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인류학이 과거만을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이 학문에 대한 호기심뿐 아니라 인류의 조상에 대한 어떤 낭만적 관심으로 이어지지만, 한편으로 이 학문이 오늘날 우리를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한국 출신의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기원(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을 통해 이런 관점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오늘날의 인류가 약 6백만 년 전 침팬지에서 분화된 호미닌(초기 인류) 이후 생물학과 자연선택의 환상적인 상호작용을 겪어왔으며, 특히 오늘날에도 여전히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족보행을 하던 영장류가 더욱 복합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이야기 대신, 저자는 인류의 진화 경로를 따라 독창적인 이야기를 펼칩니다. 우리 조상은 언제 털을 잃게 되었을까요? 고기에 대한 선호가 우리 운명을 바꾸었을까요? 농경은 인류에게 축복이었을까요, 아니면 저주였을까요? 인간은 이타성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일까요? 저자는 인류의 진화에 관한 이런 질문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흥미로운 동시에 참신한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녀가 다지역 연계설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탄생해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이론입니다. 곧 그녀는 서구 과학계에서 상대적으로 확고하게 확립된 화석 증거를 해석하는 방식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그녀는 아시아를 현생 인류와 조상이 탄생한 곳으로 다시 승격시킵니다. 그녀는 조지아(Georgia) 공화국에서 발견된 드마니시 호미닌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초기의 호모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호모 에렉투스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발생했고 “아프리카로 돌아가” 후기 호모 종의 등장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또한 현생 인류와 공존했고 많은 DNA를 남겼지만 화석 증거는 거의 없는 미지의 호미닌인 데니소바인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그녀는 이들을 “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이라 부르며 유럽의 호미닌 진화에 아시아의 사촌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인류의 기원”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과거의 인류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오늘날에도 진화 중일까요? 사람들은 의복, 도구, 의약품 등의 문명과 기술에 의해 우리 신체를 생물학적으로 환경에 적응시키는 압력이 약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오늘날에도 진행되고 있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다양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녀는 피부색의 진화를 하나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한때 짙은 피부색은 처음으로 털을 잃은 아프리카 호미닌이 직사광선에 포함된 자외선을 방어하기 위해 진화시킨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외선에 덜 노출되는 고위도 지역의 호미닌들에게서는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세포인 멜라노사이트가 덜 활성화되었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피부색이 더 밝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학자 이언 매디슨과 그의 동료들은 서구와 유라시아인들에게서 구한 대규모 고대 유전자 샘플을 통해 유럽인들의 피부색이 밝아진 것은 4,000년 전보다 가까운 시기에 발생한 새로운 유전자 변이에 의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들의 피부색이 밝아진 이유를 농경 생활과 좌식 습관에 연결했으며, 이상희 교수도 이 관점을 선호합니다.
이상희 교수는 농경으로의 전환이 가공된 곡류와 전분 중심의 식생활을 불러왔고, 이 때문에 비타민 D를 포함한 여러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신체가 피부에서 자외선을 흡수해 비타민을 생성하게 했습니다. 매디슨이 이야기한 유럽인의 밝은 피부색은 비타민 D 섭취가 부족한 이들이 자외선 흡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문화, 곧 이 경우 농경과 식생활 변화가 어떻게 진화를 더 가속시켰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농경은 정주 생활 때문에 전염병에 약해지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구를 급격하게 증가시켰습니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젖을 떼고 곡류를 섭취하게 되었고 여성의 출산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인구의 증가는 “진화의 원료”인 유전적 다양성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성인이 우유를 섭취할 수 있게 해주는 젖당 분해효소도 인류가 변화 중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젖당 분해효소의 변화는 지난 5천 년 사이에 일어났는데, 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드문 이 유전자 변이는 낙농 생활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유의 풍부한 영양소는 비타민 D 부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집단생활은 인간이라는 종이 거둔 성공의 핵심 원인입니다. 저자는 큰 뇌로 인해 겪는 출산의 어려움과 오랜 유아기가 만드는 단점을 인류가 집단생활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현생 인류는 영장류 중 가장 긴 수명을 누리며 조부모와 부모, 손자의 3대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번식이 불가능한 노인들은 자신의 손자 손녀, 그리고 핏줄이 섞이지 않은 다른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집단에 유익을 줍니다. 저자는 가족이나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은 “의사 친족”이 인류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징이라 말합니다. 그녀는 1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드마니시 호미닌들의 유해를 통해 이들이 정교한 도구나 불의 사용 없이도 치아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생존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집단이 나이든 호미닌들을 돌보았음을 말해줍니다. 이 화석 증거는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이상희 교수는 글을 재미있게 쓰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킹콩이 살아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장은 중국에서 120만~30만 년 전, 어쩌면 호모 에렉투스와 공존했던 의문의 거대 유인원인 기간토피테쿠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명 업은 인류, 등골이 휘었다’에서는 이족보행을 위해 인류가 허리통증을 가지게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에는 때로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이 있으며, 때로 모든 특질이 어떤 기능을 가지거나 혹은 필요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식으로 오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종종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 학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시도한 이상희 교수의 노력은 전문가들에게도 영감을 줄 것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인류는 6백만 년 동안 환경의 변화와 우연에 의해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이상희 교수는 오늘날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지구와 지구 위 모든 생명체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책임을 지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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