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육상 선수 나이로는 전성기를 한참 지난 나이인 32세의 나이에 자밀라 크라토케빌로바(Jarmila Kratochvilova)는 800m를 1분 53초 28에 주파합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이 기록은 실외 육상 역사상 최장수 세계신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이 기록은 아마 가장 의심스러운 기록이기도 할 겁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현재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보헤미아 지방에서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 66세인 그녀는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30년 전에 현역에서 은퇴한 크라토케빌로바의 기록이 어쩌면 육상 역사에서 지워질지도 모르게 됐습니다. 최종 결과는 잇따른 도핑 파문으로 바닥에 떨어진 육상 전반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육상계의 의지와 결단에 달렸습니다.
유럽육상연맹은 지난 5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2005년 이전에 작성된 모든 기록을 비공인기록으로 바꾸자는 엄청난 제안을 했습니다. 2005년은 선수들의 혈액과 소변 샘플을 특정 기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며 과거보다 훨씬 엄격한 도핑 검사를 시작한 해입니다. 1988년 그리피스 조이너가 여자 육상 100m(10초 49)와 200m(21초 34)에서 세운 기록을 비롯해 총 45개 세계신기록이 이 제안에 따라 사실상 무효가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노르웨이 국적의 스벤 아르네 한센 유럽육상연맹 회장은 이와 같은 “급진적인”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언급했습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건 육상이란 스포츠가 가진 가장 위대한 장점이자 매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록 자체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현재 유럽육상연맹은 강도 높은 약물 검사를 통과한 선수의 기록만 인정해야 한다는 제안서의 세부 사항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유럽연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곧 결정을 내릴 계획입니다.
영국 국적의 세바스찬 코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해당 제안은 적어도 방향만큼은 옳다.”며 “육상계 전체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크라토케빌로바를 포함한 세계신기록 보유자들은 마치 연맹이 과거에는 도핑이 만연했음을 인정하고, 그 시절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들도 당연히 금지약물을 복용했을 거라고 사실상의 결론을 내린 데 분노를 표하고 있습니다. 육상 전설들이 분개하는 데는 일리가 있습니다. 특히 2005년 이전에 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누구나 다 금지약물의 힘을 빌렸다는 증거는 없으며, 반대로 2005년 이후에 나온 기록이라고 반드시 깨끗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체코 파르두비체 근처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크라토케빌로바는 이달 통역을 통해 과거의 기록들을 인위적으로 갈아엎는 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먹어선 안 되는 걸 한 번도 복용한 적이 없는걸요.”
그녀의 사례는 너무나 복잡해서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 땀으로 이뤄낸 세계기록 보유자를 가려내야 할 때마다 최대 난제로 꼽힐 만합니다.
이는 특히 스포츠를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삼는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인 이른바 철의 장막 안에서 1980년대에 현역 시절을 보낸 육상 선수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해당되는 사안입니다.
당시 그 나라들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사실상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비호 아래 금지약물을 복용했습니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발하고 나섰다가는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국가대표에서도 제명돼 훈련도 하지 못하게 될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는 건 국위 선양은 물론이고 아파트나 자동차 등을 부상으로 받을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였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의 눈에 띄는 근육질 몸매와 폭발적인 스피드가 부단한 훈련을 통해 얻은 능력인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근육 증강제의 도움을 받은 결과인지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됐습니다. 그녀는 항상 단 한 번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신체 조건과 육상 선수로서 거둔 성과는 어려서부터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자란 환경에 엄청난 웨이트 트레이닝과 꾸준한 비타민 섭취가 더해진 결과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특별 관리” 프로그램에는 1984년과 1987년 두 차례 크라토케빌로바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특별 관리”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주요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투여한 계획을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집중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관리해야 하는 육상 선수 명단을 추려 놓은 문서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서는 국제 대회에서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될 위험을 무릅쓰고도 특정 선수들에게 약물을 투여한 기록과 검사 결과를 상세히 적어놓았습니다. 이 문서에는 크라토케빌로바가 도핑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반도핑 기구 관계자는 해당 문서들을 보면 크라토케빌로바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는지에 관해 많은 의혹이 들지만, 반론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덕성을 의심할 수야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아무 조처도 할 수 없어요.”
소위 벨벳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직후인 1990년, 체코 반도핑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야로슬라프 네콜라는 말했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공식적으로 두 나라로 분리된 건 1993년의 일입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해당 문서들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골추프 제니코프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그곳에 삽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의 농장에서 사탕무와 감자를 손으로 따는 일을 도왔습니다. 1983년 <육상 뉴스>가 그녀를 올해의 선수로 뽑았을 때, 한 체코 기자는 그녀의 성장기를 다룬 관련 기사에서 “크라토케빌로바는 12살 때 이미 무거운 건초 더미를 창고 윗칸에 던져 올리는 등 웬만한 성인 농부 못지않게 힘이 장사였다.”라고 썼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회계원으로도 일하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준비했는데, 출근하기 전 새벽 4시에 가로등 불빛 아래서 혼자 훈련하기도 했습니다. 전업 선수도 아니었던 1980년 올림픽에서 크라토케빌로바는 조국에 400m 은메달을 선사합니다.
