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W: 음, 하이에크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쓴 수많은 문헌이 있지만, 이 주장은 또 새로워 보이네요. 어떤 내용인가요?
SB: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가격은 실제로 메시지가 되는데, 예를 들어 주택 가격에 거품이 꼈을 때 사람들은 주택 가격이 계속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해서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밀값이 올랐을 때 “빵이 아니라 감자를 먹자”와 정확히 반대되는 현상으로 규제 없는 시장의 위험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이에크는 시장이 정보를 처리하며 이를 바탕으로 생산량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계획경제가 시장과 결합할 경우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기업의 경계는 다음과 같은 질문, 곧 특정 요소를 내부에서 생산할지 외부에서 구매할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또한 계획경제 방식을 택할지, 시장을 택할지의 질문이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작은 계획경제 주체’가 됩니다. 즉 ‘시장의 결정’이란 다름 아닌 시장과 계획경제의 콤비네이션인 것입니다!
DSW: 중요한 지적이네요. 하지만 더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최근 경영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지시와 조절(command and control)”방식은 때로 기업 수준에서도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에 대한 그녀의 핵심 디자인 원리를 통해 기업의 내부거래(self-serving)가 해당 기업의 약점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 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또한, 기업이 변화를 추구할 때 중앙에서 이를 지시하는 방법보다는 조심스럽게 통제되는 변종-선택에 기반을 둔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어쨌든 당신의 핵심 주장, 곧 설사 지시와 조절에 의해 운영되지 않더라도 기업이 “작은 계획경제 주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예들은 하이에크의 주장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하이에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SB: 아마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에게 하이에크가 경제학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고 물으면 잘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용 및 신용 시장, 그리고 중요한 정보가 양측에 모두 공개되지 않는 여러 시장에서 정보의 문제로 고민하는 경제학자들은 하이에크의 후예라 할 수 있습니다.
DSW: 경제학을 문화적 집단 선택과정으로 본 하이에크의 진화론자적인 면모를 봅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당시의 경제학 연구에 비해 얼마나 혁신적인 것이었나요?
SB: 표현은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 기본 개념은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서라는 개념의 기원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에게 기업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기업이 다시 표준이 되는 선택 과정을 모델링하는 것은 일반적인 습관입니다. 하이에크 주장은 진화적 추론을 통해 규제 없는 시장의 본질적인 우수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러나 이런 체제 수준에서의 사회진화론이 꼭 하이에크가 원했던 계보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1964년 또 다른 위대한 사상가인 탈콧 파슨스는 사회의 구성 요소 중에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며 오래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는 “진화적 보편자(evolutionary universals)”를 주장합니다. 이는 생물학에서 시각처럼 여러 종에서 공통적으로 진화에 의해 나타나며 거의 잘 사라지지 않는 복잡한 특성이 사회학에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화적 보편자’의 특성에는 시장이나 돈이 포함되며 또한 “인간이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대규모 행정기구이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표현되는 “강제력을 가지는… 권위적 주체” 역시 들어갑니다. 즉, 파슨스는 정부와 시장 또한 진화적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봤습니다.
DSW: 하이에크에 대한 비판을 정리해 주실 수 있나요? 내 것과 비교해보고 싶네요.
SB: 당신은 아마 그의 문화적 진화 개념 중 취약한 부분에 관심이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나는 그를 자신의 경제학에의 기여와 일치하지 않는 – 심지어 충돌하는 – 정치적 입장을 가진 위대한 경제학자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는 하이에크가 경제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주창한 자유의 가치가 오늘날 더 잘 지켜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DSW: 또 다른 놀라운 주장이네요. 하이에크가 자유주의에 위협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SB: 정치적 자유주의와 하이에크의 경제적 자유주의 – 자유방임주의 – 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20세기 마지막 4반세기 동안 우익의 부활로 그 비용을 지불한 이들의 분노가 오늘날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와 불관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은 ‘거대한 정부’가 아닙니다. 잘 살펴보세요. 관용, 법치주의,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보호와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가 정부가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유럽에서 잘 지켜지나요, 아니면 하이에크의 정치적 비전이 널리 받아들여진 미국에서 잘 지켜지나요?
