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뉴튼 베이트만 공립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구글과 함께하는 수업(Google drill)”은 인기가 높습니다.
뉴튼 베이트만 학교는 지난해 사회 과목 수업에 구글 교육 프로그램이 깔린 노트북 컴퓨터를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과제를 미리 입력해 둔 구글 교실(Google Classroom) 앱을 열고 구글 문서(Google Docs)를 기반으로 만든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작문을 지도합니다.
고대 아테네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 그리고 교육 환경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 구글 문서에 글을 쓴 마수마 칸(11) 양은 컴퓨터 화면을 보다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나무로 된 판자에 필기하고 글을 썼죠. 지금 우리는 모든 걸 구글 문서에서 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학군인 시카고 공립 학교(Chicago Public Schools)에 속한 학생은 총 38만 1천 명. 그런 시카고 공립 학교가 최근 미국 교육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실험에 나섰습니다. 바로 교육 일선에 최신 기술을 접목해 혁신을 꾀하는 ‘교실의 구글화’를 선포한 겁니다.
불과 지난 5년 사이 구글은 교실에 필요한 자재와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교육 회사들의 작동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구글은 선생님과 교직원들에게 직접 자사 프로그램과 제품을 활용한 구글 교실의 장점을 알렸습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누구라도 원하면 구글 교실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군의 정책을 총괄하는 장학사 등 이른바 윗선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일선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또 교육용 노트북 컴퓨터 크롬북스(Chromebooks)를 싼값에 보급하고 교육용 앱을 모두 무료로 다운받아 쓸 수 있게 하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경쟁 업체를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쥐메일과 구글 문서 등 구글의 대표적인 앱,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초등학생, 중학생 수는 3천만 명에 이릅니다. 전체 학생의 절반이 넘는 숫자입니다. 처음에는 쓰임이 많지 않던 크롬북스도 어느덧 학교에서 구매하는 모바일 기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미국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교육 인프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학군인 뉴욕시의 교육국장을 지낸 할 프라이드랜더는 이제 구글 없는 학교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2012년 가을쯤만 해도 구글을 접목한 교실이라고 하면 취지는 좋지만, 여전히 미래의 일이라고만 여겨졌죠. 그런데 구글은 이제 미국 교육의 근간을 이루게 됐어요. 학생들이 필요한 정보를 찾고 과제를 작성해 제출하는 모든 과정에 구글이 함께 있으니까요.”
구글은 동시에 공교육의 바탕에 깔린 철학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즉, 예전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수학 공식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 교육은 학생들이 협동심을 기르거나 문제 해결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게 된 겁니다. 구글을 비롯한 테크 기업은 아마도 지난 100년간 미국 교육에 있어 가장 격렬한 논쟁의 한 가운데 섰습니다. 공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지식과 교양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숙련된 노동력을 길러내는 것인지에 관한 논쟁입니다.
구글의 교육 앱 관련 사업을 이끄는 조나단 로셸은 지난해 한 교육산업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보고 느낀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차 방정식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걸 왜 배워야 하는지도 그렇고요. 구글에 검색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데, 구글에 물어보면 안 되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까요?”
수많은 교육용 장비와 앱을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글로서는 여러모로 남는 장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학교에서부터 구글이 제공하는 환경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라나서 구글을 익숙하게 여기는, 구글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지금까지 학교에 크롬북스 수백만 대를 제공했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노트북 한 대당 30달러 정도 하는 관리비가 전부입니다. 모이면 적지 않은 액수지만, 기계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들인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모자라는 액수죠. 하지만 그보다 어렸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구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노출하는 데서 오는 장기적인 수익이 구글에 훨씬 더 큽니다.
