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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엄마? 미국 중간선거에 출사표 던진 “엄마” 정치인들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차려주는 자상한 엄마의 모습. 그동안 미국에서 여성 정치인이 선거 홍보 전단이나 웹사이트 배경화면으로 내세운 단골 이미지는 바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돌보고 위할 줄 아는’ 엄마의 이미지였습니다. 유권자들이 품은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고 이 후보가 “비록 여성이지만”, 보시다시피 개인적인 야망보다는 모든 걸 다 내어주는 엄마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대표로 적임자라는 메시지와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2018년의 정치 유세 광고 속 엄마의 모습은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등장한 엄마의 이미지는 더 이상 남을 위해 희생하고 묵묵히 남을 돌봐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역할과 직함, 경험은 오히려 엄마 아닌 이들이 가질 수 없는 강력한 무기이자 장점이 됐습니다.

민주당 후보 가운데는 자기 아이가 아팠을 때 엄마로서 느낀 생생한 고통을 풀어내며 서민들의 의료보험을 앗아가는 정책을 앞장서서 막아내고자 선거에 출마했다는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위스콘신과 메릴랜드 주지사직에 도전한 엄마 후보 두 명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동영상에 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일리노이)은 상원 본회의장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없게 한 규정을 바꿔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덕워스 의원은 지난주 월요일 임기 중 아이를 낳은 역사상 첫 번째 미국 상원의원이 됐는데, 본회의장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모유 수유해야 하는 엄마 정치인이 투표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어린 자녀를 둔 엄마 정치인이 공직에 선출되면 일과 육아를 무리 없이 병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에 출마하는 후보 가운데 아이가 아주 어린 엄마 후보들은 꽤 많이 눈에 띕니다. 엄마 후보들은 오히려 엄마로서 일과 육아를 성공적으로 해온 경험과 경력이 실타래처럼 얽힌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오는 데 필요한 자질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당 후보 중에서는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운 후보들이 많습니다. 일리노이주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나서는 벳지 덕센 론드리간 후보는 아들 잭의 투병 과정을 전했습니다. 혼수상태에까지 빠졌던 잭은 목숨이 위태로웠으며 의사는 잭의 뇌가 손상될 수도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잭은 후유증 없이 완전히 회복했지만, 론드리간 후보는 아들의 투병 과정을 지켜본 이후 자신이 하원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합니다. 하원은 지난해 5월 이른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 개혁안을 폐지하는 새 의료보험 법안을 통과시켰고, 론드리간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 하원의원이 오바마케어 폐지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봤습니다.

“의료보험 없이 사는 사람들을 수없이 늘려놓고 이를 자축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등에 칼을 꽂고 웃고 있는 모습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엄마 후보들에게 자녀들의 안전은 언제나 가장 우선해야 할 가치입니다. 총기 규제에 대한 찬반은 정치적인 견해에 따라 나뉘지만, 엄마 후보들이 꼽는 찬성 혹은 반대의 이유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의 안전이 포함돼 있습니다. 위스콘신주 주지사직에 도전하는 많은 민주당 예비후보 가운데 한 명인 켈다 로이스는 세 살 난 딸이 유치원에서 조용한 데 몸을 숨기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훈련을 받은 이야기를 전하며, 제대로 된 총기 규제는 뒷전인 채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훈련을 시키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엄마 정치인들은 그동안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엄마라는 지위와 연관 지어 설명해 왔습니다. 미국 여성정치협회의 정치학자 켈리 디트마르의 설명에 따르면, 공화당 상원의원이던 켈리 아요트(뉴햄프셔)는 정책 홍보에 예산을 한 푼도 낭비할 수 없는 이유로 자기 아이들을 비롯해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꼽았습니다. 공화당 하원의원 캐시 맥모리스 로저스(워싱턴)는 임기 중에 아이 셋을 낳았으며, 다운증후군 증상이 발견된 태아를 낙태하는 데 반대했습니다. 로저스 의원의 아들은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공화당 후보들이 그리는 엄마 정치인의 모습이 전통적인 이미지에 더 가깝다고 디트마르는 말했습니다.

