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만과 펀바흐 교수는 이 효과를 “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착각(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믿고 있죠. 그리고 우리가 그런 착각에 빠진 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 덕분입니다. 화장실의 예로 돌아가 볼까요? 내가 그 세세한 작동 원리까지는 몰라도 화장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건 다른 누군가가 수고를 들여 그렇게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다른 이의 전문성에 기대는 건 인간이라는 종이 아주 잘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함께 사냥하기 시작한 이래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에 기대 왔습니다. 이는 인류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누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런 능력과 전문성을 모아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협동을 고도로 발전시킨 결과, 우리는 어디까지가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부분이고, 어디서부터는 우리 집단의 지식이자 다른 사람의 전공인지를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의 생각이나 지식과 같은 집단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가르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경계가 없다는 것을 혼동이라고 쓸 수도 있을 겁니다. 때로는 이런 혼동이 진보를 이룩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삶의 방식을 바꿔줄 새로운 도구나 기술을 누군가 발명해내는 순간 그만큼 인류 전체에게는 무지의 영역이 생기는 셈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청동기가 되어 칼이라는 도구가 나타났는데, 모든 사람이 금속 주형의 원리를 알기 전까지는 칼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면 청동기 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없었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은 그 기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는 만큼만 활용하고 쓰는 사람들에 기대어 발전하기 마련합니다.
슬로만과 펀바흐 교수는 하지만 정치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화장실에서 변기에 물을 내리는 건 그 작동 원리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민자나 외국인을 향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어서는 곤란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강제 병합했을 때 미국의 대응을 묻는 말에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일수록 군사 개입을 지지한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어디 붙은 나라인지 몰라도 너무 몰랐는데, 실제 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이 답한 위치까지 차이의 중간값이 무려 2,880km나 됐습니다. (옮긴이: 한국이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사이판을 찍은 셈입니다))
다른 분야에 관한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의 얕은 지식과 근거 없는 강한 확신은 거의 비슷하게 항상 드러났습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대체로 어떤 현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나 의견은 그 사안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기존 의견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케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근거 없는 선동에 기댄 것인데, 만약 제가 건강보험 문제만큼은 당신을 전문가라고 생각해 당신의 의견을 덮어놓고 따른다면 저 또한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는 꼴이 됩니다. 그런 제가 자신 있게 친구인 톰에게 오바마 케어는 이런 것이라고 잘못된 지식을 전파해 심지어 그를 설득하면 이제는 톰도 선동에 휘말렸습니다. 그런데 선동에 휘말렸다는 건 까마득하게 모르거나 알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견이 같은 사람이 적어도 주변에 나를 포함해 셋이나 있으니, 이 주장은 틀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나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모조리 배척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렇게 결국 그 집단은 지금의 트럼프 행정부처럼 되고 마는 겁니다.
“지식 공동체에는 항상 독선과 아집의 공동체로 변모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슬로만과 펀바흐 교수는 경고합니다. 이들은 2012년, 앞서 언급한 화장실 실험에서 화장실을 공공 정책으로 바꾸어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실험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편적 건강보험이나 교사 성과급 지급에 관한 찬반 의견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체로 찬성이든 반대든 훨씬 극단적이고 적극적인 답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찬반 이전에 그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자기가 사실 이 제도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뒤에 다시 한번 각 제도에 대한 찬반을 묻자, 극단적인 답변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잘 모르니 함부로 말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자들은 CNN 등 뉴스 채널에 24시간 나와서 온갖 사안에 관해 거들먹거리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안에 관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논쟁을 벌일 시간에 실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에 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알아보면 극단적으로 부딪히는 듯한 견해 차이를 훨씬 줄일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서 깨어나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사실, 진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과학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나 편향을 바로잡아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된 실험실에서는 우리편 편향이 있을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한 실험 결과가 인정받으려면, 내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다른 실험실에서 같은 조건으로 실험을 재현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와야만 합니다. 바로 이러한 재현 가능성이 과학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연히 과학의 어느 분야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논쟁을 종결짓는 건 객관적인 방법론을 토대로 한 실험 결과입니다. 방법론이 뛰어나야 논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이 편향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순간에도 과학은 진보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잭 고어만이 공중보건 전문가인 딸 사라 고어만과 쓴 책 “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줄 수도 있던 사실을 끝끝내 외면했는가(Denying to the Grave: Why We Ignore the Facts That Will Save us)”에서 저자는 과학이 내놓은 결론과 우리의 실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봅니다. 이들은 백신이 위험하다고 굳게 믿으며 어떤 말로 설득하려 해도 귀를 닫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사실관계가 틀렸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논제를 믿는 이들을 분석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위험한 병균이나 물질로 백신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백신은 오히려 그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자 접종하게 된 것이죠. 저자들은 “면역 체계를 밝혀내고 분석해낸 것은 현대 의학의 위대한 승리”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백신이 안전하다는 과학적인 연구가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그리고 예방접종과 자폐증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아무리 되풀이해서 얘기해도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예 귀를 닫고 있기 때문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하기는커녕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아들 배런에게 예방접종을 했지만, 소아과 의사가 권고한 일정대로 접종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은 이 이야기를 해석할 때도 “대통령도 소아과 의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해 이해하고 나머지 정보는 다 폐기합니다.)
고어만 부녀는 또 마치 스스로 바보라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경우도 앞서 그 생각이 굳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일종의 적응 기제가 작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저자들은 확증 편향을 생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분석했는데,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처리할 때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샘솟아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연구를 인용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심지어 잘못된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더라도,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든든함과 편안함이 있다.
고어만 부녀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틀린 정보를 거르지 못하고, 어떻게 잘못된 생각을 받아들이는지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고치려 했습니다. 그들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에게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백신 접종을 꼭 해야 하고, 총기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너도나도 총기를 소지하는 것보다 총기 소유를 규제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어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건네줘봤자, 사람들은 이미 마음과 귀를 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좀 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이는 과학적 사실을 널리 퍼뜨려 과학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근본적인 목표에 어긋납니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유사과학, 잘못된 과학이 만들어낸 잘못된 정보를 믿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는 여전한 과제로 남는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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