매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백만 명은 자동으로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던 쥐메일, 구글 문서, 각종 과제 파일을 구글 일반 계정으로 옮깁니다. 매년 구글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한 고객이 수백만 명씩 늘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글이 편의를 제공한다기보다 학교에서 먼저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구글이 교육용 이메일 계정을 제공해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모으고 소위 잠재 고객을 길들인 뒤 이들이 성인이 되는 동시에 효과적인 마케팅 대상으로 삼아 쉽게 고객을 확보한다고 비판합니다. 시카고에서 IT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데이비드 바소티 씨도 구글 기반 교육을 우려하는 학부모 중 한 명입니다. 바소티 씨의 딸도 초등학교에서 구글 앱과 기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축적한 어린이들의 신상을 비롯한 여러 정보는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아주 유용한 마케팅용 데이터가 되겠죠. 저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구글의 조나단 로셸은 학생들이 교육용 계정을 일반 계정으로 전환할 때 학생들의 개인 정보는 구글의 개인정보 보호 방침에 따라 엄격하게 다뤄진다고 말합니다.
“쥐메일에 구글이 내는 광고가 노출될 수 있습니다만, 학생들이 교육용으로 받은 구글 드라이브 계정에 올려놓은 정보가 맞춤형 광고를 내는 데 쓰이는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가치는 6,520억 달러에 이릅니다. 구글은 특히 잠재적인 고객으로서 가치가 높은 어린 학생들을 공략하고자 테크 기업들이 벌여 온 치열한 경쟁에서 최근 눈에 띄는 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교육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속도나 마케팅을 통해 이를 알리는 효율성 측면에서 모두 경쟁 업체를 따돌리며 자라나는 세대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대상으로 한 시장 점유율에서 눈에 띄게 앞서 나가는 기업을 꼽기 어려웠습니다. 구글 문서를 공동 개발하기도 했던 로셸이 일선 학교의 수요를 철저히 고려한 교육용 앱을 만드는 데 주력할 팀을 구글 내부에 꾸린 것도 2013년의 일입니다.
구글에서도 교육 전도사로 통하는 제이미 케이셉이 미국 전역의 일선 학교를 돌며 구글이 새로 만든 교육용 앱과 프로그램을 홍보했습니다. 다만 그는 구글 제품을 직접 알리는 대신 선생님과 교육 담당자들에게 대학 진학률을 높이고 훗날 학생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어려서부터 온라인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고 창의적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전통적인 판매 방식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 구글을 교실에 들이는 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시카고 공립 학교의 필립 디바르톨로의 말입니다.
하지만 학군의 장학관을 비롯한 대표 채널을 우회해 직접 일선 선생님들에게 제품을 알리는 전략이 오히려 구글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전통적으로 하드웨어 판매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인 만큼, 학교에 장비나 교육용 프로그램을 적정 가격을 받고 보급해 수익을 냅니다. 반면 구글의 수익은 대부분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는 맞춤형 온라인 광고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이 교육용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구글이 모으는 수많은 데이터를 나중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구글은 이 문제와 아직도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쓰는 교육용 앱의 보안 문제나 개인정보 보호 여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 커먼센스 미디어의 빌 피츠제럴드는 이 문제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구글이 어떤 정보를 왜 모으고,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이를 소비자가 추적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기 전까지는 개인 정보를 구글의 손에 넘겨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구글은 교육용 앱과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정보를 어디까지 모아 어떻게 활용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을 이끄는 브램 부트는 위치 정보나 이용자가 서비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데이터 등 구글이 어떤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원칙을 설명한 개인정보 관련 고지를 참조하라고 말했습니다.
“쥐메일, 구글 달력, 구글 문서 등) 구글의 핵심 교육용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데이터는 학생들이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는 등 해당 서비스를 원활하게 사용하는 데만 쓰입니다. 교육용 프로그램에는 어떤 광고도 등장하지 않으며, 교육용 프로그램을 통해 모은 데이터를 맞춤형 광고 등에 활용하는 일도 절대로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일부 학부모들과 교육자들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구글이 정확히 학생들의 어떤 데이터를 어디까지 모아서 무슨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하는 데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더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소티 씨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 딸이 집에 와서 (딸아이 계정으로) 제 컴퓨터로 구글 문서에 접속하면 위치 정보를 통해 구글은 우리 집주소를 모을 수 있겠죠. 순전히 교육 목적이라면, 학생이 어디서 구글 프로그램에 접속하는지 위치 정보가 왜 필요한 거죠? 이 데이터를 어떻게 쓰겠다는 걸까요?”
