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잘 알려진 기제를 생각해 봅시다. 확증 편향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기존에 믿는 바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 하고, 자기 생각에 어긋나는 정보는 거부하는 편향을 말합니다. 인간의 수많은 비합리적인 사고 가운데 확증 편향만큼 잘 알려지고 잘 정리된 오류도 없을 겁니다. 확증 편향에 관한 실험만으로도 교과서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에 관해 가장 잘 알려진 실험을 진행한 기관도 오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탠포드대학교입니다. 연구진은 사형에 관한 의견이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학생의 절반은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사형에 찬성하는 학생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며 사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먼저 학생들에게 두 가지 연구 결과를 보여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첫 번째 연구 결과는 사형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반대로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거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연구의 상반되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사용한 데이터는 모두 흠결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짐작하셨겠지만, 데이터 자체를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맞춰 실험을 위해 조작한 연구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두 가지 연구 모두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만큼 그럴듯하게 꾸민 연구였는데, 학생들의 평가는 평소 생각하던 바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사형 찬성론자들은 사형이 범죄 예방 효과가 높다는 연구가 훨씬 믿을 만하며 현실을 짚어낸 연구라고 평가한 반면, 범죄 예방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연구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연구라고 혹평했습니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내놓았고요. 실험 마지막에 한 번 더 이 연구들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는 견해 차이가 더 크게 갈렸습니다.
확증 편향 같은 심각한 오류를 안고 하는 추론으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메르시에와 스퍼버는 만약에 쥐가 사람처럼 확증 편향에 빠져 생각한다면 어떨지 가정해보라고 말합니다. 혹시라도 ‘이 주변에 고양이가 있을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굳힌 쥐가 있다면, 그 쥐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끝내 부정한 대가로 이내 고양이의 한 끼 식사가 돼버리고 말 겁니다. 고양이를 신경 쓰지 않은 쥐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할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연선택을 거쳤다면 그 수가 줄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대단히 심각한 확증 편향에 빠져있으면서도 개체를 보존하고 번성했습니다. 메르시어와 스퍼버는 확증 편향이 일종의 적응 기제로 작용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높은 사교성(hypersociability)과 관련해서 이런 확증 편향이 오히려 필요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추론의 수수께끼”를 쓴 저자 두 명은 확증 편향이란 말보다 “우리 편 편향(myside bias)”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아무 때나 확신에 차 거짓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남의 주장이나 다른 의견에는 아주 꼼꼼하게 약점을 잡아내고 비판할 줄 아는 사람도 자기주장에는 한없이 관대해지고, 자기의 허점, 혹은 결점을 찾을 때만 등잔 밑이 어두워진다는 겁니다.
메르시에는 최근 유럽의 동료 학자들과 실험을 통해 이러한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증명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먼저 몇 가지 간단한 추론 문제를 줍니다. 이어 그들은 자신이 왜 그런 답을 적어냈는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했거나 잘못 생각한 부분을 발견하면 그들은 답을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가자 대부분은 처음 써낸 답을 그대로 고수했습니다. 답을 수정한 사람은 참가자의 15%도 안 됐습니다.
다음 단계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같은 문제를 주고 그들이 써냈던 답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써낸 답도 같이 보여줬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답이 있을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고, 다시 한번 답을 수정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연구진이 쳐놓은 함정이 있었는데, 자신이 써낸 답이라고 주어진 답이 실은 다른 사람이 쓴 답이고, 다른 사람들의 답이라고 보여준 답변 가운데 자신이 쓴 답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답안지의 주인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참가자의 절반가량은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이 답안지를 일부러 슬쩍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머지 참가자는 다른 사람이 써낸 답(사실은 자기가 쓴 답)을 가혹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전체 참가자의 60%가량이 자기도 모른 채 태도를 180도 바꾼 셈이 됐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였죠.
메르시에와 스퍼버는 추론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진화했는지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쪽으로 의견이 치우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추론의 본래 목적은 우리 집단 안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휩쓸리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는 겁니다. 수렵과 채집에 기대어 부족생활을 하던 우리 선조들은 무엇보다 사회적 지위에 신경을 썼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지위란 자기가 목숨 걸고 위험한 사냥에 나서는 사이 누군가는 동굴에서 편하게 유유자적하며 사냥감을 챙겨가기만 하는 상황을 막아주는 데 필요한 일종의 권력이자 하나의 견제 장치였습니다.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 정확한 추론으로 논리를 앞세우는 건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논쟁에서 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나 소방관의 자질을 정확히 추론하는 일은 당연히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유사 과학이나 가짜뉴스, 트위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죠.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대의 선조들이 개발한 추론이라는 기제가 오늘날 우리를 오도하는 건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메르시에와 스퍼버는 이렇게 썼습니다.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해서 자연선택 기제가 아직 작동하지 못한 사례가 아주 많은데, 추론도 그 가운데 하나다.
브라운대학교의 스티븐 슬로만 교수와 콜로라도대학교의 필립 펀바흐 교수도 사회성 혹은 사교성이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라고 생각하는 인지과학자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작동한다는 건 오류에 가까운 각종 편향을 모두 포함한 말입니다. 그들은 함께 쓴 책 “지식의 환상: 왜 우리는 홀로 생각하지 않는가(The Knowledge Illusion: Why We Never Think Alone)”에서 화장실을 예로 들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 사람들은 수세식 화장실을 익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물이 차 있는 자기 재질의 변기에 용변을 보고 나서 손잡이를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면 용변과 함께 물이 내려가고, 그 물은 오물처리용 하수도를 통해 오물 처리시설로 가죠. 이렇게 말하고 나면 정말 뻔한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하나하나 원리를 따져가며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일대학교 연구진이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화장실이나 지퍼, 원통형 자물쇠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정확히 얼마나 알고 있는지 조사해 봤습니다. 이어 학생들은 각각의 장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하나하나 단계별로 세세히 설명해야 했는데, 적잖은 학생들이 막상 그 과정을 설명하려고 해보니, 자기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실제로 화장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작동 원리는 훨씬 복잡합니다.)
(뉴요커)
3부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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