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

마법사와 예언자(The Wizard and the Prophet): 스티븐 핑커와 유발 노아 하라리(2/2)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하라리는 이들의 전성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푸틴이나 트럼프와 같은 반동주의자일까요? 아닙니다. 핑커와 마찬가지로 하라리 역시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노령층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정치관과 무관하게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늙은이들에게 커다란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반동은 죽어가는 괴물의 울부짖음일 뿐입니다.

그럼 종교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를 무너뜨릴까요? 이것도 답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핑커와 하라리는 종교에는 미래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니체가 신의 사망 진단을 내린 지 100년이 넘었지만, 신은 여전히 부활을 꿈꾸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환상일 뿐이다. 신은 죽었고, 단지 시체를 치우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다. 이슬람 급진주의는 그들의 열심과 무관하게 21세기 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위기와 기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 패키지에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

하라리가 옳다면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향후 10~20년 이내에 핑커가 ‘계몽’에서 그렇게 칭송했던 과학적 진보에 의해 무너지게 됩니다. 성경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기독교의 신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인본주의의 신에 해당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믿음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알고리듬은 이미 당신의 친구나 가족보다 당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3년 전 호모데우스에서 이번 페이스북 스캔들을 이미 예견했습니다. 그는 과거 홍보 산업의 성과가 곧잘 부정된 것처럼 지금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알고리듬 산업의 성과 또한 같은 반응을 얻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이 쉽게 조종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자는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고리듬 산업의 성공은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어느 정도는 다른 이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 의심합니다. 러시아 댓글 부대가 만든 “가짜뉴스”를 믿고 있는 페이스북 친구 몇몇도 떠오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또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고리듬을 지배하는 자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투표함을 건드리거나, 지역구 기준을 바꾸거나, 선거를 조작하지 않고도 선거 결과를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돈 드레이퍼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조작했던 것처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곧, 오웰이 상상했던 그런 방식으로 알고리듬은 당신의 삶을 조종하게 될 것입니다. 촘스키와 같은 편집광적 미디어 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의 뜻이 어떻게 조작됐는지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유권자의 판단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미래의 알고리듬에 의해 위협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라리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헐리우드는 헤이즈 규약을 만들어 온갖 도덕적 검열을 일삼던 20세기 중반에도 나쁜 이들이 결국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되는 한 간통, 범죄자, 팜므 파탈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원리로 21세기의 서구 지식인 역시 진보, 기술, 근대성, 과학, 자본주의에 대한 찬사를, 적어도 어떤 일이 멀리서 일어나고 있으며, 인간은 교만의 값을 크게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한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와 핑커의 ‘계몽’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다른 것입니다.

하라리 역시 호모데우스의 1장에서 비평가들이 즐겨 비판한 핑커의 새 책의 주제인 인류의 진보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누구도 하라리를 단순한 현대 문명의 변호인이라거나 과학에 대한 낙천주의자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의 책에 아첨하는 비평들이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난 것일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핑커는 악녀가 이야기의 마지막까지도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이야기를 쓴 ‘마법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히 마녀가 마지막에 행복을 찾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썼습니다. 세상에!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군요. 팝 음악을 듣는 행복하고 건강한, 웃음이 헤픈 친구는 분명 생각의 깊이도 얕을 것이고, 구석에서 더스미스를 들으며 고뇌에 빠져있는 우울한 녀석은 아마 심오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식입니다.

핑커와 하라리가 서로 논쟁한다면, 나는 핑커가 이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라리는 자신을 의심하는 지식인이지만, 핑커는 논쟁 클럽의 클럽장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그는 훈계하듯 말하며, 그가 가진 확신은 때로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합니다. 당신은 논쟁을 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설교를 듣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나는 그가 실제 삶에서도 그런 이데올로그처럼 행동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글은 분명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사람이 사실상 대부분의 사실에 동의하고 있으며, 또한 같은 미래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핑커는 인간의 진보와 위업이 계속될 것이라 노래하는 것이며, 하라리는 바로 그런 노래가 미래를 어둡게 만들 것이라 예측하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자처럼, 하라리의 예언 역시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1부로

(퀼레, John Faithful H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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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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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좋은 글이네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은 후 '호모데우스'를 읽을 때의 제 감상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제가 이 기사 링크를 클릭하도록 한 것은 구글Now 의 기사 추천 알고리듬이네요....

  • 아마도 과거의 플라톤적 인본주의에서 보다 현실적인 과학적 인본주의로 수정을 해야하겠죠. 인간이 헛점투성이지만 우리는 인간사회이므로 인간이 최고의 가치를 가져야합니다.

  • "나는 두 사람이 사실상 대부분의 사실에 동의하고 있으며,~" 이 문장에서 뒤 "사실"은 matters의 번역어인데, "논점"이나 "사안" 정도로 바꾸어 번역하면 어떨까요?

    • 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말씀하신 부분은 어느 정도 선택의 문제라 볼 수 있겠구요. 즉, 사람에 따라 제안하신 '논점'이나 '사안'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표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특히 위 문장의 경우 '사실상 대부분의 사실에'가 제 나름의 언어 유희를 구사한 부분이라 저는 바꾸고 싶지는 않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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