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악영향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직장에 출근하지 않거나, 지각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일터까지 따라와 스토킹을 하거나 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뉴질랜드 의회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에게 10일간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피해자들이 해고될 위험 없이 이사를 하거나 법적 조언을 구하고 연락처를 바꾸는 등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이러한 법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2004년에 같은 내용의 법을 통과시킨 필리핀 정도죠. 그러나 2015년 필리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법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응답자는 39%에 그쳤고, 가정폭력 휴가를 요청했을 때 고용주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응답자도 26%에 달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일부 주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는 아닙니다. 호주에서는 작년에 노조 연합이 비슷한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5일의 무급휴가를 얻어내는데 그쳤습니다. 뉴질랜드의 법이 무급 아닌 유급휴가를 보장한다는 점은 의미가 큽니다. 뉴질랜드 여성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60%가 폭력적인 관계의 시작 시점에 풀타임 직장을 갖고 있었지만, 폭력이 이어지자 그 중 절반 정도만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상당수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파트너를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63대 57로 통과된 뉴질랜드 법에는 여전히 논란이 따릅니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휴가 기간 동안 급여를 지급할 의무는 정부가 아닌 고용주에 있고요. 한 의원은 이 법으로 인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관련 통계가 없지만, 호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법이 호주에서 통과될 경우 법의 혜택을 받겠다고 말한 사람은 여성 1.5%, 남성 0.3%에 그쳤습니다. 휴가 기간 지급될 급여로 따지면 연간 5900만~8900만 미국 달러에 해당합니다. 가정폭력은 그 자체로도 돈이 듭니다. 상담이나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생산성 감소 등을 고려하면 가정폭력의 비용은 전세계 GDP의 2%에 달합니다. 선진국 가운데 가정폭력 발생률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뉴질랜드의 경우, 연간 27억~47억 달러가 들어가는 꼴입니다.
이 법으로 폭력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뉴질랜드 정부가 공공 캠페인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지만, 고용주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실제로 급여를 지급할 능력과 의사가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겁니다. 제대로 자리잡기만 한다면, 이 법은 충격적인 일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법을 발의한 의원의 말대로, 피해자들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고 이들을 빈곤으로 몰아 넣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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