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요커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가 지난 2월 뉴요커에 소개한 글입니다. 콜버트는 확증 편향을 비롯해 인간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추론에 관해 그 뿌리를 진화의 관점에서 살펴본 인지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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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스탠포드 연구진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썼다는 유서 50장을 보여줬습니다. 한 번에 두 장씩, 총 25차례 유서를 보여주면서 학생들에게 두 메모 가운데 실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쓴 유서가 어떤 것인지 알아맞혀 보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받아든 유서 두 장 가운데 한 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쓴 실제 유서였고, 나머지 한 장은 평범한 사람이 상상력을 동원해 쓴 가짜 유서였습니다.
25번 가운데 무려 24번이나 진짜 유서를 가려낸 학생들이 꽤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학생들은 고작 10개밖에 맞히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보여준 유서 가운데 절반은 실제로 LA 카운티 검사관실에서 받은 진짜 유서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실험을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었습니다. 즉, 실제로 몇 개를 맞혔는지와 관계없이 무작위로 학생 절반에게는 24개나 맞혔다고 얘기해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10개밖에 못 맞혔다고 통보한 겁니다.
이어지는 실험에서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앞서 알려준 점수는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이 실험을 하는 진짜 목적은 그들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관한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측정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말도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받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진짜 유서를 몇 개나 가려냈다고 생각하는지와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몇 점이나 될 것으로 생각하는지가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앞서 24개를 맞혔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유서를 평균보다 훨씬 많이 가려냈을 것 같다고 답합니다. 반대로 10개밖에 못 맞혔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가 여전히 평균에 크게 못 미칠 거라고 예상합니다. 앞서 점수는 실제 몇 개를 맞혔는지와 전혀 무관하게 무작위로 정했던 거라고 분명히 말해줬는데도 여전히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는 겁니다. 연구진은 냉정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한 번 뇌리에 박힌 인상은 놀라울 만큼 오래 간다.
몇 년 뒤 새로운 스탠포드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프랭크와(Frank K.)와 조지(George H.)라는 두 소방관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줍니다. 프랭크에게는 갓난아이인 딸이 한 명 있고, 취미는 스쿠버다이빙이며, 조지에게는 어린 아들이 한 명 있고, 취미는 골프라는 식으로 시시콜콜한 정보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또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려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지 그 성향을 측정하는 실험(Risky-Conservative Choice Test)에 두 소방관이 어떻게 답했는지도 학생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는 프랭크가 유능한 소방관이며 위험 회피 측정 실험에서 항상 가장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다고 알려주었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프랭크가 마찬가지로 가장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지만, 그는 일을 너무 못하고 여러 차례 사고를 친 탓에 상사에게 경위서를 쓰거나 경고를 받은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형적인 심리학 실험답게, 앞서 알려준 정보는 엉터리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주지 말아야 했는데 잘못 알려준 것이라며 완전히 무시해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학생들에게 두 소방관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프랭크가 유능한 소방관이라고 들었던 학생들은 그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예측했습니다. 반대로 프랭크가 사고뭉치라고 들었던 학생들은 그가 위험한 행동을 무릅쓰리라고 내다봤습니다. 앞서 실험과 마찬가지로 프랭크에 관한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해줬지만, 학생들은 바로 그 거짓 정보에 속아 넘어간 셈입니다. 연구진은 이번에도 비슷한 결론을 내립니다.
기존에 믿던 것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사람들은 믿던 바를 좀처럼 고치지 못한다.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하는 데 고작 두 가지 정보만으로는 제대로 유추하기 어려운데도, 그렇게 확신에 찬 예측을 한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진의 연구는 무척 유명해졌습니다. 1970년대에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됐을 때 이 주장은 학계 전반에 꽤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백, 수천 번의 후속 연구가 그 주장을 입증하고 더 자세히 살을 붙였습니다. 이 주제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얼마든지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에 관한 사례만 해도 수없이 많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생각할까요? 혹은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왜 사람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생각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걸까요?
올해 초 출판된 “추론의 수수께끼(The Enigma of Reason)”라는 책에서 인지과학자 우고 메르시에(Hugo Mercier)와 댄 스퍼버(Dan Sperber)는 위의 질문에 답을 내고자 시도합니다.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추론을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이나 삼원색을 바탕으로 한 시력과 같이 진화의 산물로 봅니다. 추론이라는 기제가 인간의 삶에 처음 등장한 건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인류의 선조 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추론 기제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합니다.
인지과학에 관한 요소를 최대한 뺀 메르시에와 스퍼버의 설명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특히 뛰어난 것은 바로 협동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공동의 목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반복해서 협동을 지속하기는 더 힘들다. 개인에게는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결과와 혜택만 나누어 갖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다 보니, 누구나 무임승차할 유인이 있는 셈이다. 추론이라는 사고 과정은 추상적인 논리 문제를 풀고자 개발한 것도 아니고, 낯선 정보와 자료를 토대로 의미 있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대신에 추론은 서로 힘을 합쳐 집단생활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인간이 개발해낸 사고 기제다.
메르시에와 스퍼버는 사회성이 뛰어난 인간이 자신의 번영을 위해 적응을 거치며 추론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설명합니다. 때로 “지능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은 이상하거나 어리석은,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도록 설계된 것 같지만, 반대로 “사회성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은 협동에 최적화돼 있다는 겁니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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