구글, 대학가의 절대 강자
구글에서 교육 전도사로 통하는 제이미 케이셉은 구글이 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이야기를 할 때 고비마다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야기는 구글이 템페에 있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캠퍼스에 교육 관련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오피스를 열기로 하고 케이셉을 고용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케이셉이 애리조나 주립대학 측을 설득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체 서버로 운영하던 이메일 체계를 버리고 쥐메일과 구글 문서가 통합된 형식의 구글 이메일 시스템을 대학교에 도입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곳이 더러 있지만, 그때만 해도 구글이 기업에나 팔던 이메일을 대학교가 도입하는 건 흔치 않은 시도였습니다. 한 학기 만에 학교 학생 대부분인 6만 5천 명이 새로 쥐메일에 가입했습니다.
구글의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케이셉은 대학 관계자를 초빙해 직접 구글 메일과 문서 시스템을 도입한 뒤 무엇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홍보하도록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어요.”
케이셉의 말처럼 노스웨스턴대학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등 많은 학교가 서비스를 구매합니다.
이는 동시에 교육 사업에서 구글의 마케팅 전략이 됐습니다. 사용이 간편한 동시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구글 시스템의 장점을 들어 학교 관계자를 공략하고, 한 학교의 성공 사례는 적극적으로 알려 다른 학교의 가입을 끌어내는 겁니다. 구글은 자사의 서비스를 도입한 학교를 진취적인 얼리어댑터,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선도하는 교육 기관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대학교 사이에서 이러한 구글의 마케팅은 놀라운 성공을 거둡니다. 이에 케이셉은 공립학교를 대상으로도 비슷한 사업을 구상합니다.
마침 오레곤 주 교육부는 주의 공립학교들이 이메일 서버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이었습니다. 2010년 오레곤 주 공립학교들은 구글의 교육용 앱 등 서비스를 주 차원에서 이용하는 고객이 됩니다.
대학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고 주문이 밀려들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케이셉은 전국 곳곳에서 구글 서비스에 관해 문의하는 연락이 올 때마다 오레곤 주 교육부에서 이 문제를 맡아 처리한 스티브 넬슨을 소개해주고, 사용 후기를 직접 듣게 했습니다.
이즈음 구글은 일선 교사를 공략해 구글의 서비스에 호의적으로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성장을 견인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결국,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건 선생님의 몫인 만큼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 결정하는 교육 행정가들도 선생님들이 말하는 현장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의 브램 부트는 선생님을 설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육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점이 증명되면 그만큼 강력한 마케팅이 또 없는 셈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썼습니다.”
구글은 또한 “구글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모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수십 개를 만들어 지원했습니다. 커뮤니티에 가입한 선생님들은 서로 구글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해서 효과를 봤는지 노하우나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구글 혁신 교육자 과정 같은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했는데, 구글 프로그램을 활용한 성공적인 수업 사례를 공유하거나 동료 교사들로부터 구글 서비스 이용법을 배울 수 있는 과정입니다.
이제 선생님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더 나은 교수법을 개발하는 좋은 지침서로서 구글을 언급하기 시작하고, 교육 과정 개발 세미나 등에서도 구글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구글은 교육 분야에서 점차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업이자 스폰서로 자리매김합니다. 구글은 또 구글 교육용 프로그램을 구매한 학군과 소속 학교들에 구글 서비스를 접목해 활용한 경험과 교훈을 주변 학교와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리더십 심포지움을 열도록 지원합니다.
교육 관련 장비나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 사이에서는 일선 교사를 비롯한 교육자들을 직접 섭외해 동료 교사들에게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게 하는 식의 홍보가 이미 보편화됐지만, 구글은 특히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내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일을 대규모로, 성공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시장을 장악한 구글이 마치 공립 학교 관계자들을 대거 고용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냈다는 업계의 평가도 있습니다. 한 교육 컨설팅 업체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 시장이라는 곳이 분명 공공재가 필요하고 공공의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긴 한데, 동시에 회사들에는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학부모와 교육자들부터 먼저 구글이 어떻게 학교 곳곳에 널리 퍼져 교육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자연스레 자사 브랜드를 알리고 효과적인 마케팅 창구로 학교를 활용하게 됐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의 브램 부트는 구글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선생님들을 포섭하지 않았다며 그러한 지적에 반박했습니다. 대신 구글의 프로그램과 앱을 이용해 교실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선생님들의 경험을 나누고 교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다른 선생님들이 동료 교사로부터 노하우를 배워가도록 해 실제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겁니다.
