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가자 지구 경계에 모여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60여 명을 사살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뉴욕타임스는 트위터에 “팔레스타인인 수십 명이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 개관 계획에 항의하다 사망했다”는 트윗을 올렸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늙어서 죽었다는 말인가요?”와 같은 멘션이 줄을 이었고, “#사망했다(#Havedied)”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비난은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영어 문법으로 향했습니다. 좌파 성향의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트윗을 통해 “대부분의 서구 매체들은 수년간의 연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수동태로 묘사해 가해자를 숨기는 일에 매우 능숙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트윗은 5천 번 이상 리트윗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죠.
문제는 뉴욕타임스의 트윗이 수동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트윗에서 사용된 “have died”는 “사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die”의 현재완료형이며 능동태입니다. 오히려 “Dozens were shot by Israeli troops. (수십 명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았다)”와 같이 뉴욕타임스 트윗의 대안으로 제시된 문장이 수동태인 경우가 많았죠.
영어를 비롯해 유럽에서 쓰이는 대부분 언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등 언론사의 스타일가이드를 보면 대부분 수동태 문장을 피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수동태를 쓰면 일단 문장이 길어지고, 수동태는 학계의 글이나 관료주의적 문서에서 주로 사용되는 문장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수동태를 남용하곤 하죠.
그러나 수동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종종 통사론(syntax)과 의미론(semantics)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통사란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스티브가 존을 걷어찼다(Steve kicked John.)”라는 문장에서 스티브는 주어이고 존은 직접목적어죠. 하지만 “존이 스티브에 의해 걷어차였다(John was kicked by Steve.)”는 문장을 보면 상황은 같지만, 존이 주어가 되죠.
뉴욕타임스의 문장이 욕을 먹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문장의 형태가 아닌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상기한 예를 보면 상황을 수동태로 쓰나 능동태로 쓰나 존과 스티브의 “역할”은 바뀌지 않습니다. 다만 “가해자”인 스티브를 숨길 수 있는 문장은 수동태 뿐이죠. (“John was kicked.”) 이는 수동태 문장이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는 수동태 문장이 아닙니다. “die”는 자동사로, 직접목적어와 함께 쓰일 수 없습니다. 직접목적어가 없으므로 수동태로 바꿀 수도 없죠.
뉴욕타임스가 욕을 먹은 이유는 자동사를 잘못 썼기 때문입니다. 총알이 날아갔다면 당연히 쏜 사람이 있고 맞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보도의 기본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했는지를 기사 제목과 첫 줄에 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언제, 어디서, 왜”가 되어야 했지요.
하지만 완전한 팩트를 정확히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특정 시각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군인들이 다수의 집회 참여자를 사살했다”와 “다수의 집회 참여자들이 군인들에 의해 사살됐다”는 똑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느낌이 다르죠. 첫 번째 문장이 정확히 군인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는 반면, 두 번째 문장은 희생자들을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단어 선택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희생자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문장은 수동태로건(“시위대가 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다”), 능동태로건(“군대가 시위대를 대량학살하다”)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군의 입장을 담은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이 폭도를 향해 발포하다”라고 능동태 문장을 쓸 수도 있고, “광란의 폭도들이 국경에서 저지되다”라고 수동태로 써도 되죠.
이렇게 수동태 문장이 명확하게 상황을 그려내고, 능동태 문장이 회피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법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입니다. 사안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 있더라도 보도에 모든 관련 팩트를 담아내는 것이 기자의 사명일 것입니다. 헤드라인과 기사의 첫 줄은 특히 중요합니다. 매번 완벽한 기사를 써내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터무니없이 큰 헤드라인 글자 크기를 줄이고 정보를 좀 더 담아내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키보드 앞에 앉아 계신 문법학자 여러분께는 죄 없는 수동태에 대한 공격을 멈춰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회피적인 문장은 능동태로도, 수동태로도 쓸 수 있습니다. 문법 논쟁을 멈추고, 교묘하게 진실을 가리는 모든 문장을 공격합시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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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팔레스타인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평화는 언제 오나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