라도 이야기에 살이 붙다 보면 덜거나 보태는 게 있기 마련이다 보니 진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의 중간 어디쯤 있으리라는 거죠. 결국, 채피안 씨는 최대한 거짓을 가려내며 사실에 가능한 한 가까이 가려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노력하는 자기 자신만 믿게 됐습니다.
문제는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최후의 심판이 되어야 할 자기 자신이 한쪽으로 대단히 편향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는 데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간 지 몇 달이 지났고,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라스베가스에 다녀온 것도 1년이 거의 다 돼 갑니다. 채피안 씨는 점점 더 페이스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글의 숫자는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다가도 한밤중에 일어나 뉴스를 확인하고 퍼 나르고 댓글을 다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매일 새로 알게 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치부와 심각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채피안 씨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
이런 식의 설명을 덧붙이며 그녀가 퍼 나르는 뉴스는 너무나 명백한 가짜뉴스입니다. 민주당에 정치 자금을 댄 조지 소로스가 사실은 나치였다거나 파크랜드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가 실은 돈을 받고 고용된 배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블레어 씨가 운영하는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가 속여먹기 딱 좋은 인물이 바로 채피안 씨 같은 사람이죠. 이미 채피안 씨는 블레어 씨의 사이트를 1년 넘게 구독해오고 있었습니다. 블레어 씨가 며칠 전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을 마음대로 첼시 클린턴, 미셸 오바마로 지칭해 트럼프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꾸며낸 가짜뉴스가 버젓이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죠.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이던 이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셸 오바마와 첼시 클린턴을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초청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보다시피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성조기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 욕을 하고 있다.
채피안 씨가 보기에는 사진도, 설명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애국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아량을 베풀어 클린턴과 오바마를 백악관으로 초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라를 좀먹는 민주당 놈들이라면 당연히 끔찍한 짓을 해서 미국을 모욕하겠죠. 매일 수십, 수백 개씩 읽는 뉴스나 댓글이 다 그런 내용이니, 그렇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오히려 채피안 씨는 그 이야기를 가짜뉴스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채피안 씨는 블레어 씨가 만든 가짜뉴스에 좋아요를 누르고는 댓글을 남깁니다.
“원래 민주당 좋아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워싱턴포스트, Eli Sa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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