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둔갑한 거짓, 가짜뉴스는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나 (1/3)
2018년 11월 29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컴퓨터 모니터 석 대에서 나오는 불빛을 빼면 아무런 조명도 없는 어두침침한 방. 크리스토퍼 블레어(46) 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이미 출근했고, 아이들도 학교에 간 오전. 집에 혼자 남은 블레어 씨는 오늘도 늘 가는 자신의 웹사이트로 출근 도장을 찍습니다. 자판에 올려놓은 손은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신중하게 블레어 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블레어 씨의 머릿속은 ‘오늘은 어떤 뉴스를 만들어 사람들을 낚아볼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긴.급.속.보. (BREAKING)” 독수리 타법으로 치듯 한 글자씩 또박또박 써내려가면서도 블레어 씨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해외 모처에서 미국으로 더 많은 난민을 들여오려고 비밀리에 협상을 벌이다 사고가 나 숨졌다고 해볼까요?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통째로 부정한 용기 덕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해볼까요? 고민을 거듭하는데 쪽지가 한 통 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퍼뜨려서 인터넷을 한 번 들었다 놓아볼 텐가?”

블레어 씨 웹사이트 운영을 돕고 있는 친구가 보낸 쪽지입니다.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기 마련이야.”

블레어 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 웹사이트를 연 건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때였습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비슷한 친구들과 극우주의자들이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퍼나르면 그걸 또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한지에 관해 농담을 주고받다가 그럴 게 아니라 직접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서 그런 가짜뉴스와 가짜뉴스에 속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조롱해보자며 합심해 곧바로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사이트 이름은 미국 최후의 보루(America’s Last Line of Defense).

블레어 씨는 지난 2년간 꽤 많은 가짜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캘리포니아주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반포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졌다, 불법 체류 중인 이민자가 러시모어 산에 있는 건국의 아버지 큰바위얼굴을 훼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전 때 징집을 피하려 부정을 저질렀다는 따위의 이야기였습니다. (참고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아홉 살이었습니다) 블레어 씨는 가짜뉴스 말미에 항상 “화가 난다면 꼭 공유해 이 끔찍한 소식을 널리 알려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달았습니다. 명백한 가짜뉴스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글을 공유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뉴스가 가짜뉴스인줄, 이 소식이 신랄한 풍자인줄 몰랐습니다.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55세 이상 보수주의자들이 페이스북 페이지 가운데 가장 많이 찾는 페이지이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웹사이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Nothing on this page is real)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사이트의 성격을 명시해놓은 문구가 무려 14군데나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은 이런 문구를 너무 쉽게 간과했고, 이렇게 만든 가짜뉴스는 미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진실이 되어 미국인의 사고 지형을 만들고 이들의 편견을 강화하고 말았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마케도니아, 러시아의 가짜뉴스 사이트들은 블레어 씨가 지어낸 글을 열심히 퍼날랐고, 이들 사이트를 찾는 월 600만 명에 이르는 방문자들이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글을 읽고 퍼날랐습니다. 블레어 씨가 처음에는 아주 고상하고 정교한 농담 삼아 하려던 일이 인간의 훨씬 더 어두운 본성을 깨운 듯했습니다. 블레어 씨는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여기서 오는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끔찍한 인종차별주의를 내포한 글도, 나와 다른 이들을 벌레만도 못 하게 취급하는 공격적인 혐오의 메시지도,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짓임을 뻔히 알 수 있는 글도 버젓이 뉴스 대접을 받았다. 도대체 경계가 어디일까? 경계라는 것이 있을까? 이보다 얼마만큼 수위를 더 높여서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야 사람들이 이 글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현실로 돌아갈까?

블레어 씨가 사는 현실은 그가 가짜뉴스 정치 풍자 사이트 운영자이자 블로거로 일하는 그의 집안 사무실 밖에 있습니다. 미국 북동부 메인주의 숲속에 있는 방 세 개 딸린 크지 않은 집이죠. 비포장 도로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집에 블레어 씨는 가족과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호수도 있죠. 지난 10년간 블레어 씨는 건설 현장부터 식당 등 다양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정부로부터 식료품 보조비를 지급받아 살기도 했고, 블레어 씨 가족은 여섯 차례나 이사를 다녔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블레어 씨의 부인은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해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급히 시간제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민주당원으로 살아온 블레어 씨는 이때 느낀 설움과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온라인에 쏟아냈습니다. 브롤 홀(Brawl Hall)이라는 인터넷 까페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날선 논쟁을 벌였는데, 그러다 가끔 페이스북상에서 극우 성향의 티파티 지지자로 가장해 티파티들의 폐쇄된 페이스북 그룹에 초대받아 운영진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블레어 씨는 운영진이 되고 나면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내 모든 페이지를 티파티와 정반대되는 진보적인 이야기로 도배해버리고 페이지를 폐쇄해버렸습니다.

블레어 씨는 지난 몇 년간 수십 개의 온라인 프로필을 만들었습니다. 40대 백인 남성의 정체성을 아름다운 남부 출신 금발 미녀의 사진으로 가장하기도 하고, 전형적인 보수 성향 단체 회원처럼 보이는 사진 뒤에 숨기기도 했죠. 사람들이 그에게 인종차별 혹은 성차별 발언을 하도록 낚으려는 의도였습니다. 블레어 씨는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를 온라인에 공개해 그 사람들을 매장해버리곤 했죠. 그는 위트 넘치면서도 직설적인 글들을 끊임없이 써내려 갔습니다. 진보 진영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터넷상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는 아예 전업 정치 평론가가 되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큼은 그는 자기 느낌과 주장을 솔직하게 쓸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키 2m에 몸무게도 150kg에 육박하는 거구의 블레어 씨는 오늘도 안 쓰는 러닝머신과 잡동사니 사이에 밀어넣은 책상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보수주의자들의 페이스북 포럼에 올라온 글과 사진들을 열심히 훑어 내려갑니다. 오늘도 전부 다 대문자로만 약 1,000자 정도 되는 길지 않은 글을 쓸 생각인데, 글의 주제로 삼을 만한 먹잇감을 찾는 것이죠.

찾았습니다.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를 들으며 서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트럼프 대통령의 뒤로는 행사에 초대된 고위 관리와 관계자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 가운데 한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나란히 서 있는 부분에 블레어는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두 여성의 사진에 붉은 색 동그라미를 친 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소설을 써내려갑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이던 이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셸 오바마와 첼시 클린턴을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초청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보다시피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성조기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욕을 하고 있다. 이런 반역자들은 감옥에 당장 쳐넣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 Eli Sa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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