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최고경영자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되, 그 회사에 관한 이야기는 빼고 나머지 이야기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죠.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기자로 여러 CEO를 인터뷰하면서 대개 판에 박힌 질문을 하고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을 받아적던 날들이었죠. 회사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경쟁은 어떻게 헤쳐나갈지, 사업하는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요인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등이었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훨씬 다양한 주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제품을 출시하는 일이나 규모를 늘리는 일,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 같은 사업 얘기 말고, 직원들에게 어떤 리더가 되려고 노력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뽑는지, 지금 돌이켜봤을 때 더 젊어서 알았더라면 하는 깨달음이 있거나 역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지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그때부터 ‘코너오피스(Corner Office)’라는 코너를 연재해 벌써 525편의 인터뷰 이야기를 풀어 칼럼을 썼습니다. 매주 격의 없는 질문과 CEO들의 진솔한 답변 덕분에 정말 예상치도 못한 소중한 통찰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CEO도 있었고, 마약과 조직폭력으로 얼룩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마침내 CEO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팀워크를 다지는 방법으로도 타이틀이나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법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로봇청소기로 집을 청소해주는 이색적인 방법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례를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뽑을 때 어떤 점을 집중적으로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의 진가를 파악하는지에 관한 각 최고경영자만의 방법은 들을 때마다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자기 차 열쇠를 주고 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까지 운전을 하게 하는 CEO도 있었고, 스스로 얼마나 괴짜 같은 사람인지 10점 만점에 몇 점으로 생각하는지 말해보라고 질문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모든 CEO가 감복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건 당연히 아닙니다. 안 좋은 쪽을 조명하는 뉴스가 종종 나오는 것처럼 CEO 중에는 실제로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사회성이나 대인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경영 전반이나 리더십, 그리고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데 관한 통찰을 듣기에 CEO보다 더 적합한 자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너오피스 칼럼을 쓴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오늘 그간 칼럼을 연재하며 얻은 교훈을 정리하는 글이 이 코너에 제가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겁니다. 모두 모으면 500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저는 리더십에 관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고, 인터뷰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 만큼 훌륭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기억이 남는 인터뷰를 몇 편 다시 소개합니다.
CEO가 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CEO가 되는 왕도를 찾으려 합니다. 재무나 금융 쪽 경험을 쌓는 것이 마케팅 부서에서 성장하는 것보다 낫다, 해외 근무 경험은 몇 군데 몇 년 정도가 적절하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정작 특기라 할 만한 분야가 없어도 문제인데 적절한 균형점은 어디쯤일지 등에 관한 질문에는 CEO가 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을 찾기 위한 욕망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러한 욕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바야흐로 머니볼과 빅데이터 시대입니다. CEO들에게서 나타나는 패턴이 있으면 그 패턴을 따라 하는 게 CEO가 되는 지름길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뚜렷한 패턴을 규명해내기에는 변수 자체가 너무 많은 데다 수많은 변수 가운데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運)이나 타이밍, 인간관계 등 온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제가 인터뷰한 CEO들이 그 자리까지 올라온 경로만 해도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일정한 패턴을 찾기는 어려웠죠.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도맡아 해 언젠가는 큰 회사를 이끌 재목으로 꼽히는 그런 사람만 CEO가 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만난 CEO 중에는 극단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던 사람도 있고, 가수 지망생이었던 사람도 있고, 선생님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형편없던 사람도 꽤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경과 성장 과정이 다른 CEO들에게서 발견되는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까요? 즉, 성실함이나 인내처럼 당연한 덕목 외에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라면 갖추고 있는 또 다른 덕목이 있을까요?
제가 찾아낸 세 가지 덕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CEO들은 대개 호기심이 정말 많습니다. 모르는 건 무엇이든 꼭 질문하고 만족할 만한 답을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진행되는 원리부터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합니다.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도 CEO들이 궁금해하는 주제입니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의심하고 망설일 시간에 CEO들은 대개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 뒤에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발판으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습니다. 리버티미디어(Liberty Media)의 CEO 그레고리 마페이는 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관심이 가고 흥미를 느끼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일과 접목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죠. 그건 점과 점들을 이어 지금은 조각처럼 흩어진 것들을 어떻게 하나로 맞춰낼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굴지의 미디어 그룹인 리버티미디어는 시리우스XM이나 포뮬러원 경주 중계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둘째, CEO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과 긴장도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전 보통 문제가 무엇이든 그 문제를 좋아해요. 불이 나면 최대한 가까이 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보고 싶은 그런 마음과도 같은 거죠. 제가 지금껏 사람들을 만나보니, 저처럼 비슷한 욕망을 지닌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저는 태생적으로 문제를 보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DNA에 그런 유전자가 있어서 처음부터 정해진 기질 같은 거죠.”
평생 금융권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젠방크스(Zenbanx)의 CEO인 아르카디 쿨만(Arkadi Kuhlmann)의 말입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경력을 밟아온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데, CEO들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잘 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승진을 거듭하게 됐죠.
너무 뻔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직 맡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지금 해야 할 일에 소홀해지는 기본적인 우를 범하는 점을 떠올려보면 뻔하지만 새겨들어야 할 CEO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 야망을 억누르고 미래를 고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직장에서, 이 업계에서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노력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직장 상사와 그 목표를 공유한 뒤 이 분야의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능한 한 많은 걸 배우는 건 아주 좋은 일입니다. 사내정치도 필요하면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뭐든지 자기가 다 한 것처럼 포장하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꼭 자기가 받아야만 성미가 풀리는 사람은 특히 멀리해야겠죠.)
그러나 여전히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는 평판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알아서 당신을 주목하게 될 테니까요. 편의점 운영을 총괄하는 업체인 CST 브랜드의 CEO를 지낸 킴 루벨(Kim Lubel)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앞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데만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그 사다리 넘어 다음 단계로 당신을 이끌어줄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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