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니 위버가 된 느낌인데요?”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가 지난 19일, 4m 가까운 높이의 로봇 조종석에 올라가 팔다리를 움직여보며 한 말입니다. 조종석에 앉은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반영해 따라 하는 로봇에 탄 베조스는 영화 “에일리언”에서 주연 배우 시고니 위버와 에일리언의 유명한 전투신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아마존이 주최한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후 베조스는 트위터에 두 팔을 번쩍 들고 마치 뼈가 으스러지도록 상대방을 안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로봇(과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많은 소매업체가 베조스의 트윗을 보고 마냥 웃지만은 못했을 겁니다. 근래 소매업체들에 가장 큰 위협을 안겨준 존재가 아마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막연한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기술과 경영 방식으로 아마존은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단연 앞서 왔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쟁이 아마존이 태생적으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온라인 쇼핑 부문에서 이뤄지긴 했죠.
이제 아마존은 전 세계 곳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존에는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온라인 쇼핑이라는 링을 박차고 나와 소매업체들과 더 직접 맞붙게 된 겁니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아마존이 추진해온 슈퍼마켓에 쏠리는 사이, 아마존은 먹을거리에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품목을 ‘아마존답게’ 파는 방법을 두루 실험하고 있습니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이런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업체, 다른 매장이 작동하는 기존의 방식은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새로운 형태의 자동화로 소매업계의 일자리가 대폭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한적한 교외에 자리한 물류창고 대신 소비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에 물건을 들여놓으면 인터넷에서 주문한 지 몇 시간 안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빠른 배송도 더 쉬워집니다.
아마존은 가구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처럼 소비자들이 실제 물건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구매를 꺼리는 제품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계획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을 때 뉴욕타임스와 만난 익명의 관계자들이 전한 내용입니다. 소비자들은 매장을 방문해 진열된 물건을 직접 확인해보고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은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해 기존의 다른 가구 매장과 차별을 두겠다는 계획입니다. 아마존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소파, 난로, 식기 진열장을 집안 어디에 들여놓으면 어떻게 보일지를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매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아마존은 또한, 애플 스토어와 비슷한 형식의 가전제품 매장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장에서는 아마존의 가정용 스마트 스피커 에코나 아마존 프라임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마존은 지금까지 고전을 면치 못한 식료품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에 나섭니다. 시애틀에 계산원이 한 명도 없는 무인 슈퍼마켓 시범 매장을 연 아마존은 곧 소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슈퍼마켓 두 곳을 마찬가지로 시애틀에 열 계획입니다. 기존 슈퍼마켓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되, 빠른 배달에 필요한 지역 거점 역할을 할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국 밖에서는 인도가 아마존 오프라인 매장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요한 시험장이 됐습니다. 인도는 시장 규모나 잠재적 구매력과 수요는 모두 어마어마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푹푹 찌는 날씨에 먼지가 앉은 시장에 좌판을 펼쳐놓은 가게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장을 봅니다. 물건의 품질도, 가격도 통일된 기준이 없습니다. 아마존 내부에서는 인도 슈퍼마켓 진출 사업을 “에베레스트 프로젝트”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달 초 아마존은 시카고에 회사의 다섯 번째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습니다. 현재 공사 중인 다섯 곳을 합하면 온라인 서점의 대표주자 아마존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서점은 곧 열 곳으로 늘어납니다.
아마존 내부에서 나온 아이디어 가운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는 아이디어가 훨씬 많습니다. (드론으로 물건을 배달하겠다는 생각을 낸 회사답게) 아마존 직원들은 얼마든지 엉뚱한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디어는 임원진의 검토 단계에서 폐기되거나 후순위로 밀립니다. 아마존은 아직 공개적으로 밝힌 장소와 품목 외에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에 관한 내용은 철저히 함구했습니다. 아마존의 드류 헐드너 대변인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존은 항상 고객을 더 잘 모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건 분명히 다릅니다.”
‘컴퓨터를 통해 물건을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그 서비스를 쓸 것’이라는 전제 아래 베조스는 아마존을 창업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사람들은 아마존이 과연 언제쯤 오프라인 매장을 지을지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오프라인 매장을 짓는 대신 온라인 쇼핑 분야에서 끊임없는 혁신으로 기회를 창출해 왔습니다. 킨들 같은 기기를 출시해 전자책 시대를 열었고, 빠른 배송을 비롯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자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프라임 회원이 됐습니다.
2012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제프 베조스는 이미 기존 소매업체들이 잘 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 사업에 섣불리 뛰어들 생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마존은 무얼 하든 우리만의 방식으로 하고 싶어요. 오프라인 매장을 열더라도 ‘아마존답게’, 우리만의 독특한 측면이 있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런 방법을 찾지 못했죠. 그런 방법을 찾으면 그때는 당연히 매장을 열고 뛰어들 겁니다.”
아마존이 온라인 쇼핑에서 거둔 성공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그러나 ‘실제 매장에 가서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필요하면 직원한테 직접 설명을 듣기 전에는 결제하기 꺼림칙한 물건’들이 여전히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장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많이 장을 보는 품목일 식료품이 그렇습니다. 미국의 식료품 시장 규모만 연간 7,70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아마존프레시(AmazonFresh)는 식료품도 얼마든지 온라인으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아마존의 신념을 담은 회심의 카드였습니다. 하지만 출시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마존이 들인 품과 쏟아부은 자원에 비해 아마존프레시의 성장 속도는 여전히 저조합니다. 식료품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아마존은 좀처럼 안정적인 이윤을 내지 못했고, 이는 서비스 확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여전히 소비자들은 신선한 과일, 채소, 고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고 싶어 합니다. 화면에 아무리 신선하다고 써놓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게다가 집까지 물건을 배달하려면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1년에 99달러를 내고 프라임 회원에 가입한 뒤 매달 15달러를 추가로 내야 아마존프레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식료품 시장은 미국 전체 식료품 시장의 3%에 불과합니다. 10%에 육박하는 영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보노보(패션 의류)나 워비파커(안경) 같은 업체들이 온라인에서만 운영하다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성공한 것도 아마존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소비자가 직접 가게를 찾아 물건을 고르는 경험 중 일부는 좀처럼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마존이 마침내 받아들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일한 적 있는 조 톰슨은 베조스의 야심 찬 계획에 있어 실제 오프라인 매장의 성공은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상 첫 시가총액 1조 달러 달성’이라는 기념비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 베조스가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심심찮게 느껴졌습니다.”
현재 아마존의 시가 총액은 약 4천억 달러로, 1조 달러라는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아마존은 지금 잘하는 것 외에도 이제까지 전혀 끌어들이지 못한 소비자를 발굴해내는 등 온라인 시장의 판세 자체를 뒤흔들어야만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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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