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간대학교의 스콧 페이지 교수가 <이온(Aeon)>에 기고한 글입니다. 페이지 교수는 지난해 저서 <다양성의 혜택: 훌륭한 팀이 지식경제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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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저는 데이비드 그리피스 교수님이 가르치는 논리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은 재미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열린 자세로 문제에 접근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무엇보다 문제를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점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저는 교통 관리와 모델에 관한 콘퍼런스에서 우연히 그리피스 교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교통 체증을 분석한 컴퓨터 모델에 관한 발표 도중 드디어 교수님이 손을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뵌 교수님이 반갑기도 했고, 수리논리학자인 그가 과연 교통 체증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역시나 교수님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통 체증을 모델로 만들어 분석하려면, 당연히 차가 없는 공간을 추적해 분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콘퍼런스나 세미나에서 누군가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지극히 합리적이고 명료한 생각을 제시했을 때 나타나곤 하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좌중은 의아한 듯 잠시 침묵했고, 이내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더 부연할 필요도 없는 통찰이었죠.
그리피스 교수님은 대단히 중요한 점을 짚었습니다.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는 건 도로의 대부분을 차량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모델로 만들 때 그 많은 차량을 하나하나 변수로 넣는다면 엄청난 품이 드는 일이 되죠. 반대로 차가 없는 공간을 추적해 모델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도로에 빈 곳이 거의 없는 만큼 훨씬 쉽습니다. 게다가 도로를 가득 메운 차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보다 도로에서 빈 곳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분석 자체도 더 쉬울 겁니다.
학술 콘퍼런스나 연구소 세미나, 여러 분야의 연구진이 모여 어떤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통찰 가득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상황에는 대개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문제가 꽤 복잡합니다. 복잡한 상황에서 전개된 문제 앞에서 이를 설명하고 분석해 예측하는 데 필요한 고차방정식을 세워놓고 사람들은 고심을 거듭합니다.
두 번째는 아무리 문제가 복잡하더라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마술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란 기존의 해결책, 접근법을 비틀어보고 다시 검토해보면서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거나 여러 대안을 한꺼번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애플이 기존에 있던 터치스크린 기술을 혁신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그리피스 교수님은 정보 이론의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인 최소 설명 길이(minimum description length)를 적용했습니다. ‘ABCDEFGHIJKMNOPQRSTUVWXYZ’란 글자의 조합은 ‘No-L(알파벳 중 L만 뺀 목록)’이라고 짧게 설명하면 충분하죠. 발상의 전환으로 생각해낸 새로운 아이디어지만 그 자체로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밝혀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그렇게 크지 않죠. 다만 이런 아이디어가 모이고 모이면 그 효과는 무척 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도약으로 보이는 진보란 대개 여러 사람의 작은 걸음들이 모이고 쌓여 일어나는 법입니다.
세 번째, 이런 아이디어는 대개 한 사람의 머릿속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태어납니다. 즉, 한 사람이 먼저 문제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생각을 던지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을 제안하면, 다음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의견을 내거나 무엇을 덧붙이고 무엇은 빼자고 하면서 논의가 발전하고 결국 답이 나오는 겁니다. 컴퓨터과학자였던 고(故) 존 홀란드 교수님은 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생각이 마르코프 과정을 거친 건가요? 어떤 명제와 주장을 이렇게 바꿔보고 저렇게 변조한 뒤 비교해보는 마르코프 과정 말입니다.”
마르코프 과정을 거치면 어떤 생각과 주장이든 다듬고 정제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이 간단한 과정 하나가 통찰을 이끌어내는 셈입니다.
요즘 대부분 학계 연구는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이뤄집니다. 투자도 그렇고 (좋은 곡에 한해) 작곡도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하는 경우가 많죠. 수많은 연구팀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A에서 B까지 가는 도로를 지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통 인프라, 물류 인프라를 구축할 때 환경 요인, 사회적 요인, 경제 효과, 정치적 변화 등 수많은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개인이 이 문제를 온전히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회의 비만 인구가 늘어나고 비만율이 높아지는 데 이바지하는 요인은 한둘이 아닙니다. 교통 체계와 인프라, 언론, 즉석식품, 사회적 규범의 변화, 사람의 생리적 변화나 심리의 변화가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도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 관여하는 학문 분야만 나열해도 원자핵 공학, 조선 공학, 금속 공학, 유체 역학, 정보 과학 등 대단히 많습니다. 여기에 군의 규정, 현대전의 특징과 양상도 알아야 하고, 항공모함을 짓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몇 년 뒤 무기 체계가 어떻게 바뀔지도 예측을 잘 해야만 합니다.