“교육자 한 명이 깨달은 교훈을 혼자 되새기는 대신 가능한 한 많은 선생님이 나누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사실 많은 선생님이 그런 플랫폼이 없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배우지 못했던 점을 개선한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뛰어넘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전략은 시카고 공립학교에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지난 2012년, 시카고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던 제니 마지에라 선생님은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해 문장을 같이 쓰고 고칠 수 있는 구글 문서를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학군 차원에서 구글의 앱과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이었습니다. 마지에라 선생님은 직접 상용 이메일 계정 여섯 개를 만들었고, 그 계정들로 구글 문서에 접속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지에라 선생님은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글 앱을 일종의 해적판처럼 쓴 거죠. 학생들이 서로 도와 가며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거든요.”
당시 시카고 공립학교 정보기술 책임자였던 라클란 티드마시 같은 장학사들이 마지에라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하러 옵니다. 티드마시는 교육청의 지원이 없는데도 개별 교사들이 구글의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쓴다는 건 그만큼 플랫폼과 서비스가 좋다는 방증이라고 여기고 공식적으로 구글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플랫폼의 장점만 활용하고 낯선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교육용 계정을 빨리 만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시카고 공립학교는 마이크로소프트 익스체인지를 비롯한 여러 이메일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드는 연간 200만 달러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물색하고 있었고, 이메일 서비스 업체들의 입찰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마지에라 선생님이 교실에서 한 실험이 시카고 공립학교 장학사들의 눈에 띈 겁니다.
전체 학군을 아우르는 이메일 업체를 선정하는 심사위원회에는 마지에라 선생님은 물론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 이메일 시스템이 익숙한 많은 장학사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끝내 시카고 공립학교는 2012년 3월, 구글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합니다.
큰 고객을 잃은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연히 실망합니다. 하지만 시카고 공립학교의 기간 시설을 총괄하는 에드워드 바그너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과 비용을 따져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구글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 무료 플랫폼, 서비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압도했습니다. 일선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대부분 구글을 선호했습니다.
다만 이내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는 대체로 개방성과 정보의 공유를 지향하던 구글의 사업 문화와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교육 현장 사이에 피할 수 없던 충돌이기도 했습니다.
시카고 교육 당국은 가족 교육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Family Educational Rights and Privacy Act)에 따르는 계약서를 구글에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 법은 연방 정부에서 예산을 받는 교육 기관이 교육 관련 장비나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업체에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면, 해당 업체는 그 정보를 교육 목적 외에는 절대 쓸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연방 규정 대신 회사의 내규와 정책에 준하는 계약을 맺으려 했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에 보낸 구글의 내부 규정에는 언제든 구글 측이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 측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의 에드워드 바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글이 자기네 회사 규정을 참고하라며 내용을 보냈을 때 저희 측 변호사는 거의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구글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규정을 저희가 받아들일 수는 없었죠.”
오레곤 주도 구글과 계약을 맺을 때 특히 학생의 개인정보 관리와 처리 방침을 놓고 오랜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주 교육 당국에서 일했던 스티브 넬슨은 구글과 오레곤 주 교육부의 협상이 16달이나 걸린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의 부트는 구글이 항상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왔고, 구글의 초기 교육 앱이나 서비스의 약관을 보더라도 연방법이 규정하는 교육 관련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명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양측이 주장에는 온도 차가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구글이 학교들과 맺는 교육용 앱 및 구글 서비스 표준 계약서에는 연방법의 규정을 준수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구글 앱과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시카고 공립학교에 속한 학교들은 이메일과 관련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드는 총비용을 매년 160만 달러나 절감했다고 공립학교 대변인은 말했습니다.
