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말하는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은 이제 ‘투쟁, 도피 혹은 경직 반응’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립니다. 스트레스 전문가들은 사슴이 헤드라이트를 보고 멈추는 것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몸이 경직되는 현상을 기존의 ‘투쟁 혹은 도피 반응’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투쟁 혹은 도피’는 생존을 위한 우리의 반응이고, 이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있거나 도망갈 기회가 있을 때 이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 경직 반응은 어떠한 희망도 없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스트레스 대응책은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방책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안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를 쌓아두었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숲에서 맹수가 뛰쳐나올 때, 우리 조상들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급격하게 신체 에너지를 끌어내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이는 진화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다듬어진 반응입니다. 이러한 신체의 변화는 심장이 겨우 한 번 뛸 동안 일어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엄청난 힘을 낼 수 있으며 (차에 깔린 아이를 꺼내려고 차를 들어 올린 엄마의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그 힘은 사라집니다.
나는 아홉 살 때 덩치 큰 동네 형에게 물풍선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물풍선은 정통으로 맞았고 그 형은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속도로 도망갔고, 눈앞에는 1.2m 정도 되는 돌담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키와 비슷한 그 돌담을 뛰어넘었습니다. 바로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이 위기 상황에서 내게 추가적인 에너지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경직 반응은 다르게 작동합니다. 이는 우리가 공격자에게 압도당하고 생존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없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최근 국립공원에서 회색곰을 만난 남자가 죽은 척 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망가는 동안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갑자기 회색곰은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어쩌면 오래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곧 경직 반응이 그에게 고통을 참으면서 완전히 죽은 듯이 몸을 뻗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투쟁, 도피 혹은 경직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자율신경계(ANS)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자율신경계는 우리 뇌와 신체 기관, 근육을 조절하는 두 종류의 신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감 신경은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을 관장합니다. 교감 신경은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근육이 더 긴장하며, 동공이 확대되고, 점막이 마르도록 합니다. 이는 싸우거나 도망칠 때 더 잘 보고 더 쉽게 호흡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반응이 단 1/20초, 곧 심장이 채 두 번 뛰기 전에 일어납니다.
부교감 신경은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에 이제는 긴장을 풀어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위기가 지나갔으니 경계를 늦추어도 된다고 말입니다.
하품하고 기지개를 켤 때, 운동 후에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 부교감 신경의 역할입니다. 밤에 불을 끈 뒤, 우리를 잠들게 하는 것도 부교감 신경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체를 이완시키는 호르몬과 천연의 진통제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우리가 경직 반응을 일으킬 때도 엄청나게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진통제 성분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이자 저자인 UCLA의 다니엘 J 시겔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때 활성화되는 부교감 신경계 일부를 도설 다이브(Dorsal Dive)라고 부릅니다. 이 반응은 맹수에게 쫓기던 동물에게 실제로 이익을 주었을 겁니다. 죽은 척함으로써 살아있는 먹이만 먹는 맹수는 이 동물에 흥미를 잃습니다. 경직 상태에서는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져 출혈로 잃게 되는 혈액의 양도 줄어듭니다. 또한,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머리에 피가 돌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피터 리바인 박사는 생존 트라우마에 관한 영상 중에 사자가 새끼 영양을 쫓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경직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는 영상이 짧은 이유는 사자의 공격이 평균 45초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또한 먹잇감의 스트레스 반응 (우리 인간을 포함해) 역시 그 정도의 시간 동안 일어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몇 시간이나 며칠이 아니며,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려 이를 어쩌지 못하는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물론 45초가 되기 전에 사자는 영양을 잡습니다. 사자는 잔인하게 영양의 목을 물고 바닥에 몇 번 내려칩니다. 영양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합니다. 사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아마 자신의 새끼가 영양을 먹을 수 있게 데리러 갔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영양은 말 그대로 부활합니다. 오랜 잠에서 깬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달려나갑니다.
인간 역시 공포에 휩싸이거나, 도망칠 가능성이 없거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때 경직 반응을 보입니다. 자동차 사고, 강간, 총구를 눈앞에 둔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때로 정신을 잃고, 신체는 힘없이 쓰러지며,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이를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사실들 때문에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이 이제 투쟁, 도피 혹은 경직 반응으로 불립니다. 때로 우리는 압도적인 상대방 앞에서 싸우거나 도망갈 의지를 잃으며 그저 몸이 얼어붙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경직 상태에 빠진 후 살아남아 이후 오랜 시간을 부분적인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스트레스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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