복잡한 문제는 자연히 여러 층위에서 다차원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구조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선택되는 실력주의 원칙과 배치되기도 합니다. 여러 차원에서 살펴보면 한 명이 종합적으로 모두 뛰어난 예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회사에서 종양학 연구팀을 꾸릴 때 회사는 객관식 시험을 치러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세워 성적이 높은 사람만 뽑지 않습니다. 이력서를 확인해 학벌이 좋거나 경력이 화려한 사람만 골라서 뽑지도 않죠. 대신 회사들은 반드시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팀을 꾸립니다. 즉, 팀이 공유하는 지식과 도구, 분석 능력에 다양성을 더해줄 수 있는 사람을 팀원으로 적합하다고 보고 뽑는 거죠. 그리피스 교수님 같은 논리학자는 아니더라도 종양학 연구팀에 수학자가 포함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습니다. 그 수학자는 종양에 관한 역학 체계를 연구하거나 필요한 미분 방정식을 풀 겁니다.
실력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팀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각 분야에서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팀에 포함돼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실력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즉,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이들로 팀을 꾸리더라도 최고의 수학자, 최고의 암 연구자, 최고의 생물통계학자가 모여야 그 팀이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주장도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식에 관해서도 시험 성적이 특출나게 좋거나 어떤 능력이 뛰어난 개인들을 모아놓는다고 알아서 최고의 팀이 꾸려지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영역마다 깊이와 범위가 다 다르므로 일률적인 시험을 통해 어떤 팀에 가장 잘 맞는 인재를 가려내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경과학 분야를 예로 들어보죠. 분자와 시냅스부터 뉴론의 신경망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수많은 기술과 연구 방법, 분석 과정을 다룬 논문이 매년 5만여 편씩 발표됩니다. 신경과학이라는 분야로 묶일 수 있는 주제조차 이렇게 복잡하게 세분되는 마당에 5만여 편의 논문을 마치 접영 50m 기록을 재서 순위를 매기듯 어떤 것이 더 낫고 어떤 것은 기준에 못 미친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죠. 대신 특정한 과제나 어떤 목표를 위해 꾸린 팀이냐에 따라 그 팀에 속한 여러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끌 가능성이 큽니다. 최고를 뽑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맥락과 상황에 따라 최적의 인물을 선발해 최적의 팀을 꾸리는 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최적의 팀에는 예외 없이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토론한 끝에 잘 버무리고 종합한 연구와 특허들이 해당 연구 분야는 물론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를 통해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머신러닝 알고리듬에 쓰이는 이른바 무작위 의사결정 숲(random decision forest)의 구조에도 다양성이 반영돼 있습니다. 각 가지를 따라 여러 갈래로 수없이 갈리는 의사결정 나무들이 모이면 랜덤 포레스트, 즉 의사결정 숲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분류할 때 각 의사결정 나뭇가지마다 사진 속 대상이 여우인지 개인지 투표를 하고 더 많은 표를 얻은 쪽이 선택됩니다. 이를 가중 다수결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의사결정 숲은 다양하게 쓰이는데, 금융 사기를 적발하거나 질병을 찾아내는 데도 쓰이고, 집안 인테리어와 실내 공기 질을 분석해 천장에 팬을 달라고 추천하거나 온라인 데이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주기도 합니다.
의사결정 숲을 만들 때 정답을 곧잘 가려내는 최고의 나무들만 뽑아서 숲을 만들지 않습니다. 최고의 나무만 모아두면 다 같이 똑같은 분류를 더 잘하는 데 그칠 겁니다. 대신 여기서도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프로그래머들은 각 의사결정 나무를 각기 다른 데이터로 훈련해 다양성을 높입니다. 이 기술을 배깅(bagging)이라 부릅니다. 또 의사결정 나무를 훈련할 때 현재 의사결정 숲이 제대로 맞추지 못한 어려운 사례를 모아 훈련을 거듭함으로써 새로운 숲의 의사결정 능력을 높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의사결정 숲은 더 다양하면서 더 정확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력주의의 오류나 남습니다. 기업이나 비영리단체, 정부, 대학교, 심지어 유치원 원생을 뽑을 때도 어떤 식으로든 시험을 보거나 성적을 매겨 성적순으로 뽑는 관행은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절대로 가장 적합한 팀을 꾸릴 수 없는데도 마리죠. 공통의 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해 순위를 매겨 사람을 뽑으면 동질감은 높아지지만, 그만큼 특색 없이 천편일률적인 사람만 모아놓는 꼴이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집단적인 편견이 생기게 되고, 결국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뽑아 그들이 폐쇄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고착화됩니다. 그런 조직은 혁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에서 달 탐사 프로젝트를 고안하는 회사 X의 CEO를 맡은 아스트로 텔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각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을 모아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진정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면, 나처럼 생기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그에게 길을 물어서는 안 되겠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컨버세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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