이어 구글은 시카고 공립학교의 장학사였던 라클란 티드마시를 구글 블로그의 필자로 모셔 구글 교육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직접 알리게 합니다. 현재 의료 관련 기술회사에서 일하는 티드마시는 당시 구글 블로그에 글을 쓰며 구글로부터 고료를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이 교육용 계정 27만 개를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글에서 티드마시는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계정 이동보다도 매끄럽고 빠른 절차였다.”고 썼습니다.
“구글과 함께한 성공담을 나누는 일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저희의 성공 사례를 접한 뒤 구글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한 학교가 아마 수십 곳에 이를 겁니다.”
다른 학군에서 혁신 담당 장학사로 일하고 있는 마지에라 선생님도 구글이 자리를 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2012년, 구글 인증 혁신 교육자 1기에 들고자 교수법을 연구하던 마지에라는 시카고 공립학교가 주최하는 공개 콘퍼런스를 여는 데 앞장섭니다. ‘구글빠들의 모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Googlepalooza’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에는 많은 일선 교사들이 참여해 구글 서비스를 활용한 교수법을 배워갔습니다. 구글이 공동 협찬하는 이 행사는 이제 시카고와 주변 지역에서만 매년 교육 관계자 수천 명이 참여하는 어엿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지에라는 지금도 가끔 구글을 활용한 교수법을 다른 일선 교사들에게 알리는 인기 강사이기도 합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의 브램 부트는 특히 교육 시장에서 구글은 성장 방식에 신중을 기해 왔다고 말합니다.
“지역 허브 한 곳에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학교들이 점차 구글을 도입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과정 하나하나를 특히 신중히 처리했는데, 저희는 경험을 통해 이런 방식이 통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롬북스, 마침내 고객을 찾다
이즈음 구글은 크롬북이라 이름 붙인 단순한 저가 노트북을 개발했습니다. 구글 크롬 운영 체계를 바탕으로 한 크롬북은 웹상에서 다양한 앱을 실행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노트북에 저장된 소프트웨어를 최소화함으로써 부팅과 프로그램 실행을 훨씬 더 싸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개인 고객보다는 사업장에 판매하겠다는 목표로 개발한 크롬북스였지만, 일단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써보게 한 결과, 고객의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불평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구글의 시선을 사로잡은 고객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공립학교들이었습니다. 2011년 가을 구글은 교육 당국 관계자들을 구글 시카고 사무실로 초대합니다. 제이미 케이셉은 이 자리에서 크롬북스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설파합니다.
크롬북스의 기술적인 특장점에 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대신 케이셉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선생님들을 매료시킵니다. 험난했던 뉴욕 맨하탄에서 복지 혜택을 받고 자란 라티노 학생의 고충을 진솔하게 풀어낸 거죠.
케이셉의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 활발한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가장 위대한 수단이 다름 아닌 교육이고, 특히 기술은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높은 벽을 허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이미 케이셉의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 가운데는 일리노이 주 프랭클린 파크에 있는 이스트 레이든 고등학교의 교장 제이슨 마키도 있었습니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블루칼라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대개 케이셉이 어렸을 적 겪었던 것과 비슷한 고충을 겪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케이셉의 이야기에 감명받은 마키 교장 선생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기반 노트북 컴퓨터를 사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구글 크롬북스를 구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마자 제이미에게 다가가서 지금 당장 주문하고 싶은데 언제까지 배송해줄 수 있는지 물었죠.”
이스트 레이든 고등학교 학생 3,500명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구비해주는 일이니,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구글에도 절대 작지 않은 계약이었습니다.
마키 교장은 학교로 돌아가 교사들과 행정직원들에게 자신이 새로운 기기를 학교 이름으로 구매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크롬북스라는 검증되지 않은 기기를 사고 싶다는 교장의 발표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마키도 설득하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다고 인정합니다.
구글은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에 노트북 컴퓨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학군 새로운 온라인 표준화 시험을 도입하려면 학생들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야 했습니다. 구글은 크롬북스와 함께 컴퓨터 수천 대를 동시에 온라인에서 관리하며 일선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인터넷에서 답을 찾아볼 수 없도록 온라인 접속을 원격으로 차단하고, 학교에서 컴퓨터가 분실됐다고 신고하면 즉시 해당 컴퓨터를 잠갔습니다.
