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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무슬림들이 한 목소리로 테러를 규탄하지 않는 이유

유럽 내 이슬람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안개 속입니다. 유럽의 주류 정치인들이 꿈꾸는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준법 정신이 투철하고 선량한 다수 무슬림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테러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다음, 그렇게 다져진 사회적 합의 위에서 새로운 형태의 테러에 맞서 싸울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독일 쾰른에서는 “우리의 이름으로 테러하지 말라(not in our name)”라는 슬로건 하에 반테러 집회가 열렸습니다. 독일 내 주요 무슬림 단체들은 물론 좌우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은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최소 만명 규모를 기대했던 주최측의 희망과는 달리, 현장에 나타난 사람은 3500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터키 정부와 연을 갖고 있는 독일 내 가장 영향력 높은 무슬림 단체(DITIB)가 이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흥행 실패의 주요 원인인 것은 사실입니다. 집회를 통해 최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테러의 책임이 무슬림들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건 위험하다는게 DITIB의 판단이었죠. 실제로 이런 단체 행동이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무슬림들도 많습니다. 라마단 금식 기간에 행진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죠.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6월 3일 런던브리지에서 일어난 공격 이후 무슬림 영국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졌습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경찰 업무나 안보 이슈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라고 선언한 것이죠. 표면적으로 드러난 무슬림 영국인들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일례로 수백 명의 이맘들이 테러리스트를 위한 공개 장례식을 치러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나섰죠. 하지만 장례식 거부 서명에 참여한 이맘들의 선언문을 읽어보면, 이들의 인식이 메이 총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언문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탄압과 박해에 시달리는 무슬림들의 존재가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메이 총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강경 이슬람교의 보수적인 입장,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무슬림 커뮤니티의 문제점 등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상대는 무슬림에 대한 박해와 이에 기여하는 영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도 주류 정치와 무슬림 커뮤니티 간 대화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간 듯 합니다. 프랑스 내 주요 무슬림 단체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무슬림 단체 연합(UOIF, Unioin of Islamic Organization of France)는 최근 명칭을 “프랑스의 무슬림(Muslims of France)”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2012년 대선 당시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를 지지했죠. 올해 대선에서 극우정당의 후보 마린 르펜은 UOIF와 에마뉘엘 마크롱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가 마크롱 후보의 당선을 막지는 못했지만, 마크롱은 선거 기간 내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무슬림 단체들은 투표를 독려했을 뿐, 이전 대선 떄와 달리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작은 유럽 국가에서는 이른바 “책임있는 무슬림 정치”의 등장이 사회적인 요인에 발목잡힌 상태입니다. 이들 국가에 거주하는 무슬림 이주민 대부분이 모로코나 터키에서 온 극빈층으로, 사회 운동이나 정치 토론에 참여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극단주의 단체들이죠.

물론 여러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세속주의 주류 정치인들의 희망과는 달리 무슬림 커뮤니티는 매우 크고,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도 여러 갈등이 존재합니다. 각계의 무슬림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서서 한 목소리로 테러 반대를 외치는 장면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실제로 테러를 규탄하고 있으며, 이들은 테러가 일어나면 직, 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갈등이 존재하는 정치 지형에 개입해 큰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일입니다. 유럽의 무슬림 정치에서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요.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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