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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아세요?”

북한이 지난 14일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과연 북한의 위협이 진짜로 어느 정도인지, 아니 그 전에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뉴욕타임스의 의뢰를 받은 모닝 컨설트의 카일 드롭은 지난달 27~29일 사흘간 미국인 성인 1,746명을 대상으로 아시아 지도를 보여주고 북한이 어디에 있는지 맞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은 36%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들의 상상 속 북한의 위치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원문 지도 참조)

이어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맞힌 사람일수록 직접적인 군사적 해결책보다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교적 해결책에는 더 강력한 경제 제재,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견제하는 방안은 물론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포함됩니다.

지상군을 투입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북한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부정적이었습니다.

북한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가장 큰 견해 차이를 보인 질문은 미국이 북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시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북한의 위치
맞힌 사람 틀린 사람
경제 제재 +59 +49
중국 통한 우회 압박 +63 +48
군사 시설 사이버 공격 +37 +18
군사적 해결 +5 +9
공중 폭격 -1 +3
무기 및 군수물자 지원 -12 -13
지상군 투입 -34 -19
아무것도 안 하기 -45 -22

이런 견해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먼저 지지 정당에 따른 차이일 수 있습니다. 대개 특히 남성 공화당원들이 남성 민주당원들보다 지도상에서 북한의 위치를 더 잘 찾아냈는데, 이들은 연구진이 제시한 외교적 해결책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여성은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북한의 위치를 맞춘 비율이 엇비슷했습니다)

지리적 위치를 정확히 알면 그만큼 지정학적으로 사안이 복잡하므로 신중한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2014년 드롭과 다른 연구자들이 진행한 비슷한 실험에서도 일관된 경향이 나타났는데, 미국인에게 지도상에 우크라이나가 어디 있는지 짚어달라고 한 뒤 우크라이나 사태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군사 개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응답자들을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한 뒤 정답자의 분포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교육 수준이 눈에 띄는 지표였습니다. 석사 이상 학위가 있는 사람들의 정답률이 53%로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친척 중에 한국계가 있다고 답한 이들의 정답률도 55%였습니다. 한 번이라도 미국 말고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있거나 다른 나라에 산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의 정답률도 43%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습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북한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65세 이상 응답자들은 거의 절반(48%)이 북한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1953년 끝난 한국전쟁의 기억이 이 세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인의 세계지리 상식은 원래 형편없었습니다.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에서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지도에서 이라크의 위치를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응답자의 75%는 이란이나 이스라엘의 위치를 못 맞혔습니다. 뉴욕 주가 어디 있는지 맞힌 사람도 절반에 불과했던 걸 보면 미국 기준에서 세계지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리 상식이 좀 부족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함드 블리즈는 자신의 책 “왜 지리학이 중요한가”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지리학과 지리에 관한 지식은 고립주의와 편협함을 이겨내는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전 세계 시민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초강대국이다. 그런데 미국 대중이 지리적으로 까막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리학자들은 공간, 지리, 지정학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시민들은 대개 외교 정책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지리학에 관한 시민들의 상식이 부족하면 국제적인 문제에 관해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고 엉뚱한 정책이 지지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레곤 대학교 지리학과의 알렉 머피 교수의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지리적인 상식을 쌓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이 모든 외교 정책을 속속들이 알고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과의 엘리자베스 선더스 교수도 “시민들이 정책에 관한 사안을 다 꿰고 있지 않은 건 지극히 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정부의 다른 역할과 마찬가지로 외교 정책을 이끄는 수장을 뽑고 엘리트인 외교 관료에게 정책 집행을 위임하고 언론에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맡겨 놓았으니, 그 세부적인 사안까지 시민들이 일일이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북한에 대해 대단히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올해 초 전 세계 나라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를 조사한 유고브(YouGov) 여론조사를 보면 북한을 적(敵)이라고 보는 미국인이 57%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대상 144개국 가운데 적으로 지목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북한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갤럽이 진행한 조사에서도 미국인에게 북한은 호감도가 가장 낮은 나라로 꼽혔습니다.

미국에 북한은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가 아닙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습니다. LA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바바라 드믹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에요.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의 (동북아시아) 외교 정책이 언제나 이러한 대원칙 아래 집행되고 이어져 왔다고 북한은 진심으로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북한에 사실 미국인들이 당신네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고 일러주는 건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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