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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버블을 넘어서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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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를 최고의 기치로 내건 암호화폐에도 핵심 노드는 있습니다. 이더리움을 예로 들면 이더리움계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인 조셉 루빈이 만든 콘센시스(ConsenSys)가 뉴욕 브루클린에 본사를 두고 운영하는 노드는 이더리움 핵심 노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난해 11월, 콘센시스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 아만다 거터만(26)의 안내로 사무실을 구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 만난 지 몇 분이 채 안 됐을 때 그녀는 제게 여기 오면 다 마셔야 한다며 커피를 한 잔 권했는데, 그러고 나서 보니 사무실에서 쓰는 드립커피 기계가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아만다 거터만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이거 민망하게 됐네요. 커피 한 잔 대접 못하면서 인터넷을 고치겠다고 하고 있는 꼴이니…”

브루클린 부시윅 지역의 로베르타라는 피자집 바로 옆에 있는 콘센시스 사무실은 위치와 겉모습만 봐서는 본사라고 부르기 좀 머쓱해질 정도입니다. 사무실 정문에는 낙서와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사무실로 들어가도 계단이나 실내 공간을 마지막으로 보수한 것이 거의 100년이 다 돼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콘센시스는 창업한 지 3년 만에 28개국에 550명 넘는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흔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한 번 받지 않았을뿐더러 조직 자체도 기존에 우리가 아는 분류에 끼워맞추기 힘든 면이 있을 만큼 독특합니다. 먼저 분명 콘센시스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비영리단체 혹은 직원 사업조합의 특징도 보입니다. 콘센시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는 명확합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이 더 널리, 충실히 쓰이도록 이바지하는 거죠. 콘센시스는 새로운 앱과 플랫폼에 쓰이는 도구를 만드는 개발자들을 지원합니다. 대표적인 도구로 메타마스크(MetaMask)가 있는데, 이더리움 개인 주소를 생성해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개발자 지원뿐 아니라 이더리움의 스마트계약을 도입하고 활용하려는 여러 회사와 비영리단체, 정부기관에 직접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온라인 기업과 서비스의 위기가 그랬듯이 결국, 블록체인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신원 문제, 즉 개인정보 처리 문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온라인 신원은 디지털세계 곳곳에, 즉 수십, 수백 개에 이르는 웹사이트에 흩어져 있습니다. 아마존은 신용카드 정보와 구매 내역을, 페이스북은 가족, 친구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를, 에퀴팩스는 신용점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실상 내 활동내역과 정보를 잠시 빌려달라고 이 회사에 요청하는 셈입니다. 그 정보가 있어야 삼촌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도 고를 수 있고, 지난밤 회식때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흔적이고 내가 무언가를 한 기록이지만, 이러한 나의 온라인 신원은 내것이 아닙니다. 신원의 주인은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모든 수많은 고객 정보 가운데 일부를 고객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광고주들에게 팔 수 있습니다. 그게 싫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계정을 삭제하고 그 서비스를 탈퇴하면 그만이긴 합니다. 페이스북을 끊으면 주커버그와 페이스북 주주들은 페이스북의 진짜 고객인 광고주에게 팔 수 있는 고객 정보를 하나 잃는 셈입니다. 문제는 페이스북과 구글에 저장돼 있던 온라인 신원이 쉽게 복사해서 붙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페이스북 대신 러시아 해커들이 심어놓은 봇에 덜 오염된 어떤 소셜네트워크에 가입하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트위터에 있는 내 팔로우 정보를 그대로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에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일일이 팔로우, 팔로잉을 새로 하고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나를 찾아서 팔로우해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블록체인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재 인터넷 대기업들의 접근법 자체가 애초에 위아래가 뒤집혔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 생년월일부터 친구 관계, 구매 목록과 결제 내역에 이르기까지 나의 온라인 신원, 내 개인정보를 다른 누군가가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내 온라인 신원의 주인은 당연히 나여야 하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인터넷 서비스가 있을 때 그 서비스에 나의 정보를 대여해주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원래 인터넷 프로토콜에 이러한 온라인 신원과 개인정보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비트코인 이전에는 분산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신원을 그 주인이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습니다. 이미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 덤벼든 서비스가 있습니다. 유포트(uPort)라는 새로운 온라인 신원 관리 서비스는 콘센시스의 지원을 받아 개발되고 있고, 비트코인 플랫폼에서 운영되는 서비스 가운데 블록스택(Blockstack)이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팀 버너스리도 기본적으로 이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솔리드(Solid)라는 비슷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프로토콜들을 살펴보면 실행 방식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된 인터넷에서 온라인 신원이 어떻게 관리되고 유통돼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과 목표는 모두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블록체인 기반 개인정보 및 신원 표준이 팀 우가 말했던 이른바 “필연적 주기”를 따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필연적 주기를 따른다면 결국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도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대기업의 부품이자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것이고, 이는 블록체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끔찍히도 싫어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사실 이를 예방할 구체적인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필연적 주기라는 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새로 프로토콜을 하나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운영한다고 해봅시다. 시작은 아주 간단할 겁니다.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공개된) 이더리움 주소 목록을 적어놓는 겁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작성한 이 목록이 페이스북이라는 폐쇄형 시스템에 적어둔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확장될 겁니다. 언젠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데이터를 공유할 때 개방형 프로토콜인 TCP/IP를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원리는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간관계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은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퍼지더라도 폐쇄형 시스템이 사실상 표준으로 굳어진 지금 상황에서처럼 데이터를 관리하는 독점 기업이 이를 함부로 다루고 조작할 여지가 없습니다. 페이스북 대체재라 할 수 있는 가상의 이더리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내 친구관계와 친구들의 활동을 토대로 분석해 맞춤형 뉴스나 이야기, 음악을 추천해주도록 최종적으로 허락하는 건 전적으로 내 몫입니다. 그러다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른바 전환비용 걱정없이 얼마든지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볼 수 있고 옮기면 그만입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핵심 데이터라 할 수 있는) 온라인 신원과 친구 관계를 폐쇄형 대신 개방형으로 하도록 표준을 정해버리면 데이터에 대한 최종적인 권한이 그 데이터의 주인들에게 돌아갑니다.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이 알게 모르게 데이터를 빼돌리고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대신 각 개인은 원하면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이에게 자기의 정보만 제값을 주고 팔 수도 있고, 그게 싫으면 개인정보를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는 쪽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콘센시스의 마케팅 책임자 거터만은 의료 기록과 같은 훨씬 더 민감한 데이터에도 똑같은 원칙의 개방형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게놈 지도를 사기업이 관리하는 서버에 저장하는 대신 개인별 데이터 저장소에만 저장하도록 하는 겁니다.

