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성을 다루는 방식은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이 때문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성을 둘러싼 투쟁의 양식은 변해 왔습니다. 인종간 결혼금지법(anti-miscegenation)에서 동성애와 성노동의 불법화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성관계를 해야 하는지 규정해 왔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바람직한 성관계를 개인의 선택과 성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동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의 여부는 특정한 성관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성관계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에는 매우 모호합니다. 이는 성이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매매야말로 어떤 특정한 행동을 어떤 가격에 할 것인지를 양자가 사전에 거래를 통해 동의한다는 점에서 그 기준을 만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성관계가 두 개인의 독립적인 합의 후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앞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게 될지를 미리 알지 못합니다. 욕망이나 만족감의 구체적인 사항들은 성적인 순간에 종종 즉흥적으로 발견되고 만들어집니다. 성적 자율성은 두 사람이 서로의 의도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아니라 두 사람(혹은 다수)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관계는 사회적 교감의 궁극적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성의 성적 즐거움은 종종 남자의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가정은 여성의 성적 능력과 번식 능력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성적 욕망과 그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가진 모호함은 특별한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이 가진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여성 해방 프로젝트는 이 사실을 회피하기보다 이를 인정하고 이용하는 방향을 택해야 합니다.
서로를 성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에는 흥분과 호기심 외에도 공포와 두려움, 불확실성이 두 사람 모두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이 순간이 바로 최소한의 신뢰가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이 신뢰는 동의가 아니라, 종종 혼재하는 성적 쾌락과 위험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서로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초기의 불확실성은 그 행동이 어떤 선을 넘어 나쁜 성관계로 끝날 위험을 만들지만, 또한 성관계가 두 사람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재창조할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수술 전 동의서와 마찬가지로 성관계에 대한 동의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적인 의미가 바뀌어 왔습니다. 오늘날 합법적인 성관계와 불법적인 성관계의 기준은 바로 동의입니다. 그러나 그 동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동의를 그 추행이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시점의 원고의 주관적 기분으로 정의하는, 오늘날 가장 진보적인 재판에서도 법적으로 동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따지게 됩니다. 분명한 언어적 거부가 없었던 상황이라면, 원고의 증언은 성적 만남의 순간에 일어나는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포함한 다양한 증거로 구성됩니다. 판사는 이를 바탕으로 원고의 거부 의사 주장이 믿을만한지, 그리고 원고가 당시 동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중간 과정에서 동의를 철회했다는 사실을 피고가 그 시점에서 알았거나 알았어야 했는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재판에서 판사는 동의를 구성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증거와 신호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는 동의라는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대방이나 판사, 배심원이 찾으려 할 때 늘 찾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동의는 그저 특정 사회가 특정한 성적 행동을 받아들이는 정도를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입니다. 우리는 각 문화에 따라, 그 문화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의 강압이나 절충, 위험 수준을 넘어서는 어떤 성적 행동에 대해, 그 시점에서 동의가 없었다고 선언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여러 페미니스트들은 동의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이 아직 충분히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서 문제라고 말할 겁니다. 물론 법은 오늘날 미투 운동이 보여주는 문화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합니다. 적극적 동의의 지지자들은 성적 파트너가 성관계 내내 상대의 명확한 동의 신호를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동의는 섹시하다’고 말합니다. 여성이 성추행을 주장했을 때 우리는 그녀의 주장을 믿어야 합니다. 이 경우 자신이 그 상황에서 그녀의 동의를 확인하는 합리적인 과정을 밟았음을 보여야 하는 입증의 책임은 피고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성적 습관이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기대되는 바가 바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될 때 세상이 더 안전해지고 더 섹시해질 것이라 말합니다. 어떤 페미니스트가 이런 주장에 반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논리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보수주의자들과 ‘친 섹스’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처럼, 성행위에 대한 동의 여부가 이분법적으로 분명하다는 가정이 실제 현실에서는 문화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의’는 성적인 상황에서 매우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똑같은 상황도 때로 자극적이기보다는 부끄러울 수 있고, 흥미롭기보다는 혐오스러울 수 있으며, 끌리기보다는 두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해서 두 사람이 바람직한 성경험이 되는 것도 아니며, 역으로 합의가 없던 성관계라고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성경험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동의를 명백한 욕망과 동일하게 취급할 경우 사회가 허용하는 종류의 성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로빈 웨스트를 포함한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열광적’ 동의라는 개념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결혼을 포함한, ‘일반적인’ 이성 관계에서 여성이 받는 억압을 강조하며,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강제력이 존재했던 모든 성관계는 불법이라 주장합니다. 곧 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진정으로 바람직한 성관계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진정 두 사람이 원하던 성관계라고 해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혹은 확신을 하지 못했던 성관계도 여전히 성적이고 전향적일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공포를 동반한 시도는 자신을 완전히 연약한 상태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거 자신이 그어 놓았던 성적 한계를 확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목조르기에 끌리는 이유 중 일부는 이 목조르기가 가진 공포의 진정성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성에는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가 우리의 성적 조우가 가진 에로틱한 잠재력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적 조우에서 나타나는 초기의 신뢰는 두 사람이 그들의 성 체험이 가질 가치를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며 이는 두 사람이 바로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극적, 열광적 동의의 개념은 이런 종류의 성적 행동을 도착증 혹은 범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미투 운동은 문화적 맥락과 그 대상에서 모두 가부장제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남성 주도의 사회에서 성적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이때 남성은 여성에 대한 여성 혐오적인 사회적 통제를 확장하거나 적어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해지며, 또한 여성이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전까지는 끝없이 진도를 나가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잘 봐줘도 인간의 성적 특성을 특이하거나 퇴행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나쁘게 보자면 우리에게 가장 보수적인 성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자기 자신을 단속하게 만드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성에 대한 논쟁이 해야 할 일은 진정한 모험적이고 충만한 성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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