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뉴질랜드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식량과 사냥용 놀잇거리로 유럽의 토끼를 데려왔습니다. 뉴질랜드에는 토끼의 천적이 없었기에 그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당시 수천 헥타르의 땅 밑에 토끼 굴이 파였고 많은 농지가 황폐해졌습니다.
토끼의 생태계 파괴를 막고자 뉴질랜드 사람들은 토끼의 천적인 여우를 데려왔습니다. 여우는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키위, 웨카, 카카포 등의 멸종 위기였던 새들도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이야기를 의도치 않은 결과의 예로 즐겨 언급했습니다. 이 여우 이야기는 복잡한 상호의존성을 가진 세상을 단순한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일어나는 위험을 알려줍니다.
나는 내과 의사로 만성질환을 위해 약을 처방할 때마다 뉴질랜드의 여우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혈압에는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를, 2형 당뇨병에는 설포닐루리아를, 심장질환에는 스타틴을 처방합니다.
내가 이 약들이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약을 통해 사람들은 분명 생명을 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복잡한 인간의 신체에 이 약들은 마치 큰 망치처럼 작용합니다. 여우가 토끼 문제는 해결했지만, 생태계에 다른 문제를 일으킨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카카포는 뉴질랜드에서 멸종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약들은 인체에 어떤 부수적인 피해를 주고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습니다. 고혈압에 널리 쓰이는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는 헤모글로빈 A1C를 늘이고 포도당 내성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는 인슐린 저항성의 한 지표이며 당뇨, 비만, 심혈관질환, 치매의 원인이 됩니다.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는 또한 LDL 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이드를 높이며 HDL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심혈관 질환의 확률을 높입니다.
설포닐루리아 역시 심혈관 질환의 확률을 키웁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인 스타틴 역시 포도당 내성을 약화시켜 당뇨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약이 주는 이득과 피해를 모두 고려했을 때, 약을 먹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이런 만성질환들에 있어 하나의 병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이 다른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인간의 몸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그리고 우리의 의학이 아직 얼마나 미숙한지를 보여줍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이야기 역시 좋아했을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분자 생물학과 약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우리가 각 질병의 근원을 찾게 된다면 더 효과적인 약을 발견할 수 있고, 혹은 완치까지도 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는 만성질환에 대한 치료법보다는 다른 종류의 진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몸이 극도로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깊이 파고들수록, 만성질환의 원인은 더 얽혀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고혈압, 당뇨, 심장병이라는 만성질환에 있어 밝혀진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들의 원인이 세포 안의 어떤 한 가지 잘못된 스위치가 아니라, 바로 비정상적인 신진대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마법의 총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자 수준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아직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모든 노력이 다시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는 뉴질랜드인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될까요? 아니면 우리를 만성적인 병에 걸리게 하는 외부의 요인을 찾아내 결국 이 싸움에 이길 수 있게 될까요?
어쩌면 이길 수도 있습니다. 최근 수렵 채집인들과 유목민들은 이런 만성질환을 겪지 않았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한 연구는 수렵 채집인들도 유아기와 청년기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78세까지 살 수 있었음을 보였습니다. 유전자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수렵 채집인들의 유전자는 오늘날 유럽인들의 유전자보다 더 만성질환에 취약했습니다.
핵심은 그들의 생활방식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매우 다양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습관, 곧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조건들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만은 공통점입니다. 바로 가공식품, 좌식 생활, 그리고 만성적 스트레스입니다.
그들이 만성질환을 겪지 않았던 이유가 그들의 생활, 활동, 식습관 때문이라는 증거가 점점 쌓이고 있습니다. 식습관은 특히 중요합니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서구의 식습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만성질환 역시 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건강한 이들과 당뇨에 걸린 이들에 대한 비교 연구에서 음식의 중요성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랫동안 그저 체중 조절의 용도로만 생각되던 운동은 사실 인슐린, 스트레스 반응, 수면, 정신 건강 그리고 심지어 뇌의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방식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법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만성질환으로 고생시키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환경입니다.
의사와 연구자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또한 여전히 분자 수준의 해결책에 우선순위를 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과학은 수많은 일을 해냈고, 기술의 발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환경적 요인을 조절해 건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컵으로 배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성질환자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2030년 만성질환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총 3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이 바로 행동을 시작할 때입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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