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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어두운 역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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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양 철학의 시작은 극단적 이원론자인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그는 인간이 아닌 동물은 아예 지능이 없는 존재라고 봤습니다. 그는 인식(Cognition)은 인간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지능이 영혼의 성질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이 가진 신성의 불꽃이라는 기독교 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자연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고유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다른 종을 죄책감 없이 억압할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다.

지능이 인간의 특성이라는 생각은 계몽의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고대 이후 세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 역시 이 생각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성적인 생명체만이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적 존재는 ‘인간(persons)’이라 불리며 ‘스스로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도구로서의 가치만을 가지며, 따라서 물건이라 불린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대할 수 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이성적 존재, 곧 지능적 존재는 무한한 가치, 혹은 위엄을 가지며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의 논증은 더 복잡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곧, 타고난 지배자와 타고난 노예가 존재하며, 지능이 바로 그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은 식민주의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백인이 아닌 이들은 덜 지적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땅과 민족을 스스로 돌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영토를 취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이며, 심지어 의무 곧, ‘백인의 부담’이기도 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지능은 인간성을 정의하므로 덜 지적인 이들은 덜 인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지 못하며, 이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같은 논리가 ‘이성적인 남성’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누리기에는 너무 경박하고 감정적이라 여겨진 여성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런던 버크벡 대학의 역사학자 조애나 부르크는 19세기 영국에서 여성은 가축보다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음을 보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능 검사가 여성에 대한 억압을 더 강화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겁니다.

프란시스 갈튼 경은 심리측정학(psychometrics), 곧 ‘마음을 측정하는 과학’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는 자신의 사촌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을 보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갈튼은 지적 능력이 유전된다고 믿었으며 선택적인 생식을 통해 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장 뛰어난 이들을 찾아 이들이 자손을 낳도록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또한 덜 지적인 이들은 자손을 덜 낳게 하거나, 아니면 종을 위해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우생학과 지능 검사는 쌍둥이입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많은 여성이 지능 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만 그 수는 2만 명에 달합니다.

지능 검사는 이렇게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데이비드 흄과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적이며 지능은 가장 큰 덕이라는 주장에 도전하는 수많은 철학 사조가 있었습니다.

지능에 기반을 둔 능력주의는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가치의 기준이었습니다. 특정 학교에 들어가거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준으로, 예컨대 영국은 지능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무원을 뽑았습니다. 물론 분야에 따라 창의성이나 기업가정신을 기준으로 삼은 곳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정치인들이 똑똑한 사람들이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가장 똑똑한 정치인을 뽑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조차 이 사실을 강조해야겠다고 느낄 정도이긴 합니다. 그는 취임식에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IQ가 높은 내각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회비평가는 이런 지능에 의한 위계에 직접 도전하기보다 백인 남성 엘리트만이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진 시스템을 공격해 왔습니다. 내가 치렀던 11-플러스 역시 그런 시스템 중의 하나입니다. 이 시험은 인종과 계급에 무관하게 영리한 젊은이들을 뽑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은 잘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며, 이 시험을 통해 다시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위치에 있을 자격이 있음을 확인받게 됩니다.

이렇게 지능이라는 개념이 지난 2000년 역사 속에서 특권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초지능 로봇의 등장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터미네이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인간에 대항하는 기계에 대한 환상을 품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사회의 최상층부가 가장 영리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이제 인류는 그 자리를 로봇에게 양보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높은 이들은 지능이 낮은 이들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가 만든 초지능 로봇이 우리를 지배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힘과 번영을 우리 지능의 덕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초지능을 인류의 존재론적 위협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기술학자인 케이트 크로포드는 초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가 서구의 백인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이유를 이러한 논리로 설명합니다. 다른 집단들은 이미 스스로 위로 올라선 그들의 지배를 오랜 기간 받아왔으며, 여전히 그들에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인 남성들은 사다리의 최정상에 머물러 왔습니다. 만약 남성의 우위를 정당화해 온 그 영역에서 그들보다 뛰어난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들은 가장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가 전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데 있어 그들이 가져다줄 이득 못지않게 실제적인 위험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나 호주의 원주민이 유럽인 식민지 개척자에게 당한 것과 같이 로봇에게 억압받게 되리라는 걱정은 사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위험한 존재가 될 인공지능보다 이를 이용하는 인간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수 있으며, 혹은 과도하게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의 견습생 이야기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그들이 인간을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의도로 만들었지만 잘못 설정했을 어떤 목표 때문일 것입니다. 인공지능 보다는 자연의 우둔함이 더 큰 위험입니다.

우리가 지능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다면 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어떻게 다르게 보게 될지 생각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태생적으로 지배를 원하므로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 특히 동양에서는 지혜로운 이는 권력을 헛것으로 보고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일상의 집착이나 번뇌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능을 저런 관점에서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우리를 지배하려 하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원하고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들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 돌아와 평화와 깨달음을 전파한다면 어떨까요? 과연 우리는 여전히 우리보다 더 똑똑한 로봇을 두려워할까요?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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