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란네(Lääne) 지방의 축산업자 오트 사레발리 씨에게 지난해는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9월 축사의 임신한 암퇘지 한 마리가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African swine fever)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즉시 축사에 있던 돼지 7천 마리를 모두 살처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서 빈틈이 생겼는지는 누구도 몰라요. 병균이 있는 어떤 농장을 다녀온 트럭이 우리 마을에 올 때 제대로 소독과 방역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문제는 전염병이다 보니 한 마리만 확진 판정을 받아도 모든 돼지를 다 죽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콜레라 진단이 난 뒤 축사 옆 별채에는 순식간에 암퇘지 200여 마리의 사체가 쌓였습니다. 임신한 암퇘지들만 한곳에 모아놓은 축사에서 콜레라에 걸린 돼지가 발견됐기 때문에 먼저 격리하고 살처분한 겁니다. 어떤 사체는 일주일 넘게 방치돼 악취가 났습니다. 사체의 배가 열려 배 속에 있던 새끼돼지들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돼지 사체들은 기계가 아니라 모두 사람이 손으로 옮겨야 했는데, 사레발리 씨 농장에서 일하는 경험 많은 노동자들조차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워낙 큰 작업이다 보니 손사래를 쳤습니다. 현장에서 살처분되는 운명을 피한 축사 안의 건강한 다른 돼지들도 특수 화물차에 실려 살처분장으로 이동한 뒤 가스실에서 폐사 처리됩니다. 이 모든 작업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걸립니다.
사라벨리 씨는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모두에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한 마리마저 죽고 나면 동물들이 질러대던 비명이 사라지고 갑자기 고요한 순간이 찾아와요. 그 순간이 지켜보는 이에게는 가장 고통스럽죠. 원래 돼지 키우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한데, (살처분 뒤) 가스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요.”
유럽에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가 발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57년 포르투갈에서 발발한 돼지 콜레라균은 비행기 기내식을 통해 옮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남은 기내식을 버려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됐고, 이 물을 마신 리스본 공항 근처 축사의 돼지가 콜레라에 걸린 겁니다. 얼마 안 돼 이웃 나라 스페인과 프랑스로 퍼진 돼지 콜레라는 여러 나라가 협력해 감시망을 가동하고 대대적인 방역에 나선 뒤에도 1990년대까지 유럽 곳곳에서 잊을 만하면 발발했습니다. 남부 스페인에서는 특히 돼지에 기생하는 진드기들이 콜레라균을 옮기곤 했는데, 스페인 정부는 오래된 축사를 헐고 진드기 등 기생충을 방제하기 쉬운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축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발발한 돼지 콜레라는 유럽연합을 비롯해 각국 정부가 예방에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확산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습니다. 이번에는 중동부 유럽에서 콜레라가 시작됐는데, 2014년 1월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2월에 폴란드, 6월에 라트비아, 9월에 에스토니아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이어 2017년 6월에는 체코 동부에서, 올해 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몰도바에서 돼지 콜레라가 발발했습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돼지를 키우는 중국에서도 돼지 콜레라가 발발했습니다. 중국에서 키우는 돼지는 유럽연합의 두 배, 미국의 다섯 배에 이릅니다.
독일 농부들은 현재 독일 전역에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야생 멧돼지 개체를 정부가 나서서 70% 정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영국 펄브라이트 재단에서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를 연구하는 세포 생물학자 린다 딕슨은 “야생 멧돼지가 너무 많으면 돼지가 걸리는 전염병을 통제하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개체를 조절하고 통제하기도 무척 어려워진다”고 말했습니다.
“멧돼지들은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걸쳐서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며 개체 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수영도 잘하죠.”
덴마크는 독일과의 국경에 멧돼지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철조망을 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정부 산하 동물식품안전처의 수의사 시스 베르그 울프는 콜레라가 덴마크로 번지면 피해가 막심할 거라고 말합니다.
