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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유

“요정들의 보석.”

친구들과 저는 어린이집 놀이터 모래밭에서 찾을 수 있는 형형색색의 작은 돌멩이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수족관에 관상용으로 넣어둘 법한 돌멩이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특별할 것 없는 돌멩이일지 몰라도 어린 저와 친구들은 마법이라도 깃든 것처럼 돌멩이에 대단한 의미를 두었습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돌멩이를 찾아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를 모으듯 색깔과 모양에 따라 분류해두곤 했죠. 모래를 체로 걸러 신비로운 “요정들의 보석”을 솎아내던 신성한 의식은 제 기억 속에 가장 어릴적 기억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분명 아직 세 살이 되기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이어 유치원에 다닐 때 기억도 파편적으로 어떤 사건의 일부분만 띄엄띄엄 남아있을 뿐입니다. 누런 종이 위에 분홍색 점선으로 쓰여 있는 글씨를 따라 그림 그리듯 써보며 글씨 공부를 하던 기억, 해양 생물에 관한 어떤 영화를 보던 기억, 선생님이 둘둘 말려있던 큰 도화지를 잘라 우리가 손으로 자화상을 그릴 수 있도록 알맞은 크기로 종이를 잘라주셨던 기억.

다섯 번째 생일 이전에 제게 있던 일은 아무리 기억해내려 애를 써봐도 이렇게 파편적으로 떠오를 뿐입니다. 어둠 속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면 잠깐 환하게 타오르다 이내 꺼지는 것처럼 기억도 흐릿합니다. 어렸을 때 생각도 많고 매일같이 세상을 느끼고 열심히 무언가를 배웠던 건 분명합니다. 저도 여느 어린이처럼 무럭무럭 자라 지금의 어른이 됐으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그 시절의 기억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어릴적 기억이 까마득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어릴적 기억상실”이라는 이름까지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평균 세 살 반 이전의 일들은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 기억은 대개 깜깜한 어둠이죠.

“오랫동안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아주 어렸을 때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곧잘 기억하곤 하는데, 성인이 되면 그때 기억들을 좀처럼 기억해내지 못하거든요. 그렇게 되는 것이 몇 년 동안 무언가에 집중해 우리의 기억력을 발달시킨 결과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역설이라고 할 수 있죠.”

기억의 발달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인 에모리대학교의 파트리시아 바우어의 말입니다.

지난 몇 년간 과학자들은 마침내 우리가 어릴적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정확히 우리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해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토론토 어린이병원의 신경과학자 폴 프랭크랜드는 “생물학적 지식의 기초 위에 새로운 결과가 쌓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뇌는 어릴적 기억들을 고의로 망각하거나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야 한다.

1900년대 초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어릴적 기억상실에 이미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아의 형성을 성적 자각과 연결해 생각했던 프로이트답게 그는 성장 과정에서 떠올리기 불편한 기억을 억누르는 기제가 작동해 어릴적 기억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따르는 심리학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 심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7살이 되기 전까지는 어린이가 기억 자체를 안정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다만 이 설명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도 아직 거의 없습니다. 지난 100년간 심리학자들은 어릴적 기억은 원래 생겨날 때부터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잊힐 수밖에 없다고 가정해 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아동심리학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우어와 다른 심리학자들은 몇 가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어릴적 기억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죠. 실험이란 예를 들어 어린이에게 간단한 장난감 징을 만들어 치는 법을 가르쳐주고, 몇 분 내지 몇 달이 지난 뒤 그 장난감을 쳐보게 해 그사이 기억이 얼마나 잊혔는지를 살펴보는 식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한 끝에 과학자들은 3세 이하 어린이도 한계가 있을지언정 기억을 만들어 남긴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들의 기억은 적어도 하루는 갑니다. 생후 9개월이 되면 그 기간이 최소 한 달로 늘어나고, 두 돌이 지난 아기는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되어버린 1991년 연구에서 4살 반 된 어린이가 18개월 전, 그러니까 자신의 세 번째 생일 즈음에 디즈니월드에 갔던 기억을 상당히 자세히 기억해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런데 여섯 살 무렵에 아이들은 어릴적 기억을 까먹기 시작합니다. 2005년 바우어와 동료 연구진이 한 실험 결과를 보면, 다섯 살 반 어린이는 세 살 때 일을 80% 정도 기억했지만, 일곱 살 반 어린이는 세 살 때 일을 40%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실험에서 어릴적 기억상실에 관한 핵심적인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어린이도 더 어렸을 때 경험을 기억으로 만들어 저장하고 시간이 지난 뒤 꺼내어볼 수 있지만, 이때 기억들은 언젠가 대부분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어릴적 기억상실에 버금가는 수준은 절대 아닙니다.

