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딱지를 끊고 벌금을 물리는 경찰의 관행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지방 정부나 지방 의회에 흑인을 더 많이 진출시키면 된다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멤피스 대학교의 마이클 샌시스 교수와 밴더빌트 대학교의 유혜영 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9천여 개 도시에서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우선 흑인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각종 범칙금을 물리거나 약식재판 비용 등을 거둬 시의 재원을 충당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범칙금이나 재판 비용을 조금이라도 걷는 모든 도시에서 시민들이 내는 비용은 평균 1인당 8달러였지만, 이 액수는 흑인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에서 1인당 20달러까지 높아졌습니다. 범죄율이나 도시의 규모 같은 요인들을 모두 통제한 뒤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이어 시의회 혹은 지방 의회에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 이 차이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확인했습니다. 모든 도시의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은 탓에 살펴본 도시의 수는 3,700여 개로 줄었지만, 시의회에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인종과 범칙금 사이의 관계가 50%나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많은 도시가 흑인들에게 유난히 많은 벌금과 범칙금을 물려 재원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인이 시의회에 대표자로 선출되면 인종과 범칙금 사이의 부당한 관계는 눈에 띄게 개선됩니다. 물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개선이 이뤄집니다.”
샌시스 교수의 말입니다.
이번 연구가 인과관계까지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연구진도 논문 한 편을 바탕으로 이 사안에 관한 일반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습니다. 연구진이 데이터에 나타난 (범칙금과 인종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통제했다지만, 여전히 이들이 놓친 어떤 다른 원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다 설명하지 못한 부분은 향후 연구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의 결론은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자주 접한 사건들, 특히 2014년 8월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무고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번져나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고민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수가 부족해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도시와 지방정부들이 특히 저소득층 유색인종이 모여 사는 동네에 경찰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범칙금과 과태료를 걷는 손쉬운 방법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꾸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연구는 상황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즉, 지방정부에 더 많은 흑인 대표를 진출시키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확히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문제가 개선되는지는 연구진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입니다. 다만 흑인 유권자가 겪는 문제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신경을 많이 쓸 흑인 정치인은 흑인들이 사는 지역에 과도한 경찰 단속이 집중되면 흑인 유권자들이 쏟아낼 불만이나 민원에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경찰이 과도한 단속이나 범칙금을 함부로 부과하지 못하도록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리라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의회를 모두 흑인으로만 채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연구진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샌시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영향력의 정도라는 것이 있겠죠. 우리는 시의회가 경찰 조직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식의 무리한 가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을 표적 삼아 쥐어 짜내 지방정부 재원을 충당하는 건 오래전부터 문제가 됐습니다. 특히 퍼거슨처럼 흑인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이는 대표적인 골칫거리였습니다.
퍼거슨에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가 일어난 뒤 미국 법무부는 관련 보고서에 이 문제를 적시했습니다. 2015년 3월 법무부 보고서를 보면 시청 관리직부터 지방 검찰, 경찰을 포함해 사실상 퍼거슨 시 사법당국 전체가 범칙금과 재판비용 등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시 규정을 위반했을 때 물리는 범칙금을 최대한 높이고자 경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위반 사유를 일일이 다 적으라는 지침이 전달됐습니다.
일선 경찰관이나 보안관들도 의도적으로 흑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단속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퍼거슨 시의 흑인 인구는 67%지만, 사법 기관이 검문을 한 대상의 85%가 흑인이었고, 규정을 어겨 범칙금 딱지를 떼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 가운데 흑인의 비율은 90%로 인구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역시 이 숫자만으로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지만, 경찰이 정치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취약 계층을 더 엄격하게 다루고 단속을 집중했다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몇몇 경찰은 실제로 이런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뉴욕시 경찰인 아딜 폴란코(Adhyl Polanco)는 WNBC에 지난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의 직무 수행 평가를 그저 업무량만으로 하게 되면 당연히 경찰들은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로, 흑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호화 요트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동네로 갑니다. (거기서는 실적을 올리기 쉬우니까요)”
샌시스 교수도 폴란코 경관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이러한 경찰의 관행이 어쩌면 이번 연구의 발견을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시 당국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집단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흑인을 대표자로 선출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흑인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흑인을 시의원으로 뽑으면, 흑인 유권자들은 시의원을 통해 정치적인 의견을 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찰의 과도하고 불공평한 단속에 대한 조직적인 이의를 제기하기도 수월해질 겁니다.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경찰의 관행이 문제인 건 단지 특정 인종을 향한 불공평한 처사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경찰이 범칙금 딱지 떼고 과태료 물리러 다니느라 원래 해야 할 일, 즉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 잡는 일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법 냉소주의(legal cynicism)”라는 것이 사실 간단한 개념입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정부나 정부의 법 집행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 정부가 법을 집행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 집단이 많은 공동체에서 상대적으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주로 근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즉,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유색 인종은 경찰을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유색 인종은 사법 당국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때로는 진압 대상이던 적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흑인이나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서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폭력을 비롯한 자기들만의 수단으로 알아서 이를 해결하곤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2016년, 하버드대학교의 매튜 데스몬드와 예일대학교의 앤드류 파파크리스토스, 그리고 옥스포드대학교의 데이비드 커크 등 사회학자 3명은 경찰의 과잉 대응과 폭력이 뉴스에 잇따라 보도된 뒤 밀워키 시의 911 전화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2004년 비번이던 (백인) 경찰들이 (흑인) 시민 프랭크 주드를 무차별 구타한 사건이 벌어진 이듬해 911로 걸려온 전화는 전체의 17%나 줄어들었습니다. 22,200건이나 전화가 덜 걸려왔는데,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특히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 효과는 1년에 그치지 않고 폭력에 가담했던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은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에 관한 뉴스가 알려질 때마다 911 전화 자체가 줄어드는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911에 전화는 오지 않아도 그 지역에서 범죄는 여전히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연구진은 911 전화가 주는 동시에 살인 건수는 늘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논문에 “주드가 구타당한 이듬해 봄과 여름은 우리가 살펴본 7년 가운데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난 기간이었다.”라고 썼습니다.
사법당국을 신뢰하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어쩌면 범죄가 일어나면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연구진이 이 관계를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는 곧 민간인이 범죄와 폭력을 막아주는 임무를 띤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서 강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폭력적 수단도 포함되기도 하죠.
해당 논문의 결론 부분에는 이런 분석이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발견한 중요한 함의는 경찰의 폭력이 대중에 알려지면 사법 당국의 정당성이 훼손되거나 평판이 나빠지는 것 외에도 911에 걸려오는 전화가 줄어들기 때문에 범법 행위를 적발하고 억제하기 힘들어지고, 정의를 세우는 일도 어려워지며, 궁극적으로 도시 전체, 특히 흑인 공동체의 치안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흑인 공동체에 차별적으로 범칙금을 많이 걷는 관습이 불러올 효과도 비슷합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경찰이 당신을 수십 번씩 불러세우고 딱지를 끊으며 위협하면 당신은 경찰이 사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 겁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경찰에 의지할 가능성도 거의 없겠죠. 바로 이 때문에 경찰이 경찰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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