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지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계지도와는 대륙의 크기나 생김새가 매우 다릅니다. 아래 세계지도는 우리가 익히 봐 왔던 지도입니다.
지난주 보스턴 공립학교 교실에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가 걸렸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기존의 세계지도와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학생들은 새로 알게 된 엄청난 사실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세계관도 순식간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미국은 우리가 알던 것보다 작았습니다. 유럽도 분명 훨씬 작아졌습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는 홀쭉해졌지만, 원래보다 훨씬 더 크게 그려졌습니다. 알래스카는 왜 이렇게 찌그러진 거죠?
보스턴 시 교육 당국은 새로운 지도가 기존의 지도보다 학생들에게 지리적 사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하며, 가짜뉴스와 대안적 사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지도를 교체한 이번 시도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의 많은 교육 현장에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 500년간 메르카토르 도법은 지도의 표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지도책이 메르카토르 도법을 따랐고, 학교 교실에 붙어있는 지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플랑드르의 유명한 지도 제작자였던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는 1569년, 식민지 무역 항로를 계산하는 데 유용한 지도를 고안합니다. 대륙과 대륙 사이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식으로 3차원 지구를 2차원 종이 위에 그려낸 결과, 극지방으로 갈수록 실제보다 면적이 크고, 북반구 전체가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지도가 탄생합니다. 메르카토르는 편의상 서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지도를 그렸으며, 북아메리카와 유럽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보다 더 크게 그려졌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에 따라 각 나라뿐 아니라 대륙 전체의 면적도 왜곡됐는데, 예를 들어 유럽 대륙과 면적이 비슷해 보이는 남아메리카 대륙이 사실은 유럽보다 두 배 정도 큽니다. 그린란드는 더 심한데, 아프리카 대륙에 맞먹는 광활한 크기로 그려진 땅의 면적은 사실 아프리카 대륙 면적의 1/14에 불과합니다. 알래스카는 멕시코보다 커 보이고, 북반구에서도 꽤 위에 있는 편인 독일이 지도 한가운데 있습니다. 지도 제작자들이 남극 대륙을 잘라내고 적도를 중간이 아니라 전체 평면 지도의 위에서 3분의 2지점에 그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보스턴 공립학교들은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를 도입했습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의 크기가 작아졌습니다. 선생님들은 기존의 세계지도를 함께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의견을 얘기해보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와’, ‘말도 안 돼. 진짜? 아프리카 좀 봐봐. 훨씬 더 크잖아!’ 이런 말을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또 학생들이 원래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거나 뭐가 다른지 스스로 묻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보스턴 공립학교의 역사, 사회 과목을 담당하는 나타차 스캇의 말입니다. 지금껏 개별 학교에서 피터스 도법을 사용한 세계지도를 가르친 적은 있지만, 한 도시의 공립학교 학군 전체에서 피터스 도법 세계지도를 가르친 건 미국에서 보스턴 공립학교가 처음이라고 스캇은 덧붙였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아르노 피터스가 새로운 도법을 개발한 건 1974년의 일입니다. 사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지도 제작자 제임스 갈의 방법을 차용했으니 피터스 혼자 모든 걸 개발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도법의 원래 이름도 갈-피터스 도법입니다. 줄여서 피터스 도법으로 불리죠. 피터스 도법은 각 대륙과 지역의 면적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을 제일 원칙으로 삼습니다. 3차원 지구를 2차원 종이에 그려내면서 각 대륙과 나라의 모양은 일그러뜨린 대신 상대적인 면적은 정확하게 나타냈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에는 제국주의 세력의 크기가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집니다. 지도에 담긴 제국주의 중심의 역사와 사회정치적 세계관을 수정하는 데 과장을 덜어낸 정확한 지도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보스턴 공립학교의 기회와 균등교육을 담당하는 부교육감 콜린 로즈는 말합니다.
“(세계지도 교체는) 앞으로 3년 동안 계속 진행할 우리 공립학교 교과과정의 탈식민주의 개편 작업의 첫걸음입니다.”
보스턴 공립학교 학군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는 총 125개 학교에 5만7천 명으로, 그 가운데 86%가 백인이 아닙니다. 라티노와 흑인 학생들이 가장 많습니다. 로즈 부교육감은 세계지도를 교체한 후속 작업으로 선생님들은 백인 중심 역사 대신 새로운 관점과 주제의 역사를 가르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가 학교 전체에 일괄적으로 보급된 건 아닙니다. 초, 중, 고교별로 각 한 학년에만 일단 새 지도를 걸었고, 차츰 모든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기존의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지도를 바로 철거하진 않지만, 앞으로 지도를 구입할 때는 피터스 도법 지도만 구입해 교실에 배치하기로 했다고 로즈 부교육감은 말했습니다. 외부의 조언을 받지 않고 교육 당국 내부에서 토론을 거쳐 내린 결정입니다.
