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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끼리는 경쟁하고 동료들과는 협력하는 이유

이 세상 모든 형제, 자매 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우애가 좋은 형제, 남매, 자매를 찾아보기 정말 어렵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티격태격 싸우기 일쑤죠.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서로 돕고 아껴주게 됩니다. 물론 세월이 더 흘러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유언장 내용을 두고 서로 얼굴 붉히고 법원을 드나들게 되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형제 관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기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경쟁(competition)이 될 겁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바다와 같아서 한없이 넓다고 하지만 실제 자식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의 양은 그때그때 정해져 있습니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은 더욱더 그렇죠. 내가 원하는 자원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매번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형, 언니, 동생도 똑같이 원합니다. 자연히 이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가져야 할 때 누군가는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은 가족 안에서 어렸을 때는 암묵적으로, 나이가 들면서는 갈수록 분명하게 발생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는 예외 없이 우리의 피붙이인 형제, 자매가 되죠. 남의 집 자식들은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친구 부모님이 내 친구에게 물려주는 건 당연히 그 친구 것이지 내 것이 될 수 없죠. 철이 들고 난 뒤부터 상속 문제로 다시 형제, 자매와 원수지간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주로 가족 안에서보다 가족 밖에 있는 다른 누군가와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경쟁하게 됩니다. 집 밖의 경쟁 상대를 물리치는 데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는 집 안에 있는 형제, 자매는 서로 든든한 지원군이 됩니다.

형제, 자매는 내 피붙이입니다. 피붙이란 곧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조카를 품에 안았을 때 다른 아기보다 더 큰 애착이 가는 이유는 유전자를 더 널리, 안정적으로 퍼뜨리고 물려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발현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카는 나와 유전자가 비슷한 형제, 자매의 자식이니 여전히 나와 공유하는 유전자가 많은, 특별한 존재죠. 이렇게 친족을 더 먼저 보호하고 아끼는 유전자는 진화를 거듭해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심지어 미생물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최근 작고한 미국의 동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내 가족, 내 친족, 내 혈육만 지키고 챙기는 쪽으로 진화해온 것이 틀림없다. 이것보다 더 분명한 진화의 방향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다름 아닌 유구한 세월을 걸친 진화의 결과라는 겁니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 생물에서 형제끼리 서로 살해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그 드문 현상이 일어날 때 살해 동기를 찾아보면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기제가 또한, 경쟁입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마틴 댈리는 동료 심리학자이자 사별한 부인 마고 윌슨과 함께 오랫동안 형제 살해(fratricides)를 연구했습니다. 마틴 자신이 형제 살해에 가까운 경험을 몸소 했던 적이 있는데, 아기였을 때 친누나가 자신을 산 채로 묻어버리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민족지 연구를 통해 인류 역사를 샅샅이 뒤진 결과 마틴 댈리와 마고 윌슨은 부계 중심 농경사회에서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물려받는 경우 형제 살해가 일어나곤 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부계 중심 농경사회에서는 재산을 축적하고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철저히 가족 단위로 제한됩니다. 가족 내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죠.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형제 살해 대부분이 재산이나 권한을 둘러싼 다툼과 갈등에서 비롯됐습니다. 산업화가 이뤄진 뒤에 일어나는 형제 살해도 그 동기는 근본적으로 같았죠.

물론 형제, 자매도, 친척도 아닌 남남 사이에서 살해 사건이 훨씬 더 빈번히 일어납니다. 형제, 자매 사이에서는 기본적으로 경쟁에서 비롯된 갈등이 격화해야만 최악의 경우 살인이 나지만, 남남끼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사람이 목숨을 잃곤 하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폭력 대부분의 주범인 인간은 다른 인간을 서로 어깨가 부딪혔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상대방이 더럽게 생겼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해치며, 죽입니다.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사례가 하도 비일비재해 범죄학자들은 아예 범행 동기를 분류하는 범주를 하나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범주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비롯된 논쟁”입니다. 시작은 사소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이내 심각한 문제로 비화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웃들끼리의 경쟁에 돈이나 권력 등 실질적인 승패의 결과가 걸린 예도 있죠. 이럴 땐 경쟁이 금방 격화되곤 합니다.

무엇을 두고 경쟁하느냐에 따라 경쟁의 규모나 강도가 결정됩니다. 지역 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내부 승진에 관한 한 서로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같은 일터에 있는 노동자들이 대개 같은 지역에 사는 경우에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곤 합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 동료이자 경쟁자가 됩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은 인재를 뽑고 승진시킬 때 특정 지역이나 좁은 인재 풀만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를 뽑는 만큼 경쟁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셈입니다. 다국적 기업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직접 경쟁 관계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내 경쟁자는 거대한 조직 내 어딘가 나와 마주칠 리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 내에서 경쟁이 심해지면 그만큼 협력은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전 세계 차원의 경쟁은 지역 단위에서는 협력을 이끌어냅니다. 무화과말벌이 짝짓기를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공격성이 진화한 것을 보면 정확히 이런 양상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서도 비슷한 기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대부분 어김없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할 때는 남을 돕지 않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고, 반대로 경쟁의 범위가 넓어 내가 1등을 차지하지 않고 평균 이상만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가까운 사람끼리 힘을 합쳤습니다.

보상이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경쟁이 훨씬 격화됩니다. 자원에 따라 지닌 가치가 다르기 마련이고, 가치가 높은 자원일수록 승리의 보상도, 패배의 아픔도 커집니다. 특히 지역 내의 경쟁은 이 차이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차이가 크게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을 일부 잃더라도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와 행동이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마틴 댈리는 2016년에 펴낸 책 <경쟁을 없애는 법(Killing the Competition)>에서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살인율이 높고, 반대로 평등한 사회일수록 살인율이 낮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봤듯이 경쟁의 범위가 좁을수록 불평등에 따른 폭력이 훨씬 격하게 일어나고, 반대로 전 세계적으로 넓은 차원에서 경쟁이 일어나면 반목하기보다 협력하는 쪽을 택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민이나 이주를 장려해 경쟁의 범위를 가능한 한 넓힐 수 있다면,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이것이 곧 폭력과 최악의 경우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출 수 있습니다. 즉, 불평등이 심화하더라도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 경쟁자와 마주치고 부대낄 일이 없다면 마른 장작이 쌓여있어도 불을 붙일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는 겁니다.

같은 논리를 내전에 적용해봐도 재밌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안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만 봐서는 사람들이 정부에 맞서 무기를 들게 될지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한 세력과 다른 세력 간의, 혹은 그 세력과 지배 세력 사이의 차이나 불평등은 대단히 효과적인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경쟁에 관해 살펴본 논리를 달리 적용한 건데, 경쟁 자체는 국가라는 비교적 넓은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이 민족이나 다른 정체성에 따라 조직한 집단을 단위로 다른 집단과의 차이를 부각해 경쟁에 불을 붙이면 갈등이 격화할 수 있는 겁니다.

경쟁이 사회 전체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는 우리의 삶에 실로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집안에서의 경쟁이 지나치면 가정의 불화가 생기고, 이웃 간의 경쟁이 지나치면 공동체가 삭막해지죠. 하지만 경쟁이 널리 퍼질수록 좁은 집단에서 나타나던 경쟁의 부정적인 효과는 약화되고, 그 자리를 협력과 신뢰라는 전략적 선택이 대신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고 조합을 꾸리며 정부를 세워 원칙을 세우고 신뢰를 구축해 단체로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비슷하게 조직을 꾸린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온, D. B. Kru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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