“내 모든 것이 담긴 게놈 지도를 보여주기 싫은 기업이나 대상이 얼마든지 있을 거 아녜요. 반대로 의학 연구에 쓰이는 거라면 얼마든지 데이터를 공유하고 기증할 생각이 있을 수 있죠. 이런 기준에 따라 블록체인에 저장된, 내가 주인인 나의 정보를 누군가에게는 공개하고 누군가에게는 접근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혹은 누군가에게는 대가를 받고 데이터를 판매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기부할 수도 있습니다.”

토큰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블록체인 신원 기준에는 페이스북 같은 폐쇄형 신원 관리보다 뚜렷한 장점이 또 있습니다. 이미 많은 비판이 제기된 것처럼, 현재 소셜미디어상에 콘텐츠를 올리는 일반 이용자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습니다. 이용자가 만든 콘텐츠를 내보내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기업이 광고를 유치해 경제적 가치를 몽땅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토큰 기반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적어도 새 플랫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만한 곳으로 꾸미는 데 기여하는 초기 이용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보상이 지급됩니다.

“누구든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인데 이용자가 네트워클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며 콘텐츠에 따라 보상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그 서비스를 이용할 것입니다.”

딕슨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에 분산해 저장한 정보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정교하게 설치한 방화벽으로 보호하는 것보다 안전할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즉, 비트코인은 분명 통화로 쓰기에는 가격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원리를 살펴보면 분산원장에 거래 기록을 저장하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딕슨이 설명을 이어갑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시가 총액을 한 번 보세요. 800억 달러, 250억 달러. 사실 정확히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아무튼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죠. 그렇다면 누군가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해킹할 수만 있다면 몇십 억 달러 빼돌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버그 바운티가 뭔지 아세요? ‘내 시스템을 해킹하면 그 대가로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식으로 버그를 찾아내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겁니다. 비트코인에는 지금 수십억 달러의 포상금이 걸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비트코인이 9년 동안 단 한 번도 해킹된 적이 없어요. 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신원 프로토콜은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돼 있다는 점에서 보안이 뛰어납니다. 블록스택이 제공하는 개인정보와 신원 시스템을 보면 사회적 관계, 구매 내역 등 당신의 실제 개인정보 그 자체는 온라인 어디든 저장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는 이 정보를 불러오려면 암호화된 보안키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불러낸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상대방하고만 공유하게 하죠. 이용자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가 중앙화된 보관소 한 곳에 모여있는 체계는 기본적으로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안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앙 보관소를 허니팟, 즉 꿀단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해커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신용정보 수백만 건을 확보하고자 개인 컴퓨터 수백만 대를 해킹해 원하는 정보가 나올 때까지 데이터를 뒤지고 또 뒤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에퀴팩스의 꿀단지 하나를 털어서 몇 시간 만에 신용정보 수백만 건을 유유히 들고 사라지겠습니까? 거터만의 말처럼 이는 “집 하나를 터는 것과 마을 전체를 터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블록체인을 이루는 골격의 상당 부분은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을 이용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관한 예측을 토대로 주조됐습니다. 바로 이 점이 블록체인의 매력이자 잠재력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블록체인은 한 편으로는 투기의 욕망을 먹고 자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투기의 욕망을 거름 삼아 블록체인 상에서 탈중앙화의 가치를 지지하는 이들이 암호화폐를 고루 나눠 가지게 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소규모로 의기투합한 이들이 전체 데이터베이스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암호화된 개인 열쇠 덕분에 국가나 빅브라더의 감시를 피하고 개인정보 도용 위험을 대폭 낮췄습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블록체인과 헌법 사이에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헌법을 만들 때 이 조항이 어떻게 해석되고 하위 법률을 규정해 실제로 적용될지를 예상하고 고려하는 것처럼, 블록체인도 많은 사람이 실제로 블록체인을 활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염두에 두고 기본 규칙을 정한 겁니다.

