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쓴 에드워드 깁슨은 MIT 언어연구소와 Ted 실험실의 선임연구원이자 인지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인간의 언어가 처리되는 과정과 그 과정이 각 언어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빅데이터 언어와 아마존에 있는 원시 부족의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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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구의 20%, 즉 3억 명 가운데 약 6천만 명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면 장점이 많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하지만 그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데는 분명 어려움도 따릅니다. 모국어 다음으로 자기가 사는 곳의 말을 웬만큼 구사하는 이들은 항상 모국어의 영향을 받은 어색한 억양을 신경 씁니다. 무엇보다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면 덜 똑똑하다고 여겨지거나 남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980년 헨리 키신저가 아리아나 허핑턴에게 했던 이 말은 꽤 놀랍습니다.
본인 억양에 신경 쓰지 마세요. 미국에서 공인(公人)으로 살다 보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쪽에 서는 게 나을 때가 꽤 많거든요.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외교의 대가 키신저는 원래 독일 출신으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닙니다. 그리스 이민자 출신인 기업가이자 저술가 허핑턴은 나중에 우리가 아는 그 허핑턴포스트를 창업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칵테일 파티에서 당신은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힘이 있는 제법 유명한 사람과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일어난 문제에 관심을 보입니다. 보기에 따라 민감한 사안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묻습니다. 당신은 아직 회사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그 정보를 그 자리에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럴 때 일부러 그러든 아니면 자연히 드러나든, 강한 억양에 잘못된 문법을 써가며 말을 하면 상대방은 당신이 특정 견해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인 정보는 아마도 더 캐묻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대개 이것저것 잘 묻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했던 말 가운데 오해가 빚어지는 말이 있다면 나중에 사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둘러대거나 정정하기도 쉽습니다!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이 의심받음으로써 얻는 이득(benefit of the doubt)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우리는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간단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음 두 문장을 들려줬습니다.
(1) The millionaire profited the tax reduction.
(2) The earthquake shattered from the house.
단어를 통해 문장의 뜻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사실 위의 두 문장은 모두 문법이 틀렸거나 비문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미국 표준 발음과 강한 이스라엘 억양 혹은 힌디어 억양으로 문장을 읽어줬습니다.
1번 문장은 아마도 “부자들이 세금 공제를 받아 이익을 챙긴다.”는 뜻일 것입니다. 동사 profited 다음에 전치사 from이 빠져 뜻이 어색한 문장이 됐습니다. 아니면 “세금 공제의 덕을 부자들이 봤다. (The tax reduction profited the millionaire)”는 식으로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줘야 자연스럽게 뜻이 통합니다. 2번 문장도 “지진으로 집이 흔들렸다.”는 뜻일 텐데 이번에는 붙지 말아야 할 전치사 from이 들어가서 문장이 이상해졌습니다. 지진이 집을 부술 수는 있어도 집이 지진을 부술 일은 상식적으로 없으니까요. 아니면 집을 주어로 “The house was shattered from the earthquake.”라고 쓰면 뜻이 잘 통합니다.
각 문장을 들려준 뒤 우리는 참가자들에게 이 문장이 어떻게 들리는지 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강한 외국어 억양으로 읽은 문장을 들은 사람들은 (문법 오류가 있거나 비문임에도) 알아서 그 뜻을 더 잘 헤아렸습니다. 반대로 표준 미국인의 발음으로 문장을 들으면 내용을 알아서 헤아리는 대신 곧이곧대로 해석해 말이 안 된다고 여기는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다시 말해 외국인이 말할 때는 집이 지진을 부쉈다고 말해도 ‘지진이 집을 부쉈다는 걸 거꾸로 말한 거겠지.’라고 참작하지만,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실제로 지진을 집이 부쉈다는 말로 듣고 그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 궁금해한다는 겁니다.
언어 처리에 관한 용어 가운데 잡음 통신로(noisy-channel)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잡음 통신로 모델을 간단히 설명하면 대화를 하는 데 다양한 잡음이 끼어들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가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잘못 말했을 수도 있고 듣는 사람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며, 말 그대로 주변 소음 때문에 대화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 중에 항상 지금 상대방이 방금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가정하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밑바탕에는 상대방이 아마 이런 말을 하려고 했으리라는 더 기본적인 가정도 깔려 있습니다.
이번 실험 결과를 해석할 때도 잡음 통신로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데, 잡음 통신로 모델의 핵심은 우리가 대화 중에 하는 많은 가정이 때때로 터무니없이 틀릴 때도 있다는 겁니다. 2011년 1월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에서 홍수가 났습니다. <더 모닝 불레틴>이라는 신문사 기자가 현장을 찾아 피해를 본 양돈 농가 주인을 인터뷰해 기사를 실었습니다.
“불어난 물에 지난 주말부터 도슨강으로 3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떠내려갔다.”
기사는 오보로 판명됐습니다. 양돈 농가 주인은 3만 마리(30 thousand pigs)가 아니라 암퇘지와 돼지 30여 마리(30 sows and pigs)라고 말했는데, 기자는 무의식중에 한 가정에 기대어 당연히 ’30’ 뒤에 한 말은 ‘thousand’라고 들은 겁니다. 굳이 암퇘지와 돼지들이라고 표현하면서까지 ‘sow’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기자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기자는 방금 들은 어딘가 낯선 말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언어에 관한 지식과 통계를 바탕으로 처리하고 분석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30 다음에 어떤 단어가 오는 게 자연스러울지 감각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3만 마리가 떠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가로 이것저것 물었다면 오보를 낼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3만 마리면 온 강이 떠내려가는 돼지로 가득 찼을 텐데 혹시 사진이라도 찍어두신 게 있는지 물어봤을 테고, 그럼 자연히 3만 마리가 아니라 30마리였다고 숫자가 정정됐을 테니까요.
잡음 통신로 모델을 적용해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한 실수를 곧잘 잡음으로 여깁니다. 즉, 방금 저 사람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했지만, 곧이 곧대로 그 의미가 아니라 토씨 몇 개만 바꾸면 이런 말이 되는데 아마 그 뜻이었으리라고 헤아려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하는 말에는 잡음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그런 헤아림 없이 곧이곧대로 듣게 됩니다. 키신저가 허핑턴에게 건넨 ‘의심받음으로써 얻는 이득’이라는 말도 결국 듣는 사람이 헤아려 들어줄 테니 억양을 감추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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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화자의 억양이 어색할 수록 듣는 이가 의미를 해석할 때 화용론적인 요소를 배제한다는 연구도 본 적이 있어요. 화자의 억양이 어색한 경우 문법이 틀렸다면 잘 헤아려서 해석하고, 문법이 맞다면 조금 더 literal 하게 해석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