이후 그녀는 석탄재를 깔아 다진 제대로 된 훈련 트랙과 숲길을 병행하며 본격적으로 육상에 매진합니다. 그녀의 엄청난 의지와 강인함은 이미 육상계에서 전설로 통합니다. 있는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든, 아니면 일종의 경외감이나 경계심을 담아 조금 각색했든 크라토케빌로바의 이야기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훈련 트랙이 눈으로 덮인 겨울에는 스파이크가 달린 신발을 신고 꽁꽁 언 호수 위를 달렸습니다. 모래가 가득 찬 타이어를 허리에 매단 채 200m를 질주하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왼쪽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나서는 물속에서 회복 훈련에 매진했고, 무거운 훈련용 조끼를 입고 폐활량을 늘리려고 방독면까지 쓰고 독하게 훈련했습니다.
“사실 방독면은 별 도움이 안 됐어요.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크라토케빌로바는 말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와 코치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힘이 장사인데다 좀처럼 지치지 않을 만큼 체력도 엄청나서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역기를 들었다 놓는 훈련을 하면 총 25톤을 들었습니다. 체코 신문은 이를 16톤이라고 소개했는데, 둘 중 어느 숫자가 사실이든 실로 괴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의 코치였던 미로슬라프 크박은 오전과 오후 훈련 사이 낮잠을 재우려면 크라토케빌로바를 적이 구슬려야만 했다고 회상합니다.
“낮잠도 안 자고 계속 훈련하겠다고 고집을 피워대서 그녀를 방에 가둬놓고 재워야 했어요.”
크라토케빌로바도 그 사실을 기억합니다.
“휴대품 보관소 같은 방이었죠.”
그러나 그녀가 세운 1983년의 눈부신 기록들은 과거에 세운 기록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유럽 육상 관계자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1983년 크라토케빌로바는 800m뿐 아니라 400m에서도 47초 99로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은 다른 선수가 갱신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자신의 기록이 무효로 처리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기록을 무더기로 취소하려는 육상 연맹의 계획은 법적 공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미국의 마이크 파월은 자신이 1991년 세운 멀리뛰기 신기록 8.95m를 연맹이 몰수하듯 취소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자 마라톤 세계신기록(2시간 15분 25초, 2003년 런던마라톤) 보유자인 영국의 파울라 래드클리프는 유럽 연맹의 제안에 대해 “(연맹이) 정말 의심스러운 기록 몇 개를 지우려고 너무나 가혹한 방식을 꺼내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래드클리프는 성명을 내고 “법적으로 필요한 검사와 조사를 해서 부정하게 작성된 기록임이 밝혀지면 그 기록만 삭제하고 선수와 관련자를 처벌하면 될 일”이라며, (특정 시점을 정해놓고 그 전의) 기록을 모두 삭제하겠다는 발상은 비겁하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동구권 출신 선수들에게는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이 선수 개개인에게 윤리적으로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까요? 신뢰할 수 없는 체육 협회에 속해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이 이들이 세운 기록을 삭제할 만한 정당한 근거가 될까요? 아니면 협회 관계자들이 이제라도 덮어놓고 통째로 의심하는 대신 하나하나 사례별로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찾아가며 도핑에 선수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밝혀내야 할까요?
오랫동안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 그리고 세계 반도핑기구에서 반도핑 전문가로 일하다 은퇴한 스웨덴 국적의 의사 다르네 융크비스트는 “(기록을) 폐지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다시 시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나 의심을 가질 순 있죠. 게다가 그중에는 아주 합리적인, 뚜렷한 의심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스포츠 종목을 이끄는 지도부 차원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증거를 갖고 해야합니다. 증거 없이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가혹한 평가
많은 사람이 1980년대 현역 선수로 뛸 때의 크라토케빌로바 하면 근육질 몸매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재 크라토케빌로바의 몸에는 그 많던 근육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녀는 우락부락한 챔피언보다는 탄탄한 몸매의 달리기 애호가처럼 보입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1983년 7월 26일, 뮌헨에서 열린 대회에서 기존 1분 53초 43의 기록을 0.15초 앞당기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지난 34년 동안 크라토케빌로바의 기록에 1초 이하로 뒤진 시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는 단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800m 금메달리스트의 기록도 크라토케빌로바의 기록에 2초나 못 미쳤습니다.