기억이 온전히 남으려면 언어 능력과 자아에 대한 감각 혹은 자의식이 필요한데, 어린이에게는 두 가지가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기억을 잘 못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일에 관해 나눈 대화나 그 상황에 내가 어떻게 관련돼 있었는지는 사람의 기억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어릴적 기억상실을 이 두 가지의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쥐처럼 몸집에 비해 뇌가 충분히 크고 복잡한 동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즉, 쥐가 구사하는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일 것이고, 자의식도 인간보다 훨씬 단순할 텐데, 그런 쥐도 자라면서 어렸을 적 기억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연구진은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인간이나 뇌가 상대적으로 큰 포유류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어떤 근본적인 신체적 조건 탓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추론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그 조건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뇌는 태어난 뒤에도 계속 성장합니다. 대개 12~13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지방조직으로 된 회로를 계속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늘려나가죠. 컴퓨터 메모리가 늘어나는 것처럼 뇌도 계속 성장하는 겁니다. 시쳇말로 ‘폭풍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뉴런과 뉴런 사이에는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다리와 길이 새로 놓입니다. 실제로 어렸을 때는 뇌세포와 뇌세포가 훨씬 더 많이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자라면서 가지치기를 하듯 뇌세포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어지죠.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사라진 뇌는 신호를 주고받는 무수한 뉴런으로 채워지고, 전체 뇌는 말랑말랑한 찰흙과 비슷해집니다.  우리 뇌는 어떠한 환경에 부닥치더라도 유전자와 앞선 경험을 활용해 거기에 재빨리 적응해 나가죠. 인간의 뇌가 유연하지 않다면 어린이가 그 많은 것들을 그토록 빠르고 정확하게 배우고 익혀 적응할 수 없을 겁니다.

이렇게 높은 적응력을 갖춘 대신 인간은 한 가지를 희생해야 했습니다. 바우어와 동료 연구진은 세상에 태어난 뒤 뇌가 기본적인 조직을 갖추고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기억을 만들어 저장하는 역할을 맡은 뇌의 거대하고 복잡한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로 그제야 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된 뒤와 비교해보면 겪었던 일을 기억으로 남겨두는 기능 자체가 불완전한 셈입니다. 그 결과 세 살이 되기 전 남은 장기 기억은 우리 뇌가 간직한 기억 가운데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먼저, 가장 잘 잊히는 기억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올해 초 프랭크랜드와 동료 연구진은 우리가 어렸을 때 기억을 잘 잊게 되는 또 다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연구 내용의 골자를 정리하면 기억 자체가 흐려지고 분해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억이 통째로 우리 뇌가 꺼내어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몇 년 전 프랭크랜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토론토 어린이병원의 신경과학자인 아내 시나 조셀린과 함께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실험실에서 기르는 쥐 가운데 쳇바퀴를 돌게 한 쥐들이 특정 기억력 테스트에서 더 나쁜 성적을 기록한 겁니다.

쳇바퀴를 도는 운동을 하면 새로운 신경 조직이 만들어집니다.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데 핵심적인 기관인 해마에 완전히 새로운 뉴런이 추가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성인의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 조직이 생성되면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억하는 데 필요한 용량이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에 뇌의 능력이 좋아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스탠포드대학교의 칼 데이저로스와 동료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망각이 수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숲에 비유하자면, 아무리 숲이 넓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넓이의 숲에 있을 수 있는 나무의 그루 수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해마가 수용할 수 있는 뉴런의 수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신경 조직이 생겨나고 뇌세포가 들어오면 기존의 뉴런 사이의 연결이 복잡해지거나 아예 원래 있던 뉴런을 대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럴 경우 특정 기억을 담고 있던 기존의 작은 회로가 끊어졌다가 새로 연결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뇌가 한창 자라는 어린 시절에 신경 조직 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 결과 어릴적 기억상실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프랭크랜드와 조셀린은 쥐를 대상으로 이 가설을 시험했습니다. 먼저 평생 신발 상자 크기의 플라스틱 우리에서만 살던 어린 쥐와 성인 쥐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훨씬 더 넓은 금속 우리로 옮겼습니다. 프랭크랜드와 조셀린은 이 금속 우리의 밑바닥에 가끔씩 미세한 전기를 흘려보냈습니다. 쥐들은 이내 금속 우리는 전기 충격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학습했고, 다른 곳에 있다가 금속 우리로 들어가게 되면 늘 충격의 공포 때문에 몸이 경직됐습니다.