비트코인을 포함해 법정화폐가 아닌 많은 암호화폐의 기반은 이처럼 무정부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가치에 닿아있습니다. 내 신원 데이터의 주인은 바로 나니까 데이터의 쓰임에 관한 결정도 내가 한다는 식의 표현과 단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얼핏 들으면 몬태나주 같은 어느 시골에서 중앙정부에 맞서 봉기라도 일으키려는 군벌들이 내건 구호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데이터와 자원을 소수에게 집중시키지 않는 블록체인의 원칙과 가치는 이 세상의 부를 좀 더 공평하게 나누고 디지털 시대에 형성된 권력의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솔깃한 신세계입니다.

또한, 정보 독점과 같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국가의 권력을 빌리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점에서도 블록체인의 세계관은 분명 자유지상주의적입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규제에 반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그 규제가 블록체인 기술의 단점과 약점을 보완하는 성격의 규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브래드 번햄은 규제 당국이 먼저 “누구나 자신의 고유 데이터를 소유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개개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기기에 저장해 둔 온라인 신원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러한 신원 프로토콜을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블록체인 위에 오픈소스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각 분야가 협력하지 않으면 이렇게 개인 정보를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은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일종의 지식과 정보 창고처럼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관리할 공간을 만들고, 그 운영 비용은 암호화폐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라는 이들의 욕심에 기대어 충당해야 하며, 정부가 문제점을 보완하는 규제를 만들어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처음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도 거의 공동체주의나 공산주의에 가까운, 대단히 급진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기저에 있는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자극해 동력을 얻기도 하지만 말이죠. 인터넷이 생기고 처음 몇 년간 개방형 프로토콜이 표준이었고, 정보는 누군가 독점해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관리하고 누리는 자원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어 인터넷 2층 시절로 넘어오면서 폐쇄형 구조로 된 기업들이 데이터와 자원을 전유하는 식으로 바뀌었지만요. 이 시절을 거치며 우리가 확실하게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특히 기본 구조를 세우는 문제에 관한 한 개방형이 항상 폐쇄형보다 더 낫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시점에서 개방형 프로토콜의 시대, 인터넷 1층 시절로 쉽게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벌써 거의 50년 전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움틀 때와 같이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서 갑자기 구세주와도 같은 새로운 프로토콜이 탄생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블록체인은 분명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투기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놓고 보면 그런 평가가 지나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기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개방형 프로토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알아채고 거기에 자원을 투자한 사람들의 결정이 쌓이고 쌓여 전체 시스템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모두를 이끌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개방형 프로토콜의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블록체인에 있습니다. 모두가 훨씬 더 공평하게 자기 몫을 누리게 되리라는 꿈 같은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지도 결국 블록체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블록체인 안에서, 블록체인과 함께 살아가는, (후안 베넷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구자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이대로 계속 작동하도록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기존에 알던 연방 통신위원회의 규제만으로 이를 고쳐낼 수 없다는 것도 잘 아실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전히 새로운 코드, 새로운 틀입니다.

(뉴욕타임스, Steven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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