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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과 문학을 번역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1/2)

문학을 번역할 때 원문에 얼마나 충실해야 할까요? 세 가지 언어에 능통했고, 그 가운데 두 언어로는 작품을 쓸 만큼 글솜씨가 뛰어났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유려하게 다시 쓴 문장보다 어딘가 서툴더라도 원문을 그대로 살려낸 조잡한 번역이 천 배는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번역가란 무릇 원문을 그대로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필요에 따라 변용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번역이란 고차원의 문명 활동이자, (맞닥뜨리는 글에 따라) 상당히 수준 높은 글쓰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보르헤스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여러 언어를 구사했는데, 위의 주장도 프랑스어로 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한국 소설 사상 처음으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작가인 한강 씨뿐 아니라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씨도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당시 28살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지 불과 6년 만에 이렇게 뛰어난 번역을 해냈다며 영어권 국가의 문단에서 칭송을 받았습니다. 한국 언론도 <채식주의자>의 수상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소설은 2007년 책을 처음 펴냈을 때보다 스무 배나 많이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자부심은 이내 영역본이 알고 보니 심각한 오역투성이라는 비판에 한풀 꺾였습니다. 원작자인 한강 본인이 영문판을 직접 읽고 검수했다고 하지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는 “엉뚱한 오역”이 너무 많다는 학계의 지적을 소개했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지난여름 서울 국제도서전을 찾아 “원작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전체적인 작품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때로 부분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역 논란에 대한 자기변호로 풀이할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논란은 지난해 9월 한국계 미국인이자 이화여대에서 번역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차스 윤 교수가 LA타임스에 실은 칼럼을 통해 미국에도 소개됐습니다. 칼럼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보다 두 달 앞서 한국 온라인 매체인 코리아 익스포제에 윤 교수가 썼던 글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윤 교수의 지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 작가의 담담하고 여운을 남기는 필체를 너무 화려한 문장에 담으려 했다. 그 결과 원작에선 찾을 수 없는 온갖 부사와 최상급 표현, 강한 수사가 난무하는 글이 되었다. 작품에서 이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자꾸 눈에 띄었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찰스 디킨스가 쓴 것처럼 고쳐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차스 윤 교수는 단지 적확한 번역이 아니라서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가독성을 고려하는 데도 실패한 번역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문학의 유구한 전통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어져 왔지만, 최근 들어 서구, 특히 미국 문화에 포섭되는 데 있어 문학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미권에서 인정받고 성공을 거둔 한국 문학 작품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문학이 미국 언론에 꾸준히 소개되기는 하지만,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 문학에 쏠리는 관심과 인기에 비교하면 초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강은 이런 갈증을 한 번에 해결해줄 만한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한강의 작품이 거둔 성공이 명백한 오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작품이 훌륭해서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기도 멋쩍은 상황이 되는 셈입니다.

<채식주의자>는 구조부터 우화에 가깝습니다. 작품은 한 사람의 신체가 스스로 파괴되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혜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남편 정 씨의 묘사를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 “평범한 아내”였습니다. 언제나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정 씨에게 평범하고 무난한 영혜의 성격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The passive personality of this woman in whom I could detect neither freshness nor charm, or anything especially refined, suited me down to the ground.)

그렇게 평범하고 무난한 그녀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혜는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다며 길거리를 걸을 때는 물론이고 남편의 직장 상사와의 부부동반 모임에서조차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볼품없는 가슴에 노브라란 사실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남편은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혜의 과민함에 남편은 체면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아 불편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깬 남편 정 씨는 아내가 냉장고에 있는 고기란 고기를 모조리 버리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꿈을 꿨어.”

이 한마디와 함께 영혜는 앞으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맛있는 요리도 곧잘 하며 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던 아내를 듬직히 여기던 남편은 갑자기 어떤 의미에서 파출부 같은 존재로 변해버린 아내에게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꿈을 꿨다며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은 뒤로 한없이 야위어가는 동시에 섹스마저 이유 없이 거부하는 아내를 강제로 덮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아내는 마치 끌려온 종군위안부라도 되는 듯 축 늘어진 채 멍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as though she were a ‘comfort woman’ dragged in against her will, and I was the Japanese soldier demanding her services.)

뜬금없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영혜의 선언은 남편뿐 아니라 온 가족을 충격이 빠트렸습니다. 특히 월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까지 받은 장인이 몇 번이고 반복하는 무용담은 전장의 트라우마를 평생 치유하지 못한 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고기를 먹지 않겠다며 가부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딸의 모습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가족 모임에서 온 가족이 영혜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설득하다가 참지 못한 그는 탕수육 한 점을 강제로 딸의 입에 쑤셔 넣으려 합니다. 끝까지 저항하던 영혜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렸고,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책 후반부에 영혜보다는 훨씬 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사는 언니 인혜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혜의 입에 고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다가 영혜가 자해했던 그 가족 모임이 있고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인혜는 그제야 맏딸로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며 악착같이 일해 온 자신의 삶이 성숙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삶이었음을, 단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계속 아무것도 먹기를 거부한 탓에 몸무게가 30kg까지 줄어든 영혜는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며 물구나무를 선 채 햇빛을 좇으며 자신을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은 영혜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 20세기 초 모더니즘 시인이었던 이상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의 작품은 일본강점기 엄격한 검열을 받았지만,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불안함이 행간에 서려 있었습니다. 이상은 긴장 증세의 하나로 나타나는 금단현상 혹은 자기 안으로의 침잠을 강박이나 우울증에서 비롯되는 증상이라고 묘사하며 “사람은 누구나 다 식물이 되어야 한다.”라고 썼습니다.

이상이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데서 비롯된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다면, 한강은 훨씬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고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한강의 글쓰기도 물론 한국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차스 윤 교수는 그래서 한강의 글을 옮길 때 오역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서구 독자들이 대체로 한국의 현대 소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화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데보라 스미스는 소설의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켰고, 한강의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대신 서구 독자들이 무리 없이 읽어내려가기에는 좋은 작품이 됐습니다. 예를 들어 영혜가 한밤중에 우두커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을 무시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우리말 원작 (한강) :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공식 영역본 (데보라 스미스): (She is) perfectly oblivious to my repeated interrogation.

정확한 번역 (차스 윤 교수 주장): as if she hadn’t heard me.

원작은 분명 영혜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서 있지만, 이어지는 문단을 보면 실은 영혜가 남편의 질문은 물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다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미스의 번역을 우리말로 다시 옮기면 ‘계속되는 내 질문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읽힙니다. 미묘하지만 둘의 의미는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영혜라는 인물은 과장될 만큼 공격적인 요소나 분명한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돋보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채식주의자”는 조용한 저항과 그로 인한 결과를 담담히 그려내는 작품이자 가족과 사회라는 규범에 특히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조명해 한국 문화를 찬찬히 짚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한강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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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보기

* 이 글을 옮기며 <채식주의자>의 영역에 오역을 꼼꼼히 지적해 정리한 블로그 번역, 또는 오역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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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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