하이에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실증적 비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나는 그가 오늘날의 세상을 본다면 과연 큰 정부가 정말 경제에 있어 자유주의적 가치를 위협한다고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DSW: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열렬한 지지자로 그녀와 함께 진화적 관점에서 그녀의 핵심 디자인 원리 접근방식과 다중심 거버넌스를 일반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나는 그녀야말로 하이예크보다 자유방임주의와 계획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하이에크와 오스트롬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SB: 오스트롬과 하이에크는 모두 사회공학을 거부하며 인간의 능력을 강조해 문제를 상향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오스트롬은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환경 악화 문제를 소규모 공동체가 사회적 기준과 지역 규칙을 조합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나는 로날드 코스 또한 같은 “상향식” 전통에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섭을 통해 때로 환경의 효과 혹은 시장 실패나 정부의 정보 부족 및 의지 부족 같은 다른 ‘외부 효과’까지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롬과 코스는 하이에크와 또한 다릅니다. 오스트롬의 경우 매우 긴 기간의 현장조사를 벌이는 등 두 사람은 현실에 이를 적용하는 데 매우 신중했습니다. 또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 오스트롬은 공동체를 제시했고 코스는 교섭을 제안했습니다. 하이에크처럼 규제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DSW: 우리가 하이에크의 긍정적 측면에 오늘날 경제학 및 진화론의 발전을 추가한다면 그 길은 어디로 향할까요? 아마 자유방임주의로 향하지는 않겠지요.
SB: 하이에크가 강조했던 것들로 돌아가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정보는 희귀하고, 한 사람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비대칭 정보’라 불리는 이런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 거래의 모든 측면을 다 포괄하는 강제적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실, 곧 계약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표준 경제 모형을 완전히 뒤바꾸게 됩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미시경제학 이론은 세 가지 충격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겪었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쓴 “미시경제학: 행동, 제도, 그리고 진화”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쟁 시장이 꼭 평형 상태에 도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실업자 혹은 재산이 없는 이들이 신용 시장에서 배제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며 표준 모형에 추가적인 비용 혹은 다른 ‘변이’를 넣어야 설명되는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시장 실패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다공급 상황이 아닐 때도 신용이나 고용 시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시장 실패가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인-대리인 관계에 있는 고용주, 지주 등 모든 “주인(principals)”은 피고용자나 차용자에게 권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이에크가 50년 전 이룬 경제학에서의 정보 혁명이 결국은 시장의 실패, 그리고 고용주의 피고용자에 대한 과도한 권력 문제 두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더 큰 공동체의 역할을 부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수정하거나 중앙 정부의 규모를 더 축소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이는 정부의 규제가 아니라 민주적 시민 사회(democratic civil society)의 활발한 활동을 요구합니다.
DSW: 당신처럼 하이에크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생각하며 높은 평가를 하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조지 메이슨 대학의 메르카투스 센터 등 전 세계 여러 곳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는 하이에크를 경제학의 필수 이론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SB: 맞습니다. 그 때문에 경제학은 빈약한 학문이 되었지요. 두 가지 이유가 떠오르네요. 우선 하이에크의 복잡한 진화 시스템으로써의 경제학은 20세기 후반 경제학을 지배한 왈라시안 패러다임에 비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제시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수학을 통한 정확한 모델을 중요시 – 내 생각에 – 한다는 점에서 이 이론의 채용을 늦춘 감이 있습니다. 둘째, 대공황 이후 케인즈의 안정 정책과 여러모로 유익했던 정부의 규제에 대한 하이에크의 극렬한 반대는 많은 경제학자로 하여금 하이에크의 저작을 무시하게 하였고 따라서 그의 다른 근본적인 통찰 또한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또한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하이에크를 등에 업으면서, 하이에크의 명성이 같이 빛바랜 점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마르크스와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곧, 그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추진된 시스템이 다수 학자들의 반대를 겪으면서 그의 본질적인 통찰력이 간과되는 운명 말입니다.
(이보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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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진화 만물설"이라고 번역한 "evolutionary universals"는 "진화(적) 보편자"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습니다. universal은 "보편자와 개별자"(universals and particulars) 등에서 유래한 철학 용어로 인문사회과학 일부 분야에서도 차용하여 쓰고 있는 용어입니다. "보편자"보다 나은 번역이 가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만물설"은 오해의 소지가 큰 역어 선택 같습니다.
좋은 글 번역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 훌륭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