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줄을 섭니다. 장을 보고 계산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릴 때, 유명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출퇴근 혼잡 시간에 차를 타고 도로에 나가는 것도 결국은 줄을 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줄을 왜 서게 되는 걸까요? 사실 대단히 복잡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닙니다. MIT의 리처드 라슨 교수는 줄을 서는 원리를 한 줄로 요약합니다.
“실시간 수요가 실시간 공급을 초과하면 줄이 생기게 되죠.”
실시간이라는 단서가 중요합니다. 버스에 한 번에 열 명씩 탈 수 있다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될 겁니다. 복날 삼계탕집이 한꺼번에 수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초대형 식탁에 삼계탕 수천 그릇을 한꺼번에 낼 수 있다면 한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릴 일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대수롭지 않은 행위처럼 보이는 줄 서는 일에 사람들은 때로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요? 바로 공정함에 대한 인간 본연의 욕구 때문입니다.
줄 서는 데 있어 공정함이란 선착순, 즉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선웨이 대학교의 휴 길 교수는 줄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봅니다. 선착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누군가 공정함을 해하려 하면 모두가 여기에 분노하며 저항합니다.
내가 서 있는 줄에 누군가 새치기했을 때 화가 나는 이유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각자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라슨 교수의 설명을 다시 빌려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보란 듯이 새치기하는 너란 인간은 도대체 누구냐? 네 시간만 아깝고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내 시간도 똑같이 네 시간 만큼 소중하다. 여기 줄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기저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다는 공정함에 대한 인간의 관념과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정함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라슨 교수가 소개하는 다음 실험 결과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실 분 많을 겁니다.
“사람들은 내가 선 줄이 공정하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한 실험 결과 사람들은 모든 손님이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것을 줄을 서너 개로 나누어 서너 군데에서 주문하는 것보다 선호했습니다. 줄을 서너 개로 나누어 서면 기다리는 시간이 한 줄로 늘어섰을 때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데도 말입니다. 한 줄로 서면 적어도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주문하게 되는 기분 나쁜 상황이 일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줄 서기를 아주 진지하게 여기고, 새치기를 특히 엄중히 단속하는 곳이 바로 지금 대회가 열리고 있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장입니다. 영국식 줄 서기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윔블던에 가보면 된다고 할 정도죠. 경기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줄 서는 원칙과 규정을 담은 책자를 나눠주는데, 책자의 길이만 무려 29쪽이나 됩니다. 여기에는 “새치기 절대 금지”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가수 U2 콘서트장 앞에 늘어선 줄을 두고 한 실험 결과 사람들은 내 앞으로 끼어드는 얌체 새치기 꾼은 물론이고 내 뒤에서 끼어드는 사람도 제지하고 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내 뒤에 끼어든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내게 손해를 끼친 건 아니니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모두를 위해 잘못된 점은 모두 함께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1980년대 유명한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한 실험 결과는 조금 달랐는데,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뉴욕시 곳곳에 늘어선 줄에 가서 앞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쯤에 끼어들게 했습니다. 새치기한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난과 경멸의 눈초리를 받았고 달갑지 않은 말을 듣기도 했지만, 물리적으로 제지를 당하거나 실제 줄 밖으로 쫓겨난 학생은 전체의 10%에 불과했습니다. 막상 선뜻 나서서 얌체를 처단하는 사람들은 잘 없던 겁니다.
이렇듯 공정함 때문에 사람들이 줄에 집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줄 서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잠시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인데, 이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기업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껏 고객의 마음을 얻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 직전에 긴 줄에 싫증을 느낀 고객이 마음을 바꿔 떠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두 시간 동안 즐거웠던 쇼핑이 마지막에 줄 서서 기다리는 5분 동안 불쾌한 경험으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심리학자들과 함께 고객들을 줄에 붙들어 놓을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했습니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맛있는 도넛을 튀겨내고 색깔을 입히는 과정을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습니다. 입맛도 돋우고 덜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면 주문할 수 있게 되죠. 줄의 길이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디즈니랜드에서는 직원들이 줄 중간쯤에 팻말을 들고 서 있습니다. 팻말에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리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지 적혀 있죠. 다만 대기 시간을 너무 자세히 알려주면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은행에서 용무를 보기까지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보여줬더니, 오히려 자꾸 남은 시간만 들여다보게 되고 사람들은 더 빨리 싫증을 냈습니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따분하고 지루한 일이긴 해도 기업으로서는 어쨌든 고객들이 줄을 박차고 떠나지만 않는다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당장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대단히 높다는 뜻이고, 오랫동안 줄을 서서 매장에 들어온 손님은 그렇지 않은 손님보다 씀씀이가 더 크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눈앞에 물건에 그만큼 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줄 잘 서는 팁 몇 가지만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절대적인 비결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역으로 분석하면 공정함을 해치지 않고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마트에서는 수십 가지 물건을 산 한 사람 뒤에 서는 것이 몇 개 안 되는 물건을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 여러 명 뒤에 서는 것보다 나을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물건을 계산할 때는 자연히 계산원의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왼쪽 줄과 오른쪽 줄 가운데 골라야 한다면? 왼쪽으로 가세요. 대부분 사람은 오른손잡이인 만큼 무의식중에 오른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왼쪽 줄이 아무래도 더 짧을 가능성이 큽니다.
계산원이 일하는 것이 잘 보이는 줄에 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따로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도 계산원은 손님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자연히 일을 더 빨리 처리하게 됩니다.
(가디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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