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저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DSW)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인류학자입니다.)
프레드리히 하이에크를 읽기 전까지 나는 진화생물학자가 경제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부인의 참견으로 비치리라 여겼다.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왈라시안 일반균형이론의 비판자이며 경제 체제는 문화적 집단 선택이론을 기반으로 진화하는 분산된 지능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안한 경제학자이다. 곧 경제 체제는 누군가 계획한 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한편 이 분야는 내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나는 하이에크를 선각자로서, 특히 집단선택설이 이단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으며, 또 그가 인간 문화의 진화에 관해 처음 주장을 폈을 때만 해도 그에 대한 연구가 극초기였다는 점에서 그를 존경한다. 그러나 하이에크 이후 이 분야에는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새로운 이론들은 그의 주장, 곧 규제가 전무할 때 경제 체제가 가장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적 집단선택설은 자유방임주의와 중앙집권적 계획주의 사이의 다양한 가능성을 지지한다.
최근 세 저명한 경제학자 – 새뮤얼 보울스, 앨런 커맨, 라지브 세티 – 는 학술지 “경제전망(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프레드리히 하이에크와 시장 알고리듬”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이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정리해 기고했다. (또한,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포털 복스(VOXeu)에 “시장 알고리듬과 정부의 역할: 하이에크를 생각하며”를 썼다.) 이 세 명은 모두 내 분야인 진화론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여기에 그들이 가진 경제학 분야의 전문성을 결부시켰다. 샘은 최근 “도덕적 경제: 왜 선한 보상체계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를 발표했고, 이보노믹스(Evonomics)에 이와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CORE(Curriculum Open-Access Resources for Economics, 공개 경제학 교과과정)의 일원이며 www.core-econ.org에 새로운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써서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나는 샘을 나의 멘토로 삼고 있으며 앨런과 함께 (라지브도 참여하는) 독일 에른스트 스트룽만 포럼이 주최한 학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MIT 출판사를 통해 “복잡성과 진화: 새로운 복합 경제학을 향해(Complexity and Evolution: Toward a New Synthesis for Economics)”을 펴낸 바 있다. 나는 2014년, 앨런과 하이에크에 대한 논의를 포함한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다음은 내가 최근 샘과 이 주제에 관해 나눈 대화이다.
DSW: 샘, 반갑습니다. 나는 이 대화를 기다려왔어요. 당신은 하이에크가 경제학에 미친 가장 큰 긍정적인 영향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SB: 데이비드 잠깐만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를 어떻게 당신 멘토라고 하시나요, 나는 당신이 홀로 정통 생물학과 싸우던 시기에 당신으로부터 집단 선택설이 보다 널리 응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어쨌든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정보가 희귀하고 국소적이라는 점에서 시장을 정보처리 기제라 부른 하이에크의 표현은 모든 경제학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학에 있었던 완전 경쟁 평형에 대한 그의 비판과 경제학을 동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 또한 그렇습니다.
DSW: 하이에크가 정보에 집중한 것이 경제학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SB: 나는 그의 1945년 논문 “사회에서 지식의 사용”을 경제학 역사상 10대 논문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이 논문은 대공황과 당시 성공적으로 보이던 소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해 촉발된 “계획경제 vs 시장경제” 논쟁의 마지막 이닝에 등장했습니다. 1930년대 말에는 계획경제 반대파가 5점 이상 지고 있었지요. 사회주의 반대파의 수장 조지프 슘페터조차 이렇게 사회주의를 인정했습니다. “사회주의가 동작할 수 있냐고? 물론이다. 순수 사회주의 이론은 모순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등판한 하이에크는 “계획경제 방식은 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계획을 잘 만들 수 없다”는 내용의 결정적인 무기를 가지고 등판해 경기를 뒤집습니다.
DSW: 계획경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불충분한 정보가 문제라는 생각을 흔히 하고 있지 않았나요.
SB: 흥미롭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획경제의 지지자와 비판자는 모두 완전정보 상황을 가정하는 신고전주의(왈라시안)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계획경제를 비판하는 이들도 신고전주의를 따랐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계획경제 반대파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실제 계획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사태를 다르게 보고 있었지요.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만약 전지적 존재가 있다면, 그는 밀의 정확한 생산량에서 시작해 모든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함으로써 무오류의 완벽한 경제 계획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종종 상상하며, 이 때문에 시장의 기능을 쉽게 무시한다…
이는 1945년 하이에크의 논문에서 인용한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1932년 첫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교훈을 정리하며 쓴 말입니다.
DSW: 하이에크는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경제 정책으로 연결시켰나요? 당신은 이를 “자유방임주의로 가는 길”이라 표현했지요.
SB: 사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물론 하이에크는 이론과 정책이 전체를 이루는 두 부분이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경제학과 정치적 입장은 달랐습니다. 사실 하이에크의 경제 이론은 오히려 그의 정치적 입장과 충돌합니다. 이 문제는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DSW: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계획경제에 대한 그의 반론이 그의 가장 큰 학문적 기여인가요?
SB: 그렇지 않습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논쟁이 시발점이 된 것은 맞지만, 1945년 논문을 전후로 한 그의 연구들은 시장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었고, 현대 경제학 분야에 ’정보 경제학’ 부분을 주요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DSW: 시장과 정보에 대한 하이에크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인가요?
SB: 그 아이디어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합니다. 바로 가격이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물론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지만, 이상적으로 물건의 생산비용과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바로 가격입니다. 계획경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정보죠. 미국 중부 지역에 가뭄이 들고 밀의 가격이 오르면 이는 “저녁으로 감자나 파스타를 먹으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예에서 보는 것처럼, 가격은 메시지를 넘어 하나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밀의 가격 상승은 그저 다른 메뉴를 추천하는 것을 넘어 그 대안들을 저비용 대체재로 만들어줍니다.
DSW: 하이에크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시장은 스스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인가요?
SB: 정확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이에크는 그 합리성 때문에 시장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시장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계획경제는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에 정부가 일정 정도를 넘어 개입하는 것을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노예제로 가는 길(Road to Serfdom)”을 쓸 때 북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히틀러나 스탈린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DSW: 나는 하이에크가 일반균형이론에 대한 혁명적인 대안을 내놓았음에도 두 이론이 모두 자유방임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과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두 사람이 몽 펠레린 학회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점을 흥미롭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는 마치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이런 이론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SB: 음, 그것은 하이에크나 일반균형이론의 지지자 모두에게 부당한 표현 같네요. 일반균형이론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처음으로 증명한 케네스 애로우는 현실 경제에서 이 이론이 가지는 한계 또한 지적하였고, 30년 뒤에는 “주의해야 할 사회주의 사례(a cautious case for socialism)”를 쓰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이에크가 정부의 규제에 반대한 것은 시장이 항상 “최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완전경쟁 평형이라는 개념에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희귀하고 국소적인 정보의 중요성, 평형에 대한 대안적 개념, 경제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생각 등이며 이는 그가 이들을 기반으로 계획경제를 공격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고 있던 생각입니다.
DSW: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디어들은 결국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는 기반이 되지 않았나요?
SB: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를 편향적으로 섭취한 이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렸지요. 그는 자유방임주의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언급한 앨런, 라지브, 그리고 내가 같이 쓴 논문에서 우리는 하이에크의 경제 이론이 그 자체로는 오히려 규제 없는 시장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탁월한 논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보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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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감사드립니다. 글 마지막 '2부로' 하이퍼 링크가 잘못되어있는데요, http://mvsm/2018/01/29/m-hayek2/ 에서 2018/1/29가 아니라 1/28로 수정하시면 2부 페이지로 정상적으로 접속될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