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 제시카 영 교수는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보건학과 교수입니다.
주거 환경은 넓은 의미에서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사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기대수명(life expectancy)이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최근 새로 발표된 미국 기대수명 데이터를 봐도 이 명제가 다시 한번 증명됩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이 태어날 때 평균 기대수명은 78.8세입니다. 하지만 기대수명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냅니다. 오늘날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난 아이는 75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캘리포니아나 하와이, 뉴욕주에서 태어난 아이는 80살을 넘어서까지 살 가능성이 큽니다.
좀 더 자세히 도시나 마을별로 들여다보면 이 차이는 좀 더 극명해져 몇 km 떨어지지 않은 두 곳의 기대수명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수도 워싱턴 D.C.만 해도 배리 팜스(Barry Farms)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의 기대 수명은 63.2세에 불과하지만, 약 15km 떨어진 프렌드십 하이츠(Friendship Heights)나 프렌드십 빌리지(Friendship Village)에서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96.1세나 됩니다.
불과 15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33년이라는, 한 세대보다도 긴 어마어마한 기대수명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영아 사망률을 비롯해 어린 나이 혹은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예상 기대수명이 무려 41.2세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는 당연히 가족과 공동체에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 경제에도 부담이 됩니다.
특히 중장년층 백인,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기대수명을 깎아내리는 가장 큰 문제는 마약 성분이 있는 오피오이드 약물 중독과 높아지는 자살률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만 봐서는 지역, 인종, 계급별로 나타나는 기대수명의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벌어지고 고착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구성에서 흑인이 많은 지역은 대부분이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인 지역보다 대체로 기대수명이 낮습니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특징과는 구분되는 인종에 따른 기대수명 차이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대개 흑인 공동체는 건강을 챙기는 데 필요한 신선한 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 식료품 가게, 꾸준히 운동하거나 산책할 수 있는 공간, 좋은 의료 시설 등을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중산층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건강을 챙기기 어려운 공동체는 대체로 경제적 번영을 이룰 기회도 많이 얻지 못하는데,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률이 높으며, 교육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은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 악화, 기대수명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한 지역의 경제가 얼마나 활발하게 돌아가느냐는 그 지역 구성원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면 지역 경제가 불황에 빠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대개 가장 낮습니다. 최근 인구조사국과 하버드, 브라운대학교 연구진이 함께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경제적으로 부진한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건강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그로 인해 기대수명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득과 기대수명도 관계가 있습니다. 대체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일찍 죽는 경향이 있죠. 경제적 기회와 소득 계층, 건강 등을 주로 연구하는 경제학자 라즈 체티와 동료 연구진은 미국에서 소득이 낮을수록 평균 수명도 낮아진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미국 전체를 놓고 봐도 지역별로 소득 격차가 큽니다. 고소득층이 많이 살고 돈이 풍족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도 차이가 날 겁니다. 직접 건강에 관련된 분야뿐 아니라 교육 같은 분야는 또다시 미래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투자이기도 합니다.
지역, 인종, 계급은 모두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살고 또 오래 사는지를 결정하는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 정부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곳에서는 특히 저소득층의 기대수명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신선한 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 식료품점을 연다거나 운동이나 금연을 장려하는 등 건강한 행동을 촉진하는 데 정부가 투자하면 결과적으로 기대수명도 높아집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교육 격차, 주거환경 격차,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성 차이 등 사회경제적으로 여전히 인종 간에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양한 격차를 줄이는 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역 사회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기대수명이 반드시 최고의 척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는 지표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컨버세이션, Jessica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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