크롬북스와 함께 구글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해 과제나 수업 관련 자료를 학생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아무 크롬북스에서나 자기 이름으로 저장해둔 수업 자료를 확인하고 숙제를 해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구글 크롬북스 사업을 총괄하는 라젠 셰스는 크롬북스가 큰 성공을 거둔 중요한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크롬북스 전원을 켜고 바로 학습에 필요한 무언가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은 정말 10초도 안 되거든요.”
게다가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저렴하기까지 한 크롬북스의 특징은 학생들이 인터넷과 새로운 기술에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라는 케이셉의 주장에도 꼭 들어맞았습니다. 케이셉은 지난해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교육 콘퍼런스에서 한 인터뷰에서 구글의 교육 철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주에서나 작동될 대단한 첨단 기술을 파는 게 아니었어요. 그보다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기업이 되고 싶었죠.”
인터뷰 중인 케이셉 앞으로 보라색 영웅 캐릭터가 입는 듯한 망토를 걸친 학생 한 무리가 지나갔습니다. 망토에는 구글의 경쟁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노트(OneNote) 로고가 크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망토를 가리키며 케이셉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저희는 저런 식으로 드러내놓고 홍보 안 해요.”
반대로 기술이 그 자체로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기반을 닦아준다는 식의 주장이 오히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이익을 보기 좋게 포장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육자들의 이타주의를 이용해 각 학교에 결국 랩톱 컴퓨터나 각종 교육용 앱을 팔려는 상술이라는 것이죠. 커먼센스 미디어의 피츠제럴드도 교육용 앱들이 사용자인 어린 학생들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학생과 교사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문제를 도외시한 채 기술이 평등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건 근시안적인 주장입니다.”
이에 관해 제이미 케이셉은 교사 수가 부족하거나 학생들에 대한 지원 체계가 열악한 학군에도 일단 새로운 장비부터 들여놓으라는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스트 레이든 고등학교의 마키 교장에겐 공평한 기회와 관련해 한 가지 고민이 더 있었습니다. 이 학교 학생의 20%는 집에 인터넷이 없습니다. 인터넷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크롬북스를 이 학생들에게 줘봤자 숙제를 할 방법이 없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케이셉은 이에 관해 구글이 이미 인터넷 없이도 온라인에서 크롬북스를 쓰는 법을 고안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집에 가서 오프라인 상태에서 숙제를 하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 인터넷에 접속해 제출만 하면 되는 식으로 관련 앱들을 정비할 예정입니다.
이내 수많은 선생님과 교육 당국 관계자들이 이스트 레이든 고등학교에 견학 신청을 했고, 학군은 아예 연례 콘퍼런스를 개최해 이를 정례화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케이셉은 이 콘퍼런스에서 모두 연설을 했고, 마키 교장선생님도 이제 구글을 활용한 교실 운영 노하우를 선생님들에게 가르치는 회사 에드테크팀(EdTechTeam)에서 강사로 마이크를 잡습니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구입한 모바일 기기의 58%를 크롬북스가 차지했습니다. 퓨처소스 컨설팅에 따르면 불과 4년 전만 해도 크롬북스의 시장 점유율은 채 1%가 되지 않았습니다. 크롬북스 판매 비용이 직접 구글의 수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판매 비용은 오히려 삼성이나 에이서 등 크롬북스 제조사에게 갑니다. 대신 구글은 크롬북스를 학교에 설치하며 사후 관리비와 서비스 비용으로 대당 30달러씩 학교로부터 돈을 받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는 크롬북스 13만4천 대를 들이는 데 총 3,350만 달러를 썼습니다.
