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

감염되지 않은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기생충

촌충(tapeworm)은 머리에 갈고리가 달린 길쭉한 기생충입니다. 이 기생충은 숙주의 장기에 머리를 박고 영양소를 빨아들입니다. 한번 몸을 고정시키고나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촌충은 입이나 내장이 없으며 혈액이 없고 호흡도 하지 않습니다. 차마 뇌라고 부르기 힘든 신경 몇 가닥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생물체는 훨씬 더 복잡한 동물을 조종할 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스키스토세팔루스 솔리두스(Schistocephalus solidus)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다른 촌충들처럼 이 기생충 역시 매우 복잡한 생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새의 내장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은 변을 통해 바깥으로 나옵니다. 알에서 깬 유충은 요각류(copepods)라 불리는 갑각류(crustaceans)를 감염시킵니다. 이들은 큰가시고기에게 먹히고, 큰가시고기는 다시 물새에게 먹혀 긴 순환을 완성합니다.

이들은 이런 순환을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큰가시고기에 들어간 이 기생충은 자신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큰가시고기를 더 따듯한 물가에서 놀게 만듭니다. 다 자란 기생충의 크기는 큰가시고기 무게의 절반에 달합니다. 이 기생충은 숙주를 더 대담하게 만듭니다. 감염된 큰가시고기는 더 위험한 곳을 다니며, 포식자로부터도 덜 도망치게 됩니다. 그 결과 이 물고기는 더 쉽게 새에게 먹히게 됩니다.

뮌스터 대학의 니콜 데만트와 베네딕트 사우스는 이 기생충이 얼마나 자신의 숙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은 큰가시고기떼를 큰 수조에 넣은 후 수면에 먹이를 뿌려 수면으로 유도했습니다. 그 후 손잡이를 이용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짜 부리를 만들어 가공의 “새”가 그들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죠른 피터 스카색은 이 장치를 레고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간단하지만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었죠.”)

가짜 새를 이용해 이들을 공격했을 때, 감염되지 않은 물고기들은 수조의 바닥으로 도망가 풀숲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감염된 큰가시고기들은 계속 위험한 수면에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겁을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겁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지요.”

이들의 대담성은 다른 주변 물고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물속에서 떼를 지어 다니는 여러 물고기들처럼, 큰가시고기 또한 놀라울정도로 다른 큰가시고기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습니다. 각 개체의 판단은 집단의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즉, 기생충에 의해 조종되는 개체들에 의해 전체 집단의 움직임이 기생충의 조종을 따르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데만트와 사우스는 감염된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의 비율을 바꾸어가며 이를 실험했습니다. 그들은 감염된 개체의 수가 절반보다 더 많을때 감염되지 않은 개체들조차도 감염된 개체의 움직임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곧,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대신 위험한 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생충의 간접 조종은 아직 발견된적이 없는 현상으로, 어쩌면 기생충은 이를 통해 부가적인 이익을 얻고 있을지 모릅니다. 곧, 두려움을 모르는 물고기 떼가 수면 가까이에 몰려다닐 경우, 물새들은 이 물고기떼를 더 쉽게 발견하고 공격하게 되며, 따라서 감염된 물고기가 물새에 먹힐 확률을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큰가시고기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다른 고기들의 움직임을 따르는 것은 꼭 잘못된 판단은 아니며, 이를 통해 무리 속에 숨음으로써 더 안전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상황에서는 다수가 되어 오히려 전체를 더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기생충학자들은 숙주의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기생충이 있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UC산타바바라의 생태학자 줄리아 벅의 말입니다. 바퀴벌레를 걷게 만드는 말벌이 있고, 귀뚜라미를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도 있으며, 개미를 좀비처럼 이용하는 곰팡이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기생충이 감염되지 않은 숙주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또다른 교훈을 줍니다. 1950년대 솔로몬 애쉬는 아주 명백한 문제에도 다른 사람들 – 사실은 고용된 배우들 – 이 틀린 답을 고를 경우 실험참가자 또한 그 답을 고른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다른 이들의 답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쨌든 그들의 답을 따라했습니다. 마치 기생충이 감염되지 않은 숙주의 행동까지 바꾸는 것처럼, 사람들 또한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나쁜 생각에 감염된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틀란틱, Ed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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