메르카토르 도법과 피터스 도법의 장단점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계속됐습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도 관련 장면이 나오는데, 드라마 속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모든 미국 공립학교에서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를 써야 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유럽 제국주의 세계관을 뿌리내린 첨병이었습니다. 윤리적 편견, 서구 중심 세계관이 모두 담겨있죠.
로즈 부교육감은 보스턴 공립학교의 시도가 다른 학군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분명 패러다임 전환에 가까운 대단한 변화가 나타났어요. 학생들이 교과서를 비롯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신뢰하는 것만큼이나 합리적인 의문이 들면 이를 묻고 탐구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메르카토르 도법은 유럽 대륙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렸어요. 학생들에게 각 인종의 정체성의 뿌리인 곳을 정확하게 그리지 않은 지도를 보여주고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는 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보스턴 공공 도서관의 지도 전문가들은 북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지도를 생산하는 회사 ODT를 보스턴 공립학교에 소개해줬습니다. ODT를 창립한 밥 아브람스는 말합니다.
“피터스 도법은 특히 대륙의 모양을 왜곡하기 때문에 수많은 논쟁을 양산해 왔습니다. 하지만 각 대륙의 정확한 크기와 비율, 각 나라가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피터스 도법은 시각적으로 아주 뛰어납니다.”
1968년 마틴 루터킹 목사가 암살된 뒤 이른바 “눈동자 색깔 실험”을 통해 백인 학생들에게 인종 간의 관계와 차별 문제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한 교육자 제인 엘리엇은 보스턴 공립학교의 시도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우리 사회의 표준으로 굳어진 메르카토르 도법은 기독교의 권력과 전파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지도와 지도의 담론은 실제 세상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스턴 공립학교의 도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국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져야 합니다.”
83세의 나이에도 교편을 놓지 않은 엘리엇은 미시간, 아이오와, 미주리, 텍사스 등 미국 전역에서 예정된 자신의 강연에서 보스턴의 시도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더 나은 쪽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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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토르 도법이 제국주의 관점 위주로 사용되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원래 지구는 구이기 때문에 그 표면을 정확하게 평면 위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도법이 방향, 각도, 거리, 그리고 면적 중 어느 한 부분에서 왜곡이 일어납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표준이 된 것은 면적에 왜곡이 생기는 대신 항해에 필수적인 방위각이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이 도법이 처음 소개되는 1500년대 중반은 대항해시대로 인해 대서양 항해가 중요시되면서 먼 거리를 안전히 다닐 수 있는 항법이 필요했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면적의 왜곡은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사에게는 사실 관심 밖의 사항이었습니다. 당시 및 그 이후에도 피터스 도법과 같이 면적의 왜곡이 적은 도법도 여럿 존재했지만, 항해에 이 도법을 쓴 지도를 사용할 경우 각도의 오류로 인해 까딱 잘못하면 대서양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했기 때문에 경시된 것이죠. 솔직히 당시 세계지도의 대부분의 수요는 항해사들이었기 때문에 메르카토르 도법이 유행한 것이고, 이것이 고정되어 이후에도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지요.
메르카토르 도법은 위도가 올라갈수록 면적이 커지는 방식이므로 극지방이거나 극에 가까울 수록 더 커보입니다. 그래서 북극과 남극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대신 그만큼 나머지 부분들이 작아져 보이게 되는 거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메르카토르 도법의 득(?)을 실제로 식민지제국을 이룬 영국이나 스페인은 별 혜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위의 지도들만 비교해 봐도 눈에 띄는 차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터스 도법에 나오는 당시 식민지들이 많았던 남미나 아프리카들이 더 커보이는 만큼, 당시 제국 국가들의 자존심 경쟁에 더 유용했을 터입니다.
물론 현재의 기술의 발달과 지리 교육의 수요를 생각하면 피터스 도법이 면적 면에서 더 정확하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면적의 왜곡을 고치기 위해 사실의 왜곡을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피터스 도법은 당시에는 효용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도태된 것이지, 제국주의에 부합하지 않아서 경시된 것이 아닙니다.
chakev님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이 글을 소개하면서 전혀 배경지식이 없던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알게 된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지적해주신 대로 메르카토르 도법을 제국주의 관점 위주로 제작된,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까지 몰아세우는 건 지나치다는 데 저도 생각이 같습니다. 다만, 원문 기사가 소개하고 있듯 보스턴 공립학교 교육 당국은 모든 지도의 기준으로 사실상 굳어진 메르카토르 도법에 세월이 지나며 담긴 세계관과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피터스 도법이 면적을 정확히 하는 대신 대륙의 모양을 찌그러트리는 또 다른 선택적 왜곡을 하고 있다는 점도 저도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원문 기사에는 이 점이 충분히 언급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글 중간과 마지막에 링크를 단 복스가 제작한 동영상에 부족하나마 구를 평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왜곡이 설명돼 있습니다. 기사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을 임의로 덧붙이는 것도 저희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뉴스페퍼민트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사려 깊은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