“아프리카 돼지 독감이 덴마크에서 발발하면 곧바로 제삼국으로의 가공육 수출이 중단되고, 유럽연합 내에서의 무역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울프는 유럽 전역에 빠르게 돼지 독감이 퍼지고 있는 만큼 덴마크에도 전염병이 도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덴마크는 주요 돼지고기 수출국 가운데 하나로, 덴마크 수의사협회는 돼지 독감이 덴마크에서 발발하면 피해액이 100억 크로네, 우리돈 1조 8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린다 딕슨은 돼지 콜레라균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전에 막을 기회가 없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7년 동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돼지 독감이 조지아에서 창궐했을 때 조지아 정부 당국이 이를 확진하는 데만 석 달이나 되는 시간을 썼던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조지아 정부가 시간을 끄는 사이 콜레라균은 이미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로 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 몇 년간은 그 확산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간간이 돼지 콜레라가 발발해도 방역 당국이 이를 초기에 막아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확산 속도와 발발 빈도가 모두 급격히 빨라지고 잦아졌습니다. 돼지 콜레라 관리와 통제를 주관하는 기관인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사무차장 매튜 스톤 박사는 “현재 돼지 콜레라는 전염병(pandemic) 단계에 이르렀고,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 돼지의 절반가량이 있는 중국에까지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가 퍼졌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중국에서 돼지 콜레라가 창궐하면 중국 경제는 물론 전 지구적인 식량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겁니다. 특히 마땅한 백신이 없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상황을 철저히 주시하며 의심되는 사례는 초반에 근절해야 확산을 막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돼지 콜레라균이 확인된 것은 지난달 1일이었고, 이후 다른 지역에서 세 건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돼지 콜레라 창궐에 대한 두려움에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인한 수출 감소 우려로 중국에서 돼지고깃값이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는 인간에게는 무해하지만, 돼지들은 걸리면 치사율이 높은 질병으로,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는 백신이 없어 축산 농가도 방역을 철저히 하고 사료에 항바이러스 성분을 넣어 돼지를 먹이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한 마리라도 돼지 콜레라 확진 판정을 받으면 예방 차원에서 해당 축사와 농장의 모든 돼지가 살처분됩니다. 지난 2016년과 2017년 2년간 돼지 30만 마리가 돼지 콜레라 확산을 막고자 살처분됐습니다.
감염된 동물이나 동물 사체, 혹은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균이 옮으며, 공기를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지만 생존력이 매우 강력합니다. 콜레라균은 고기를 냉동 보관해도 무려 1,000일 가까이 살아남고, 멧돼지 사체는 물론 사람의 옷이나 신발, 토양 등에서도 무척 오랫동안 죽지 않습니다.
여기에 남유럽에서는 진드기가 보균 및 전염의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또 야생 멧돼지는 물론 소시지도 균을 옮길 수 있는데, 가족 나들이에 가져가 요리해 먹고 남은 소시지에서 콜레라균이 발견된 적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는 돼지 축산 농가를 완전히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을 만큼 워낙 강력한 전염병이기 때문에 1970년대 쿠바 카스트로 정권에 타격을 입히고자 미국 CIA가 일부러 쿠바에 균을 퍼뜨리려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동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맹위를 떨치던 콜레라는 2007년 카프카스 산맥 근처 러시아와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일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또 1978년 사르디니아섬에서 발발한 돼지 콜레라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는데, 섬 안에 야생 멧돼지가 워낙 많고 축산 농가들도 돼지를 방목하며 기르는 옛날 방식을 버리지 않은 탓에 콜레라균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가축 전염병의 심각함을 우리나라, 우리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과연 전염병이 어느 지역에 발발하고 창궐할지, 그렇게 된다면 그게 언제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에스토니아 축산업은 아직도 정확한 피해를 다 집계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대형 산업식 축산업체들은 콜레라균을 완전히 몰아내고 회복 단계에 있지만, 소규모 농가들에 다시 돼지를 기르는 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2014년에 소규모로 돼지 축산 업체는 920곳이었지만, 현재 그 가운데 폐업하지 않은 곳은 125곳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올해 에스토니아에서는 새로운 돼지 콜레라 발병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에스토니아가 나라도 작고 축산업 규모도 작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고 효과적인 방역 체계를 가동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폴란드나 독일처럼 훨씬 규모가 큰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피해를 수습하는 데 얼마나 걸렸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오트 사레발리 씨도 사소하고 부주의한 행동 하나가 끔찍했던 돼지 콜레라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방역에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에스토니아 정부 동물식품 안전위원회의 마르하 크리스티안은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웃 나라의 상황은 특히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됩니다. 에스토니아만 해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지역이 있는데, 사실 그 지역이 가장 위험하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국경 너머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시나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멧돼지들은 번식력이 엄청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돼지 독감을 걱정하고 경계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디언, Animals farmed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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