그런데 어린 쥐는 금속 우리에 가면 전기 충격이 있다는 사실을 하루 정도 지나자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충격이 올지도 모르는 금속 우리에 들어가서도 경직되지 않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죠. 반면 성인 쥐들은 한 번 각인한 위험을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성인 쥐들도 충격을 받은 뒤에 햄스터들이 운동 삼아 도는 쳇바퀴를 돌고 나면, 즉 새로운 신경 조직을 만들어내고 나면 마친 어린 쥐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속 우리에 전기 충격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신경 조직의 성장에 관여하는 약물인 프로잭을 투여했을 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약물이나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신경 조직 생성을 억제했더니 쥐들은 훨씬 더 안정적으로 기억을 해냈습니다.

이번에는 신경 조직 생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억과 망각에 관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랭크랜드와 조셀린은 쥐들의 뇌에 새로 생긴 뇌세포의 DNA에 초록색 형광 물질 단백질을 바이러스 형태로 주입했습니다. 뇌를 관찰했을 때 녹색 빛이 나면 새로운 세포가 기존 세포를 완전히 대체하는 대신 기존의 회로에 합류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경 조직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도 기존의 기억을 간직한 뇌세포와 그 기억들이 아예 사라지거나 쓸려내려 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신 기억이 완전히 다시 배열되고 회로 자체가 새로 짜이면서 끊임없이 뒤죽박죽되기 때문에 원래 기억을 온전히 불러내기가 그렇게 어려워지는 겁니다. 프랭크랜드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기억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표현을 쓰곤 하죠.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어요. 기억이라는 것이 접근해 꺼내보기 어려워진다면 사실상 지워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기억의 회로를 새로 짜는 과정에서 어릴적 기억 가운데 일부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남아있는 기억도 왜곡되고 뒤틀려 엉뚱하게 남기도 합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특정 자극이나 맥락에서 어릴적 기억의 일부를 기억해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에 관한 어릴적 어떤 기억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겁니다. “우유”라는 단어 대신 집이나 학교, 몇 살 때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특정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극이 오면 그에 관한 기억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펼쳐지는 기억들이 전부 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뇌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사라지고 뒤죽박죽된 기억을 뚫고 남아있는 기억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그 오래전에 일어난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어쩌면 완전히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UC 어바인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주 어릴적에 관해 떠올리는 기억은 실제 있었던 일, 다른 사건과 어딘가 뒤죽박죽 섞여버린 일, 그리고 무의식중에 상상한 일이 한데 뒤섞여 있는 것임을 보였습니다.

1995년 로프터스와 동료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은 이 분야에서 신기원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에게 각각 친척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참가자들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 가운데 다섯 살 때 쇼핑몰에서 미아가 돼 다시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가짜로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점을 일러주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실험 참가자의 약 25%는 자신이 실제로 쇼핑몰에서 미아가 됐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방금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사실 없던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고 일러준 뒤에도 쇼핑몰에서 미아가 된 이야기가 그 가짜 이야기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디즈니랜드에 갔다가 미아가 됐던 이야기인데, 제가 기억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때는 분명히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마을을 지나는 장난감 기차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뒤돌아봤는데 부모님이 안 계셨으니까요. 순간 두려움에 온몸이 얼어붙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엉엉 울며 엄마아빠를 찾아 디즈니랜드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저를 TV가 가득한 엄청 큰 건물로 데려갔습니다. 수많은 TV는 디즈니랜드를 구석구석 비추는 폐쇄회로 카메라였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그 많은 화면 속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제가 부모님을 잃어버렸던 기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저는 부모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안도와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들어 저는 아주 오랜만에 그때 디즈니랜드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어머니와 기억을 맞춰봤습니다. 무척 당혹스러울 만큼 다른 점투성이었습니다. 먼저 계절부터 봄이나 여름 즈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저를 잃어버리기 직전에 저는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정글 크루즈 보트를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디즈니랜드 입구 쪽에 있는 장난감 기찻길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죠. 제가 없어진 걸 깨닫자마자 가족들은 즉각 미아보호소로 달려갔고, 다행히 디즈니랜드 직원 한 명이 저를 발견해 안전히 저를 데리고 와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저를 봤을 때 저는 이미 직원이 건네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며 울음을 뚝 그친 뒤였다고 합니다.

제가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줄 알던 것이 사실상 통째로 부정당한 느낌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 믿을 수 없으니 가족사진을 담은 사진첩에서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자고 했죠. 아쉽게도 더 일찍 갔던 다른 여행 관련 사진만 있었을 뿐 디즈니랜드에 갔던 사진들은 남은 게 없었습니다. 결국,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줄 증거 자료가 될 만한 것은 영영 찾지 못하게 됐습니다. 오래전 추억의 파편만이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서 반딧불처럼 잠깐 빛을 내고는 사라질 테고, 그 빛만으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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