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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저는 잘못된 전쟁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콜린 파월 당시 국무부 장관은 UN 연설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이른바 선제타격이 필요하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파월 장관의 수석 보좌관이던 저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선제공격, 전쟁뿐”이라는 메시지를 다듬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당시 파월 장관의 연설 내용 일부를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지역 내 패권을 추구하며 대량살상무기를 몰래 보유하고 있고,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직접 지원하기도 하는 정권이 지금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예전에 있다 사라진 나쁜 세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버젓이 이 땅에 있는 이 정권을 뿌리 뽑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파월 장관의 연설이 끝난 뒤, 저는 저와 국무부, 미국 정부가 한 일을 곱씹어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분명 제가 기울인 노력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파월 장관도 온 힘을 다해 연설했지만, 국제 사회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죠. 하지만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분명 파월 장관의 메시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내 여론이 연설을 기점으로 움직였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파월 장관을 연사로 내세운 것도 바로 이 점을 노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주요 인사 가운데 미국인들의 공감을 사는 데 파월 장관 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UN에서 굳이 연설을 하지 않고도 공격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파월 장관이 연설을 망쳤더라도 아마 개의치 않고 이라크를 침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파월 장관의 진지한 연설은 결과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2년 동안 준비한 전쟁을 마침내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선택해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주변 지역은 그야말로 초토화됐으며, 미국과 동맹국의 위상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 지역 정세는 대단히 불안해졌습니다.

지금 새삼 15년 전의 교훈을 되새기자고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현재 이란이 가하는 위협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전쟁밖에 없다고 믿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약 한 달 전에 니키 해일리 주UN 미국 대사는 미국 정부가 “이란이 탄도미사일과 예멘에 관한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일리 대사는 파월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위성사진을 비롯해 몇 가지 증거를 내밀었는데, 이런 증거를 모을 수 있는 건 미국 정보당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놓은 증거조차 이란이 안보리 결의안을 거스르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해일리 대사의 주장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 2003년 파월 장관의 연설과 소름 돋을 만큼 비슷합니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가 상황을 인식하고 전반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했던 것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미국 국방정보국에서 해일리 대사의 연설을 들으며 저는 그녀의 뒤편에 파월 장관의 15년 전 연설을 틀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지금 이 상황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똑똑히 알릴 수 있도록 말이죠. 결국, 전쟁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란은 인구 8천만 명으로 전략적으로도 뛰어난 군사 강국이며 국토 곳곳의 지형이 험난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요인만 놓고 비교해봐도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 뻔합니다. 사상자와 전쟁에 드는 비용은 이라크전의 10~15배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정부 고위급 인사가 UN에서 한 연설을 통해 상황을 유추하는 것보다 좀 더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미국 정부의 계획을 살펴보고 싶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펴낸 국가 안보전략 보고서를 보면 됩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확산하려는 나라나 세력이 가해오는 위협에 맞서지 않으면 그 위협은 갈수록 거세져 끝내 우리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라크를 침공할 생각을 하고 있던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란을 미국에 주어진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전략은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에 가하는 위협이 분명 이란보다 더 커 보이는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유독 이란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해일리 대사의 연설은 거의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국가안보 전문가가 아니면 안보전략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볼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정보 당국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을 거듭해 모두에게 재앙이 된 전쟁을 일으킨 것이 불과 15년 전의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도 전쟁에 점점 둔감해졌습니다. 이라크 침공도 사실상 의회의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필요하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습니다.

지금껏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관해 유포한 사실상의 가짜뉴스를 미국 언론은 거의 하나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초, 미국 언론은 신원을 밝히지 않은 미국 정부 관계자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했는데, 익명의 관계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추종세력이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이란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려는 알카에다를 후원하는 증거가 있다고 했습니다.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딕 체니 부통령이 어떻게든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를 엮어보려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가둬놓은 포로들을 이 잡듯이 뒤져서 진술을 쥐어짜 내던 것이 떠오릅니다. 또 UN에서의 연설을 앞둔 파월 장관에게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이 공모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준비한 대로 연설하면 된다고 확신에 차 말하던 당시 CIA의 조지 테닛 국장도 생각납니다. 이제는 테닛 국장이 완전히 틀렸었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현재 알카에다와 이란의 연계설을 주장하는 전문가란 사람들은 대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재단이라는 곳에 소속된 이들입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을 처음부터 거품 물고 반대했던 이 사람들은 이제는 대책 없이 이란의 정권 교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를 일으킨 납치범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이었고, 이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면 미국 정보 당국이 미국에 적대적인 단체로 지목한 여러 단체 가운데 이란과 아주 느슨하게나마 연결됐다고 볼 수 있는 단체가 딱 한 군데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헤즈볼라는 여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재단은 2003년 국방부 내에서 이라크 침공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온갖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던 특수작전단이 부활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차하면 구실을 만들어 이란과의 전쟁에 다가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해일리 대사의 연설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이란과 핵 협상을 일방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해버렸습니다. 이란은 미국 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백악관은 동시에 이란이 협상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라도 오라며 정보 부처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이란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정권 교체를 정당화하는 좋은 구실로 삼으려 합니다. 부시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억지로 엮어 난국을 타개하려면 전쟁 말고는 해법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끌어다 쓸 심산인 겁니다.

인제 와서 마치 모두가 이라크 침공이라는 주장에 매몰돼 있던 것 같은 15년 전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보 당국이 내세운 증거라는 것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으며 정해진 결론을 위해 취사선택된 것이었지만, 우리는 모두가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개의치 않았습니다. 밑 빠진 독, 아니 아예 밑이 없는 독에 대책 없이 물을 붓게 될 것이 뻔한 데도 전쟁을 통해 얻게 될 이득이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심지어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커녕 끝없는 내전과 혼돈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의 목적은 어떻게든 이라크 전쟁이 필요하다고 미국인을 설득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우리는 그 목적을 달성했죠. 15년이 흐른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15년 전의 끔찍했던 우를 다시 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이번에도 또다시 미국이 무책임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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