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언어 능력을 가진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를 포함한 대부분의 새들은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류의 연패 기록은 2008년, 괴테 대학의 헬무트 프라이어가 자기 목의 노란 점을 지우려는 골디와 게르티라는 이름의 두 유럽 까치의 행동을 발견함으로써 깨졌습니다. 이는 포유류를 제외한 동물들 중 거울 실험을 통과한 동물을 발견한 최초의 실험이며, 그 동물이 까치라는 점은 매우 그럴듯했습니다. 까치는 어치, 까마귀와 함께 까마귀속(corvid)에 속합니다. 이들은 “깃털달린 유인원”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중에 거울 실험을 통과하는 새가 있다면, 까마귀속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까마귀속 새들이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서양갈까마귀(jackdaws)가 실패했고, 큰부리까마귀(jungle crows)역시 실패했습니다. 놀랍게도, 도구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까마귀 중의 까마귀라 불리는 뉴칼레도니아 까마귀 역시 거울 실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숨은 음식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을 때 날개를 펼치거나, 공격하거나, 거울 뒤를 찾는 등 다른 새를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지식인으로 행세하지만 거울 실험에 실패하는 동물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일 것입니다.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거울 실험을 통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가정이 서구의 국가에서만 통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타냐 브로쉬가 케냐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 82명의 아이 중 단 두 명만이 거울 실험을 통과했습니다. 물론 케냐에서 거울은 미국처럼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울은 존재하며 사람들은 이를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 어떤 아이들은 여섯 살이나 먹었음에도 – 그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고 이마에 묻은 무언가를 떼어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브로쉬와 다른 이들은 피지, 페루, 잠비아 등의 다른 비서구권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명백하게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가진 이 지역의 사람들이 거울 실험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거울 실험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브로쉬는 케나의 아이들은 자기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직접 행동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장려받는 서구의 아이들과 달리, 시골 오지의 아이들은 주로 관찰과 흉내를 통해 배웁니다. 자신의 얼굴에 있는 표지를 보고 이들은 “어쩌면 그 표지가 자기 몰래 어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남겼다고 가정하고 이를 닦아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다른 동물들에게도 비슷한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고릴라들이 거울 실험에 실패한 것은, 고릴라 사회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공격성을 드러내는 신호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개의 실패는, 개가 시력보다는 후각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시아 코끼리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실패했지만, 조슈아 플로트닉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것처럼 코끼리는 거대한 동물이며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를 떼내기 보다는 진흙 같은 것을 자신의 몸에 붙이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거울 속 표지를 보고도 그 표지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그 표지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거나, 아니면 그저 무관심 했을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침팬지와 오랑우탄처럼 손을 사용할 수 있고, 호기심이 많고, 시각 중심적이며, 몸을 단정하게 하는데 관심이 많은 동물들이 마침 서구의 과학자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몸의 표지에 반응했다는 것 뿐입니다. 어쩌면 이 실험은 테스트를 받는 동물보다, 이런 테스트를 만든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실험일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의 결과가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결론밖에 없다는 점도, 이 사실이 마치 “자기에 대한 자각이 전적으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두 가지 상태 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문제가 된다고 데비 켈리는 썼습니다. 어떤 종은 어떤 조건에서만 통과하기도 합니다. 작은 흑백무늬의 클라크잣까마귀는 좋은 예입니다. 야생에서 이 새는 잣을 땅에 묻어 숨기지만, 다른 잣까마귀가 지켜본다는 것을 알 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켈리가 잣까마귀를 깨끗한 거울 앞에 두었을때에도 이들은 거울 뒤 자신을 다른 잣까마귀이며 잠재적인 도둑이라 여기고 잣을 땅에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켈리가 깨끗한 거울이 아니라 표면이 울퉁불퉁해 흐릿하게 보이는 거울을 두자 이들은 자유롭게 잣을 묻었습니다. 켈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흐릿한 거울을 두고 몸에 표지를 두는 기존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잣까마귀는 깨끗한 거울에서는 이 실험을 실패했지만, 흐릿한 거울에서는 자신을 알아보았습니다.
켈리는 잣까마귀가 흐릿한 거울을 볼때에는 움직임이나 그림자를 통해 그 모습이 자신임을 알아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깨끗한 거울은 일종의 과도한 감각 신호로 작용해, 자신에게 익숙치 않은 감각이 쏟아지는 효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깨끗한 거울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잣까마귀가 바깥 세상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표면은 호수나 개울, 웅덩이처럼 흐릿한 거울일 것입니다.
이제 처음 독수리로 돌아가봅시다.
독수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프란스 드 발의 말을 변용하자면, 우리는 다른 동물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을만큼 영리하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는 자기자각(self-awareness)과 자아인식(self-recognition)을 확인할 수 있는 더 나은 실험을 고안해야 합니다. 그 독수리는 어쩌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경쟁자를 바라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동료에게, 아마 그 독수리는 사냥감을 찾고 있을 것이라 말했고, 그 사실 역시 지금 현실에 대한 어떤 비유는 아닙니다.
물론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이 말 역시 거울 실험 논쟁에 대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거울 실험은 동물이 거울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에 관한 것이지만, 또한 그 동물을 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애틀랜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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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