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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들의 질병 퇴치 꿈이 어려운 이유

2016년 말,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와 그의 부인 프리실라 챈은 30억 달러의 돈을 비영리단체(상용화 권리는 소유하지만) 바이오허브에 기부하며 “모든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같은 시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2026년까지 암을 퇴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 숀 파카는 비영리기관 공제를 통해 약 2억 5천만 달러를 암 연구에 기부하겠다고(특허권은 소유하지만) 약속했습니다. 자선사업가 일라이 브로드와 테드 스탠리 역시 14억 달러를 브로드 연구소와 스탠리 정신의학 연구소에 기부해 ‘조현병 블랙박스’를 열고 정신병을 유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지난 시절 앤드류 카네기와 존 D 록펠러가 도서관을 짓고 재단을 세운 것처럼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억마장자들은 의학과 질병 분야에 자신의 유산을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질병을 완전히 없애는 문제는 다른 문제와 다릅니다. 사람의 몸을 마치 기계처럼 생각해 크리스퍼-CAS9과 같은 도구를 이용, 유전자를 변형시켜 치료하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과 맞지 않습니다. 기계는 진화하지 않지만 생명체는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하나의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다른 기능을 활성화 시키거나, 아니면 그 기능의 억제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능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작용합니다. 즉, 진화에 있어 모든 변화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때로는 어떤 기능이 일부러 사라지기도 합니다.

더 많은 연구비와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질병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진화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윈은 종의 진화가 개체 단위에서 벌어지는 자연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DNA가 발견되어 ‘현대진화이론’이라 알려진, 다윈의 핵심 원리를 유지하면서도 유전자와 인구집단의 진화를 모두 아우르는 이론이 완성되었습니다. 1966년,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르원틴과 존 허비는 희귀한 유전자가 일정 비율 집단 내에 존재함으로써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실제로 희귀한 유전자를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는 차선이거나 심지어 유전적 위험요소가 될 수 있지만 때로 개체에게 이득을 주기도 하며, 이때문에 이들은 전체 집단내에서 일정 규모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론 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희귀한 유전적 변이야 말로 혁신의 기반이며 이들이 집단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연때문이 아니며, 소수의 그러한 개체가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집단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는 날개에 걸리는 우연이 아닙니다.” 진화는 우연한 또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변화가 쌓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선택에 의해 세공되는 창발적인 질서라고 그는 1993년 “질서의 기원(The Origins of Order)”에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데이터 과학자들은 종종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합니다. 곧, 더 많은 데이터와 뛰어난 분석기술이 생물학의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것입니다. 분자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은 1989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운명이 이 지구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크게 보면, 우리 운명이 우리가 가진 유전자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이 설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뇌가 단순한 인과관계를 찾도록 만들어져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 유전자가 해독된 지난 근 20년 동안 새로 나온 약이나 해법은 거의 전무합니다. 이는 분석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생물학은 진화, 그리고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이 아니라 외부와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계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수많은 유전자 변이를 경험하고, 수백조 개의 신경세포를 새로 연결합니다. 내부 장기와 뇌막을 통과하는 무수한 병원균의 공격을 받고, 동시에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해가 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체내에 유지합니다.

진화에서 어떤 것도 공짜는 없습니다. 스트레스는 만성질환의 원인이지만 창조성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낭상 섬유증을 만드는 유전자 변이는 콜레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며 테이삭스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결핵을 막아줍니다. PCSK9 유전자의 변이는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주지만 허혈성 뇌졸중의 위험을 높입니다. 특정 유전자를 수리해 질병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그 유전자가 주고 있던 이익 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심지어 암 조차도 세포 회로의 고장에 의한 질병이라기 보다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계속 진화하는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암이 자신을 없애려는 사람들의 치료법과 싸우는 방법 중에는 유전자와 무관한 것들도 있습니다. 면역요법이 매우 효과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방법이 암에 생태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면역 시스템은 암의 진화에 맞춰 자신 역시 진화하는 것입니다.

다윈이 알려준 것은 세상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 완벽한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더적합하게 변할 뿐입니다. 인간이 기계라면, 우리는 고장난 부분을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생명에는 보다 근본인 특징이 있스니다. 바로, 생명의 작동 방식 자체에 위험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강하게 표현하면, 유전자의 변이와 다양성은 혁신의 근원이며, 이는 인간을 너무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을 파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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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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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을 통해 낙관적으로 묘사되는 미래에 대해 단순히 종교윤리.도덕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진화를 예시로 들며 걱정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유익했습니다. 기존과 다른 시선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네요.
    다만 제 지식이 얕아서 이 글에서 비판의 근거로 제시하는 부분들 -다양성에 따른 진화, 완벽은 곧 종결일수도 있기에 불완전함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시선-이 얼마나 과학적 연구결과에 기반하는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네,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일단 본 글의 경우 유전자의 다양성이 개인에게 주는 유익과 집단에게 주는 유익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집단의 경우 유전자 다양성이 그 집단으로 하여금 환경의 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충분히 상식적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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