크롬북 판매 및 관리를 대행하는 회사 CDW-G의 교육 전략 전문가 데이비드 안드레이드는 수많은 학교에서 이렇게 빨리 보급된 장비나 서비스는 교육 역사상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실리콘 밸리와 일선 교육 현장의 차이가 낳은 타협점, ‘관제 센터’ 앱
2014년 승승장구하던 구글과 시카고 공립학교 사이에 내재했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제동이 걸립니다. 일단 기술을 접목해 서비스를 출시하고 생겨나는 문제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 가며 처리하자는 실리콘 밸리식 사고로 무장한 구글과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던 대규모 관료 조직인 공립학교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구글은 시카고를 혁신적인 요소로 가득한 구글 교실(Google Classroom)의 전초 기지로 삼으려 했습니다. 구글 교실은 학생들의 출석 체크와 숙제 검사를 비롯한 교육의 모든 과정을 구글 플랫폼 안에서 선생님들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통합형 교육 환경입니다. 2014년 8월, 구글 교육사업팀은 시카고에서 열린 ‘구글빠들의 모임(Googlepalooza)’ 콘퍼런스에서 구글 교실을 직접 시연했습니다.
하지만 마가렛 한이라는 벽에 부딪힐 줄은 구글 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마가렛 한의 직책은 시카고 공립학교의 신규 기술 총괄 디렉터였습니다. 앞서 한은 구글이 선생님들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구글 교실의 초기 모델을 써보게 하면서 공립학교 학군을 비롯한 교육 당국에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배제된 점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한은 그랬던 구글이 이제 와서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 등 관련 규제에 어긋나는지 당국의 검토 과정도 거치지 않은 구글 교실을 시카고 학군 전체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제품 하나 들고 와서 일단 교실에 도입부터 하고, 아무런 탈 없이 잘 굴러가기를 기도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새 기술이든 제품이든 서비스든, 새로운 무언가가 학생과 교사 모두를 보호하는 기존 규정에 맞는지,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지를 미리 교육 당국과 협의했어야 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열 번째로 큰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의 기술 담당자 짐 시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 구글은 자사의 베타 버전 프로그램을 시험해 보겠다고 자원한 카운티 내 일선 교사들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바로 해당 앱에 접근 권한을 주고 이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교실을 운영하게 했습니다. 원래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서는 학교마다 구글의 어떤 서비스를 도입해도 좋은지 사전에 검토한 뒤 개별적으로 이를 승인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을 직접 공략해 시험 운영이었다지만 모든 서비스를 한꺼번에 도입해 버린 구글의 결정은 교육 당국이 세운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시글은 또 구글이 카운티 내 어느 학교의 선생님 몇 명에게 접근 권한을 주고 시범 운영을 해보게 했는지 그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공립학교 측에서 구글 앱 사용을 중지시킨 시점에 이미 선생님들은 가상 교실을 열고 학생들에게 이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시글은 구글에 항의했습니다.
“교육 환경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릴 수 있어요. 게다가 구글이 보통 회사도 아니고, 교육 시장에서 학교들을 상대로 사업을 할 때 구글이라면 정말 특히 더 신중을 기해 교육 당국과 협력하고 규정을 지켰어야 합니다.”
구글 교육사업팀의 브램 부트는 이메일에서 “구글이 제공하는 핵심 교육 서비스는 어떤 경우에도 학교의 모든 영역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교육 당국의 사용 승인을 받은 뒤에만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구글 교실은 구글에서 교육용 앱 사업을 시작한 로셸과 고등학교 수학 교사 출신으로 구글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던 잭 예스켈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이들은 구글 교실을 “관제 센터” 역할을 하는 앱이라고 설명합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거나 숙제를 채점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남는 시간에 학생들과 더 많이 교감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한 통합 관리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전·현직 교사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구글은 2014년 5월, 구글 교실 베타 버전을 시험해 볼 선생님을 모집하는 광고를 공식 블로그에 냅니다. 전 세계에서 교사 10만여 명이 지원했습니다. 구글이 교육 전체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같은 해 8월, 구글은 일선 교실에 구글 교실을 시험 운영해볼 수 있도록 (베타 버전)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퓨처소스 컨설팅의 피셔는 구글이 선생님들을 직접 상대해 서비스를 알리는 데 구글 교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카고 공립학교는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구글의 사업 방식에 멀미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립학교 관계자들은 구글 교실이 무엇보다 먼저 학군 전체의 원칙이나 정책에 부합하는지,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해주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는 교사 275명, 학생 수천 명을 선정해 1년간 구글 교실을 시범 운영했습니다. 매달 선생님들이 구글 교실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과 평가를 마가렛 한이 모아 구글에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구글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한 가지 문제점은 공립학교 관계자들의 눈에 단박에 띄었습니다. 선생님과 학교의 교육자들은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폭력 문제나 악성 댓글 관련 문제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 교실은 선생님에게 이런 책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폭력적인 언어를 동원해 악플을 달아도 선생님이 이를 발견하고 게시판에서 지우고 나면, 이 사실은 기록에 남지 않게 됐습니다. 구글이 이를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마가렛 한은 말합니다.
