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천상과 지상이 공존하는 신성하고도 죄악스러운 곳이다. 탈무드에는 “신이 아름다움의 척도 열 가지를 세상에 주었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이 가졌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신이 고통의 척도 열 가지를 세상에 주었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이 가진 것처럼 보인다. 중세시대의 아랍 지리학자 알 무카다시는 예루살렘을 “전갈이 득실거리는 황금빛 그릇”에 비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했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수도 인정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에 위치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여전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 구축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한 조치는 전갈의 독침만큼이나 위험하다.
특이하게도 이스라엘의 수도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 어떤 국가도 자국의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두지 않았다. 이 특이하고 예외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7년 UN이 당시 영국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을 각각 유대인과 아랍인 국가 두 개로 나눈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통과시켰을 때, 예루살렘은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어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곧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예루살렘과 요르단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20년 후,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까지 모두 점령하여 예루살렘 전체를 인위적으로 합병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에게는 특별 지위가 부여됐지만, 건축 사업에서부터 인구 정책, 그리고 최근에는 보안 장벽까지 모든 이스라엘의 정책과 조치들이 “분할되지 않은 영원한 수도” 예루살렘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최종 사안으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유대계 로비에 힘입어 미국 의회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제로 몇몇 대통령 후보들은 캠페인 중 이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당선된 역대 대통령들은 언제나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이전을 유예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외치고 있다. “나는 이번 결정이 미국의 국익에 최선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구축에도 기여하리라 판단했다.” 그는 틀렸다. 이번 결정은 둘 중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바로 그가 추구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궁극적인 평화 협정”의 결과를 속단한 것이다. 이스라엘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덜컥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해 버렸고, 독립국으로써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로써 국제적인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미국의 입지도 손상되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가뜩이나 입지가 위태로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과 팔레타인인들의 소망이 폭력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줬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아랍 동맹국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중동에서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사실상 동맹 관계를 맺으려 했던 아랍국가들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랍국가들이 다른 시급한 문제들에 정신이 쏠려서 팔레스타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국내적으로 너무 분열되고 기가 꺾인 상태여서 이번 결정에 크게 반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반발 가능성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쓸데없이 폭력을 조장할 위험이 있는 행동을 저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면 미국은 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또한 다른 많은 국가처럼 이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간주한다. 역대 대통령들을 포함한 미국의 외교관과 정치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장관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이번 결정이 어떤 큰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리라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굳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표한 것일까?
그 답은 미국의 대중동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모든 원인은 미국의 국내 정치에 기인한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와 사법부의 저항 때문에 자신의 공약으로 내건 사안들을 실천하는 데 꽤나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그는 이제 ‘역대 대통령들의 무능함’으로 인해 지켜지지 못했던 파격적인 약속을 마침내 실행에 옮긴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강력한 지지층인 복음주의자들이 아랍인들을 싫어하는 친(親) 이스라엘파라는 것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궁극적인 평화 협정의 왕관으로 남겨져 있어야 했다. 그래도 굳이 모든 걸 뒤흔들어야겠다면, 차라리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어떤가. 예루살렘에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미국 대사관을 두는 것이다. 하나는 이스라엘과의 양자 관계를, 다른 하나는 동예루살렘에 위치하게 하여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두 개의 국가와 양국 국민을 위한 두 개의 대사관 –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신선한 접근이 아니겠는가.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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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가 약해지거나 필요없어지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선언할 미국대통령...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세계경찰노릇이나 기축통화국의 자리도 내려놓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