1983년 8월 10일,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크라토케빌로바는 400m를 47초 99에 주파해 또 한 번 세계신기록을 세웁니다. 이 기록은 경신됐지만, 여전히 역대 두 번째 빠른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영국 중계진은 그녀의 경이로운 힘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의 몸을 한 번 보시죠. 정말 육상을 위해 태어난 듯한 신체조건을 갖췄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의 외모에 선을 넘은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등장했습니다.
“체코 육상 스타는 정말 여자가 맞을까?”
헬싱키발 기사의 제목을 위와 같이 자극적으로 뽑은 시카고 선타임스는 기사에는 유명 농구 선수 줄리어스 어빙의 별명이었던 “Doctor J”에 자밀라 크라토케빌로바를 제멋대로 빗대어 “Doctored J”라고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옮긴이: “Doctored J”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라는 의미.) 시카고 선타임스는 여러 운동선수의 마사지와 재활을 도운 미국 마사지사 르로이 페리의 인터뷰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채웠습니다.
“제가 아는 한 남성호르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저런 힘을 발휘하는 여자 운동선수는 나올 수가 없어요.”
좀 더 동정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와 함께 800m 시합을 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듀크대학교 법학대학 교수인 도리안 램벨렛 콜만은 최근 크라토케빌로바의 체격과 신체조건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도 일부러 자기 몸에 그런 일을 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항상 그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었어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녀는 아마 장기판의 졸과도 같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 같았어요.”
이제 크라토케빌로바는 오히려 도핑 의혹에 화를 내거나 항변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초탈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젠 그런 말을 하도 들어서 이골이 났어요. 더는 신경쓰지도 않고요.”
뒷마당의 정원을 가꾸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피부가 적당히 그을린 그녀는 여전히 현역 때처럼 가볍고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설명 대로라면 “점점 퇴화하고 있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왼쪽 다리를 조금 저는 걸 빼면 말이죠.
왼쪽 다리 말고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밭에서 일하며 다부지게 다져진 몸이라 엉덩이도, 어깨도, 무릎도 고된 육상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에요.”
인터뷰는 그녀가 훈련하고 지금은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곳에서 30분가량 진행됐는데,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이내 여유를 되찾고는 10대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해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애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니까요. 젊은 나이에 사회주의를 십분 활용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를 향한 체코 내의 평가는 서구권의 평가와 사뭇 달랐습니다. 체코에서 그녀는 안타까운, 더 나아가 불행한 존재로 그려지곤 했습니다.
카슬라프에 있는 육상 트랙 한 모퉁이에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작은 기념비가 있습니다. 체코 육상연맹은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그녀의 기록을 취소하더라도 체코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녀가 동구권의 운동선수는 정치적 체제 경쟁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시절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크라토케빌로바가 말그대로 평생을 바쳐 헌신한 스포츠가 그녀를 지켜주지 않고 배신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합니다.
체코 반도핑 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을 지낸 네콜라와 동료는 올해 말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정부가 주도한 조직적인 도핑 실태를 고발한 보고서를 펴낼 계획입니다. 보고서의 임시 제목은 “1980년대 우리 스포츠에 관한 진실”입니다.
네콜라는 벨벳혁명 이후 정부 관리들이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스포츠에 관련된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는 일을 꺼렸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적으로 존경 받는 선수의 명성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고,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경우 이 또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정부의 잘못이 낱낱이 기록된 문서가 무더기로 공개된 동독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도핑 관련 기록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습니다. 처음부터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다가 엉뚱한 데 보관됐거나 누군가 고의로 파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네콜라는 말했습니다.
체코 출신의 의사 얀 흐니즈딜은 2000년 펴낸 책에서 정부가 주도한 조직적인 도핑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이어 2006년, 체코 신문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는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기록이 담긴 문서를 특종 보도합니다.
네콜라가 주관한 조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습니다. 네콜라는 1984년부터 이른바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육상 선수 44명의 목록을 확보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이전까지 종목별로 운영되던 특별 관리 프로그램을 1985년 일원화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의 이름은 목록 제일 첫 줄에 등장합니다.
1987년 9월 7일 체코슬로바키아 선수들에게 자체적으로 금지약물을 투여한 사실을 기록한 또 다른 문서도 발견됐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체코 정부는 금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국제 대회에 출전해도 도핑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습니다.
2006년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가 보도한 문서에는 크라토케빌로바가 도핑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네콜라는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도핑 프로그램에 협조하겠다며 크라토케빌로바가 직접 서명한 문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날짜별로 얼마나 약물을 투여했는지에 관한 기록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그녀에 관한 증거는 구체적이지 않아요. 여기저기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을 뿐이죠.”