“저희 학군 정도 규모의 교육청과 학교들에서는 필요한 일이고 규정을 만들어 강제해야 하지만, 구글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는 법이죠.”
구글은 마침내 문제가 되는 댓글이나 사이버 폭력 등을 기록하는 공간을 만들었고, 시카고 공립학교는 올가을 구글 교실을 전 학군에 도입합니다. 시카고 공립학교 소속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구글의 다른 제품과 서비스도 사용해보며 평가를 남겼는데, 이 덕분에 구글도 아주 유용한 테스트를 해본 셈이 됐습니다.
“시카고에서 잘 돌아가면, 미국 어디에서도 문제없이 잘 된다는 뜻이거든요. 그 점을 구글에 지속적으로 상기시켰죠.”
마가렛 한의 말입니다. 브램 부트도 동의합니다. 그는 시카고 공립학교가 특히 다른 학군, 학교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꼼꼼하게 서비스를 평가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합니다.
“시카고 공립학교에서 인정받았다는 건 꽤 많은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있는 어느 학교에 내놓아도 손색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시카고 공립학교도 궁극적으로 큰 혜택을 봤습니다.
2015년 시카고 공립학교는 교육감 비리 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최소 2천3백만 달러 규모의 입찰 과정에 개입해 특정 업체의 편의를 봐준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시카고 공립학교의 바바라 비어드 베넷 교육감을 기소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돼 비어드 베넷은 4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시카고 공립학교와 소속 교사들이 구글 교실을 비롯해 구글의 제품을 시범 운영하며 하자를 지적하고 개선점을 모색해 온 협력 관계를 바라보는 눈길에도 의혹의 눈초리가 더해졌습니다. 전국 여러 학교를 대신해 시카고 교사들이 앞장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혁신을 꾀한다는 좋은 취지가 아니라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 검은 거래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현재 시카고 공립학교는 재정적으로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구글과 건설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오늘날 미국 전역에서 구글 교실을 사용하는 초중고 학생이 1,5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구글로서는 어떤 제품을 내놓든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객을 대상으로 마음껏 실험해볼 수 있는 셈입니다. 자연히 구글이 공립학교 교사나 학생들을 사실상 공짜로 테스트해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교육학과의 파트리시아 버치 교수도 이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구글의 경우 명백한 사기업이 선생님의 시간과 전문성, 경험과 같은 공공재를 활용해 아주 작은 비용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셈이죠. 창의적이라면 창의적이지만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습니다.”
구글의 조나단 로셸은 다양한 교육 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회사 차원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를 모두 도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입니다. 선생님들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자신들이 내놓은 개선책이 반영되는 기회를 얻어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티드마시와 같은 의료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마가렛 한도 로셸의 말에 동의합니다. 한은 일선 학교들도 구글에 협조한 대가로 특히 다른 테크 회사로부터는 좀처럼 받기 어려운 중요한 것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선생님들의 지적과 건의가 재빨리 반영돼 제품이 나아지는 개발 과정 그 자체가 선생님과 학교에도 좋은 일이었다는 겁니다.
시카고 학교들이 구글 교실을 체계적으로 시험 운영한 뒤에는 구글 교육사업팀도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해보려 할 때 마가렛 한에게 먼저 연락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은 겁니다.
“무작정 일단 해보고 보는 대신 교육 당국에 먼저 연락을 취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마가렛 한의 말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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