반면 새로 등장한 민주당 엄마 정치인들은 그동안 이어져 내려온 관습을 과감히 떨쳐내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제를 펴고 있습니다. 이들은 엄마라는 사실이 표를 얻는 데 꼭 도움이 되지만은 않는다는 연구 결과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엄마는 육아를 비롯한 가사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그만큼 공직에 충실하지 못하는 한계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정치인들이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너무 많이 내세우지 않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습니다.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예로 들어보죠. 켈다 로이스 후보는 선거 홍보 영상을 촬영하던 중 자신의 갓난아기가 울자 자연스레 젖을 먹이며 아이를 달랬고, 그 장면을 홍보 영상에 넣었습니다. 마침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BPA라는 물질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아 아이 젖병에서도 검출됐다는 상황을 설명하며 위스콘신주가 앞장서서 BPA를 규제하는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현직 메릴랜드 주지사인 공화당 레리 호건 주지사에 도전하는 민주당 후보도 상당히 많습니다. 메릴랜드주 주지사 민주당 예비후보 가운데 한 명인 크리시 비그나라자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홍보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메릴랜드주 정부 요직과 메릴랜드주를 대표하는 연방 정치인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다”는 메시지로 영상이 시작되죠. 이어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정책 보좌관을 지낸 비그나라자 후보가 일하는 장면, 그녀가 내세운 정책들이 열거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모유 수유 장면이 나옵니다. 영상을 끝맺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래리 호건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들 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엄마이자, 여성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주지사가 되겠습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기존 정치권의 관행과 관습에 대한 거부감이 감지된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기존 기득권 정치권에 대한 염증이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인이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엄마라고 못할 이유가 없는 셈이 되는 겁니다. 심지어 엄마 기업인이 정치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고요.

정치 분석가 마기 오메로는 미투 시대의 성폭력 문제와 인종 문제 등 현재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에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터놓고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이 더 적합하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해진 거죠.”

엄마라는 것은 오랫동안 정치인에게 장점이기도 했지만, 짐처럼 여겨진 것도 사실입니다. 책 <엄마라서 치른 정치적 대가>의 저자이자 브랜다이스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질 그린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여성이 자기 자신을 변호하거나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 기울인 노력은 그동안 잘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여성이 여성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때만 찬사를 보내곤 했죠. 누군가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고 하면 또한, 엄마여야만 여성으로 인정되는 잘못된 기준이 고착화되기도 합니다.”

그린리 교수도 정치 지형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최근 정치에 입문한 여성 정치인들은 대개 더 젊고 지역에서 기반을 다져 전국적인 주요 보직에 출마하는 전통적인 경로를 밟지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미국 가족계획연맹의 세실 리차즈 회장은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본인의 어머니 앤 리차즈의 사례를 들며, “어머니는 오랫동안 (여성은)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시절을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시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예전에는 여성은 훨씬 더 많은 성취를 이룩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공직에 오를 기회가 주어졌죠. 여성과 남성에게 적용된 기준을 비교해보면 여성에게 적용된 잣대가 세 배 정도는 엄격했어요. 그런데 여성이 이미 일상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일들, 예를 들어 학부모회를 운영하거나 아이를 키우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 등이 실은 전부 다 공직에 선출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질이 충분히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죠.”

엄마라는 이름은 이렇게 공직에 필요한 자질을 보증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안보 분야 같은 경우처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뛰어넘기 위해 엄마 정치인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2016년 선거 기간 바바라리 가족 재단이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은 자녀가 어린 엄마 정치인을 여전히 가장 못 미더워했습니다. 반면 남성이면 아빠일 경우에도 자녀의 나이가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엄마 정치인들은 이런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를 당찬 자신감으로 뛰어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바바라리 재단의 이사장인 바바라 리는 엄마 정치인들이 직감적으로 이슈를 선점하고 의제를 설정해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마치 그런 관습이나 걸림돌이 언제 있었냐는 듯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어요. 기득권에 유리하게 굳어진 제도와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덧 뿌리 깊이 굳어진 현재 상황을 바꾸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바뀐 시대에 맞춰 엄마의 역할과 엄마됨을 다시 평가하자는 솔직한 의견이 널리 환영받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인터뷰 도중 젖을 먹이는 장면을 선거 영상에 담았던 위스콘신 주지사 예비후보 켈다 로이스는 한 유권자로부터 주지사가 되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냐는 핀잔 섞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스콘신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한 남성은 로이스 후보에게 자신에게는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 Susan Ch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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