네콜라는 말했습니다. “특별 관리”가 무엇인지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크라토케빌로바는 전에 했던 답을 되풀이했습니다. “누구도 제게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어요. 누가 저한테 와서 ‘이걸 먹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녀는 2015년 체코 신문인 프라보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더라도 자신은 당연히 거부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와 그녀를 20년간 지도한 크박 코치는 오랫동안 크라토케빌로바의 성공 비결로 불굴의 의지, 엄청난 훈련량과 함께 다량의 비타민 B12를 꼽았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는 경구로 복용하거나 비타민 주사를 맞기도 했는데, 비타민 B12가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됐고, 물론 이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덧붙었습니다.
“우리는 도핑이 아니라 혁신적인 새 길을 닦은 거죠.”
올해 85세인 크박 코치는 체코의 산간마을 호르니 리프카 외곽에 있는 자택에서 별도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 반도핑기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몬트리올의 한 연구소 소장인 크리스티안 아요테 박사는 1980년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선수들이 흔히 하던 대표적인 변명이 비타민 B12였다고 말합니다.
비타민 B12가 동화 작용이나 근육 강화를 통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도핑기구 관계자들은 말했습니다. 그랬다면 운동 선수가 비타민 B12를 복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거라는 설명이죠.
“연막 작전인 거죠.”
아요테 박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예전 기록,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크라토케빌로바는 인격 모독적인 예전의 성별 검사는 물론이고 도핑 테스트에서도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핑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라고 다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쌓은 모든 경력을 송두리째 잃게 된 랜스 암스트롱의 사례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국 러시아가 비밀리에 감행한 조직적인 도핑 사례만 보더라도 도핑 테스트 통과만으로 선수의 기록에 완전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가 선수로 뛰던 시절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스테로이드를 비롯해 온갖 약물이 횡행하던 약물의 춘추전국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있었다지만, 집행 기관의 의지도 없었고, 검사는 빠져나갈 구멍 투성이었습니다. 미국인을 포함한 관리들은 종목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두려워 당시 톱스타의 약물 복용 사실을 적발하기 부담스러웠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캐나다 국적의 단거리 선수 벤 존슨이 1988년 서울올림픽 100m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 나와 메달을 박탈당한 사건을 계기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근육증강제는 훈련 효과를 높이거나 부상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근육증강제를 복용한다고 일반인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대신 타고난 재능에 더해 꾸준한 훈련을 통해 최고 수준에 다다른 운동선수라면 근육증강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효과로 큰 덕을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100분의 1초, 몇 밀리미터 차이로 기록이 갈리고 승패가 결정되는 육상 같은 종목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기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어떤 사례는 잘잘못이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 판단이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1985년 구 동독의 마리타 코크는 400m를 47초 60에 주파해 크라토케빌로바의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의 800m 기록과 마찬가지로 400m 기록도 당분간 깨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나온 결과였습니다.
코크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확인된 문서에는 코크가 스테로이드인 오랄 튜리나볼을 언제 얼마나 복용했는지가 기록돼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경기력 향상 약물을 연구해 온 텍사스대학교의 반도핑 전문가 존 호버만 교수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금지약물이 횡행하던 시대임을 가리키는 명백한 정황 증거에 검사 결과들까지 충분한데도 당시 기록을 그대로 인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코크와 크라토케빌로바의 기록도 같은 범주에 넣었습니다.
“크라토케빌로바가 비타민을 복용한 덕을 봤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호버만은 말했습니다.
체코의 반도핑 전문가 네콜라는 과거 기록을 무효화하더라도 반드시 별도로 몇 가지를 언급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주도한 도핑 프로그램에 사실상 강제로 참여해야 했던 선수들도 엄연한 피해자라는 점이 명시돼야 한다는 겁니다. 냉전 시대 정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스포츠를 업으로 삼은 당시 선수들이 최고 수준의 지원을 받으며 훈련을 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면 국가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실상 아무런 선택지도 없는 실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는 겁니다.
“기록을 삭제하고 나면 대중들의 눈에는 선수들도 자동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비춰질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체제 전반에 걸쳐 있었어요. 저는 선수 개개인에 잘못을 묻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복용하도록 사실상 강요했던 체제 자체를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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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와 아사다가 편하게 피겨스케이팅한거랑 이거랑 비슷한거겠죠. 피겨스케이팅계도 먹고 살려면 한국이나 일본같이 부유하고 인구도 어느정도 되는 나라가 필요하니 그런 선수를 띄웠고 육상계도 이젠 거지가 되버린 동구권선수들을 밟아야 서구구미권 선수들로 먹고 살겠죠.
어디가 비슷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어디가 비슷한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